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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현 Jul 24. 2024

발등을 찍어 마땅할지어다.


결혼 전, 그를 만난 지 4개월 만에 맞는 구정날.


우리 집은 그림 맞추기가 한창 이었다.

고도리나 청단, 홍단을 언성높이며 얘기하다가

위아래도 없이 고성이 오가기도 한다.

“아~ 저 지지배 부부도박단 아냐? ”하고

엄마가 말하면

형부는 “어머님! 부러우시면 지는 겁니다. “


이건 뭐 아수라장이다~

언니네 부부, 남동생네 부부, 부모님

이렇게 6명이 그림 맞추기 놀이를 하는데

광도 팔고 뽀찌(?)도 뜯고~

다들 아주 떼돈을 벌 기세로 덤벼든다.

이게 바로 매년 하는 명절놀이

이름하여 고스톱 되시겠다.


”아우 머리 아파. 빨리 나가버려야지!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 라며 한숨 쉬는 내게

올케가 묻는다.

“형님 영화 뭐 보시게요?

예매하셨어요?”

그렇다.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른 살 이후부터 명절에 집에 있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매년 설날에는 스키장이나 도서관을,

추석에는 가까운 동남아에 갔었다.

그러나 안동을 친가로 둔 남친 덕에

꼼짝없이 그를 기다리며

같이 볼 영화를 고르고 있었다.

차가 막혀서 외출준비의 치장을 한 채로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집 앞에 그가 도착했다고 전화가 왔다.

나갔을 때 나는 놀란 게 아니라 어안이 벙벙했다.

그가 차 안에서 뭔가를 계속해서 꺼내고 있는 것이었다.

안동소주 대자 3병, 토종꿀 3병, 안동 간고등어 3세트, 안동 한우까지..

이게 뭐지?

그는 이걸 위에 올려다 드리고 영화 보러 가자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는 영악했다. 아빠 엄마, 언니네, 남동생네. 각각 3집 것을 준비해 왔던 것이다. )


그렇게 그는 논스톱으로 집까지 뚫고 들어가

아빠 앞에 앉아있었다.

올라갔을 때

우리 가족들 역시 깜짝 놀랐다.

그들이 놀란 건 자기네 그림놀이 들킬까 봐였으나, 소파 밑에서 나온 화투장으로 인해 우리 집 식구 6인에 플러스 1인이 되어, 마치 리플레이하듯 몇 시간 전 그 장면들이 다시 연출되고 있었다.


오 마이 갓!

이 무슨 시츄레이션이란 말인가..

30대 중반의 시집 못 간 딸의 남친이

처음 집을 방문하였는데

인사를 받자마자 패를 돌리는..

아~놔~ 증말~~~말이 안 나왔다.

언니가 말했다.

“우리 집은 요고 못하면 못 들어와요. ”라는 말에

형부가 거든다. “저도 정말 연습 많~이 하고 들어온 거예요~” 아주 가관이다.

올케가 날 위로한다.

“작은 형님! 제가 사기는 안 당하시게 잘 지켜드릴 테니 걱정 마세요~”

초토화된 집안 분위기는 왁자지껄 혼연일체 되어 지붕을 뚫을 기세였다.


그가 저녁까지 먹고 돌아가고..

‘휴우~

날 처음보고 아나운서인지 알았다는 그인데

얼마나 놀랐을까?

정말 이미지 망치고 이게 뭐람. ‘

아빠를 노려보며..

“아빠! 딸 이미지 좀 지켜주지~ 아웅 증말..”

그러자 나머지 가족들 하는 말

“원래 자연스러운 게 좋은 거야~”

뭐? 자연?

내추럴 말하는 건가?

아니 이건 자연스러움을 넘어

느!므!하!잖!아!


돌아간 그에게 잘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홀딱 깨진 나의 이미지를 걱정하며

그에게 어땠는지 물었다.

그가 지체 없이 바로 대답했다.

“그~ 화목함에 반했어요. ”

헉! 뭐지?

나는,

이 촌스러운 한 문장에 반해버렸다.




결혼 후,

두 달 만에 임신한 나는

강의가 없는 날에는

태교라는 이름하에 퀼팅 가방을 만들며

무료함을 때웠었다.

같이 퀼팅 클래스에 다니는 친구가 집에

놀러 왔다.


우리 집에 처음 놀러 온 친구에게

집구경을 시켜주다 옷 방에서 멈춰 섰다.

“ㅇㅇ야! 나 완전히 속았어.

세상에 울 신랑 옷장 좀 봐~

무슨 시골 이장 할아버지도 아니고..

이게 회색이야? 쥐색이야?

도대체 이런 할아버지 남방들은

어디서 산 것일까?

요즘도 이런 옷들을 팔아? “


옷방에 그 많은 칸 중 남편 옷은 딱 한 칸만 차지했다. 반면 내 옷은 충분했다.

난 옷이나 가방이 많지 않은 편이다.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싼 옷을 사서 최소 5년

최대 27년을 입는다.

다시 말해, 명품은 아니지만 질 좋은 옷을 사서

오래 입으니, 그 옷들이 해를 거듭하며 늘어난 것이다.


누가 봐도 웃긴 옷방이었을 것이다.

이 정도면 극과 극이 아닌

모서리와 모서리이지 않을까?


저녁이 됐다.

띠디띠디.

“오빠~~~ 왔어요?”

난 뛰어나가듯 벌떡 일어나 남편을 맞았다.

안고 싶었으나 친구가 있는 관계로

눈으로 반가움만 쏘아 댔었다.


친구는 남편이 오자 서둘러 갔고

이틀 뒤 임산부 요가 모임에서 만났다.

“얘들아~ 얘들아~ 지현이 말 믿지 마! “

나 엊그제 정말 놀래서..

내가 직접 두 눈으로 영화의 한 장면을 봤다니까!”

엥???

이게 뭔 말이야? 란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뭐?.. 내가 뭘 어쨌길래?”

“아니 얘! 신랑 오기 전까지

신랑 욕 실컷 하다가

신랑이 들어오자마자

아주 빛의 속도로 뛰어나가서

오~빠~앙~! 하는데

나 내가 잘 못 들은 줄…

눈에서는 꿀이 뚝뚝 떨어지더라고.

얘 말 다 뻥이야!

무슨 남편이 어쩌고 저쩌고 다 개~뻥이야. “


”그랬어?

내가 어제 코가 막혔었나? (긁적긁적..)“

갑자기 민망해진 분위기에서 난 다시 반론을 제기했다.

”아니! 아침에 가래 뱉는 소리야 당연히 듣기 싫고,

내 잔소리 씹을 땐 당연히 때리고 싶은 거고,

하나 치우지 않고 가는 곳마다 흔적 남기면 열받는 거지 뭐.. 암튼.. 뭐 싫은 건 싫은 거고..

나 몰래 담배 피우고 와서

내가 그 앞에서 킁킁대면,

숨도 안 쉬면서 안 핀척하고..

노력하는 게 얼마나 귀엽냐? “

(금연은 결혼 조건이었으나

신혼 때 한 달 지킨 척! 만! 했더랬다.

아직도 열심히 세금을 내고 있다. )


그렇다.

난 남편을 좋아한다.

진회색빛 시골 이장 할아버지의 남방을 입는 그를.

만 원짜리 면티가 해져서 비칠 때까지 5년 이상 입는 그를.

주말에도 회사 나가서 일하는 게 편했다는 그를.

말 주변머리가 없어 여자에게 기분 좋은 말을 해주지 못하는 그를.

아는 단어가 많지 않아 표현이 서툰 그를.

책을 읽으면 두 장 넘기기 전에 잠드는 그를.

이 모든 게 독이 될 줄도 모르고.


한 번은 주말에 같이 티브이를 봤다.

응답하라 1994 인가를 보고

혼자 미친 듯이 웃는 게 아닌가?

별 내용이 아니었다.

남자 대학생이 지방에서 올라와서

지하철에서 헤매는 장면.

그리고 곧이어 나온 장면이

‘서울말은 끝만 올리면 되는 거 아니~뉘?’

여기서 혼자 키득키득 아주 난리가 났다.

“오빠! 이게 웃겨요? 이게 웃긴 장면인가?”

(아오~ 진짜~ 웃음 코드도 안 맞아 ㅠ)

난감한 표정으로 있자 짧은 대답. 한 줄 문장.

“내가 그래서 말을 안 하는 거야 “


헉..

아.. 그렇구나..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서울에 대한 환상이 있었구나~

아.. 그렇구나..

사투리에 대한 자격지심이

있을 수 있구나..


그래! 사투리는 그렇다고 치자!

나도 사람하고 대화하고 싶다고!

나도 절친이 남편이고 싶고

남편이랑 있는 게 가장 편하고

남편과 한 잔 하는 낙으로 살고 싶고

뭐든 남편과 의논하는

그런.. 사랑 넘치게 받는 아내이고 싶다고!


난 전생에 무슨~ 큰 죄를 지었던 걸까..?

지금이라도 사죄하고 싶다..


또 한 번은 TV에서 햄버거가 나왔다.

”오빠! 오빠도 어렸을 때 롯데리아 좋아했어요?

난 데리버거 진짜 좋아했는데.. “

말이 없었다.

”난 어렸을 때 정말 롯데리아 사장님은 엄청 부자인 줄 알았잖아. 롯데리아 사장님이 내 꿈일 정도였다니까.. “

또 대꾸가 없었다.

”롯데리아에서 후렌치프라이 먹는 게 얼마나 좋았었는지.. 친구들이랑 롯데리아 가서 주문하고 앉아서 기다리면 엄청 설레고 좋았었는데.. “

무슨 대꾸가 없었다. 아니 미동도 없었다.

”오빠! 오빤 치킨버거 좋아했어요? “

헉.. 또 씹혔다.

”뭐야? 오빠~~~~~아!!! “

둘이 있는데 말 걸기가 이리 어려워서야 원…

아 놔~ 욕이 튀어 나갈 뻔 한 걸

정신줄 붙잡고 있는데

”우리 동네 그런 거 없었어 “

또 단 한 줄을 읊조려주셨다.

(안동에는 롯데리아가 없었단다.

안동에는 지금도 백화점이 없다. )

헉!

나도 모르게 자동으로 튀어나간 한마디

”왜? “하는 순간~ 숙연함이 찾아왔다.

아~~~ 이게 문화차이구나..


아니 그럼 그렇다고 말하면 되지

뭐 이게 죄도 아니고 비밀도 아니고..

어우~ 답답해~

확~ 때려서 가르쳐야 하나~?

그러나 이 생각은 한 2~3년 정도 지난 후에

바꿀 수 있었다.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음을..


화가 나면 어찌할 줄 몰라 한숨만 푹푹 쉬는..

사고까지 세상~ 촌스러운 그이다.

맞다! 이런 촌스럽고 하나 밖에 생각을 못하는

직진 남의 매력에 빠졌더랬다.


남편의 촌스러움은 불치병이었다.

외적 촌스러움이 아니라 생각의 촌스러움.

내가 그 불치병을 매력으로 느꼈었다니..

빼도 박도 못하는 지금..

내가 내 발등을 찍어 마땅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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