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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현 Jul 17. 2024

옷을 벗기고 싶으세요?


결혼 후 두 달 만에 임신.

뱃속에 첫째를 가졌을 때

거실에서 같이 TV를 볼 때였다.

아침 프로그램에서 가수 인순이 딸이

스탠퍼드 대학교에 간 장면이 나왔다.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부럽다.. 란 생각을 할 때쯤..

그때 갑자기 떠오른 생각!

“오빠 오빠! 뱃속에 우리 오동이도 스탠퍼드 갈 수 있어요!”

나는 태어나지도 않은 뱃속에 아이를

정말 스탠퍼드에 보낼 결심을 한 마냥

최대한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남편을 봤다.

남편은 날 쳐다도 보지 않았다.

“뭔 소리야~~~”

난 얼른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엄마가 하버드 동상의 오른발을 만지고 오면

아이를 하버드에 보낼 수 있다는 속설이 있어요.

근데 하버드까지는 못 갔고

나 미국 갔을 때 스탠퍼드 가서 동상발 만지고 왔단 말이에요~!”

라고 했더니.. ‘헛소리 하네’란 표정..

대꾸는 없었지만..

그냥 꿈이라도 꿔 보자라는,

상상의 재미라도 느껴 보자라는

나의 의지는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또 한 번은 여행 프로그램을 보고 있을 때였다.

나이에 비해 많은 나라를 여행해 보았지만

지중해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그리스가 나왔을 때~

“우와~ 오빠~ 저기 너무 이쁘다~

저기서 와인 한잔 마시면 어떤 기분일까?”라는 내게

남편 왈

“아니.. 힘들게 왜 저기까지 가?

TV 보면서 여기서 마셔.

다 또~옥 같아. “

처음엔 내 귀를 의심했었다.

아니겠지…

“그 힘들게 몇 시간씩 비행기 타고

거기까지 왜 가?

여기 누워서 TV로 보면 편할걸. “

내 귀로 직접 듣고도 입만 벌어지는 상황.

진짜였다.

진심인 거였다.

나보다 TV를 더 사랑하는 그였다.

‘덴장~ 나 똥 밟은 거야?’

누군가에게 묻고 싶었다.


남편과 나는 정말 많이 달랐다.

매 방학마다 성적처리 마침과 동시에

해외여행을 꼭 다녀왔던 나와는 달리,

남편이 신혼여행 전 가본 해외여행은 동남아 한 곳뿐이었다.

제주도를 열 번도 넘게, 아니 한 달 살기도 해 본 나와는 달리,

제주도도 한번 안 가본 그였다.

그러나 우리의 여행 얘기가 안 통하는 건 이 때문이 아니었다.

즐기는 삶을 모르는 그였다.

즐기고 살아본 적 없는 그였다.

이 건 정말 크고 무거운 짐이었으며..

평생의 숙제라는 걸 직감했지만.. 반응하지 못했다.

충격으로 몸이 굳어버렸더랬다.

(물론 아직도 숙제의 진행 과정 중이다.)


그래! 깨끗하게 포기! 인정!

남편의 삶의 스타일도 존중해 주리라..

TV한테 밀린 건 좀 자존심 상하지만

아무한테도 말 안 하면 된다 싶었다.

그래서 태교에 집중했다.

태교에서 아빠가 뱃속의 아이에게 얘기해 주고

책 읽어 주는 아빠의 목소리를

아이가 정말 느낀다는 것이었다.

엄마 뱃속 양수 즉 물속 음파를 통해 아이가 들을 수 있다는 것!

마냥 신기했다~

그래서 난 남편에게 재촉하듯

오빠 오빠! 오동이한테 아빠 목소리 들려줘라고 했더니.. 무답..

한번 더 재촉하니 하는 말.

“얼른 나와 얼굴 한번 보자. ”


오 마이 갓!!!!!

나보고 조산하라는 소리?

아님 애 얼굴 한 번만 보겠단 소리?

물론 나는 안다. 그런 뜻이 아니라는 걸..

하지만 뱃속 아이에게 처음 한 말 치고는

너무 걸작이지 않은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잡힌 물고기에 밥을 주지 않겠다는 심보.

아니 이제 노력 따위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그를 둘러싸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런 소소함이 쌓여

드디어 서운함을 넘어 선 감정들이 몰려왔다.

‘그래. 너도 느껴봐라~’ 요런 심정으로

나도 냉랭함으로 포장하기 시작했다.

무언으로 하는 싸움은

생각보다 어려운 것이었으며

휴전 없는 한기는

한 달을 지나.. 두 달을 향하고 있었다.


말이 없음이 지속되자

대화단절이었고

이는 외로움이었으며

이건 여자가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견디기 힘든 찰나에 나의 SOS!

나의 핏줄~ 이름하여 친언니 되시겠다.

전화를 했다.

“언니 정말 돌아버릴 거 같아.

내가 결혼한 게 맞나 싶어.

하루에 말을 한 두마디도 안 해.

이건 사는 게 아니야.

이 사람은 말 안 하는 게 정말 편한가 봐.

뭐가 불만이면 말을 해야 하잖아.

전혀 안 해. 그냥 싫은 티만 내.

한숨을 쉰다던가.. 하는. 물어봐도 대답도 안 하고.

아주 꽁꽁 싸매고 있는 사람 같아. ”

눈물과 한이 서린 목서리였으리라..

어쨌든 언니에게 이르듯이 토해냈다.


그런데 언니 왈,

“맞아!

나라도 그럴 거 같아.

네가 생각해 봐.

네가 추워서 꽁꽁 싸매고 있는데

바람이 불면 어떻겠어? 더 싸매겠지?

그럼 태풍이 불면 어떻겠어?

그럼 더 꽁꽁 싸매겠지?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건

추운 사람한테 최신식 에어컨 틀어주고 있는 거야.

그럼 어떻게 하면 옷을 벗을 거 같아?

네가 옷을 벗겨줄래?

아니! 손도 못 대게 할 거야.

한번.. 따듯하게 해줘 봐~

한번 따듯하게 해 줬다고 바로 따듯해지지 않아.

바로 옷을 벗는 게 아니야.

그간 너무 추웠어서 한기가 가셔야 해.

계속 따듯한 햇빛을 비춰 주는 거야.

그러다 보면 너무 따듯하다 못해 더워서

옷을 벗을 거야.

자기도 모르게. ”


자기도 모르게.. 자기도 모르게.. 자기도 모르게..

이 말은 몇 년이 지나도 메아리쳤다.

자기도 모르게 옷을 벗어야 한다는 언니의 조언.

이건 진리이자 삶에 있어 필수불가결의 지혜였다.


이때의 위 언니의 말은

내가 윤 씨 집안에 사표를 내지 못하고

쭈~욱 ‘을’ 생활을 이어가게 하는 족쇠이자,

가족기록부에 빨간 줄이 그어지지 않는

신기루가 되어 지금도 날 지키고 있다.






2년 후..

시어머머님과의 전화 통화에서

“얘! 너네는 벌써 애 보낼 대학도 정해놨다면서? “

물어보셔서 “네??? 그럴 리가요…”하니

시어머님 말씀하시기를

“지난번에 언젠가 애비가 자랑하더라~

자기 딸은 미국 대학교 어디데더라?

암튼 거기 보낼 수 있다고.. 그래서..

야야~ 공부를 열심히 시켜야지~ 하니까

‘엄마! 집사람이 거기 가서 동상을 만지고 왔다나 발을 만졌다나.. ’ 이 카더라..”


“네??????”


그랬다.

그는 내 말을 듣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느낀 ’헛소리하네 ‘란 표정은

’ 좋은데 표현을 어찌해야 할 줄 모르는 ‘

그런 표정이었던 것이다.

단지 그 자리에서 수긍하고 맞장구치는 게

힘들었던 그이다.

당최 그놈의 안동에선 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혹여 무슨 함구령 속에서 자라난 것일까?



이때부터

나의 독심술은 또 한 번 업그레이드되었다!


우리 매력덩어리 씹세~

아주 열일하쥬?^^

‘정녕 나 하나 사람 만들고자 이 땅에 오신 분이신가 ‘라는 의구심이 들 때가 수십 번, 수백 번쯤..

이 또한 지나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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