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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현 Aug 07. 2024

데자뷔가 아니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의 고민은 사라졌다.

나의 온 생각과 마음은 아이를 향해 있었다.

남편과 사이는 뭐 하나 바뀐 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자연스럽게 좋아졌다.


지금 와 생각해 보니

이때의 나의 에너지 집중이 아이에게 향한 것이

남편에게도 덜 부담이었으며

남편이 남편이란 자리를 잡는 기간이었고

또 나에게도 남편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을 수 있는

그런 기간이었으리라..


결혼은 인생에서 새로운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사람마다의 정도의 차이가 있고

누구나 시작을 잘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 얼마만큼 표현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나는 기다려주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스스로 찾아갈 수 있게 기다려주는 방법..

설령 이 방법이,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스스로 찾아 간 자리는 쉬이~ 내어주지 않는 법이니까.


이렇게 난 또 한 번의 득도(?)를 하고 있었다.

젊을 땐 이런 경험 따위는 하고 싶지도,

배우고 싶지도 않은 것이었으나,

시간의 흐름과 함께 나 역시 익어가고 있었다.




남편의 저녁 퇴근시간.

등에 센서가 장착된 채로 태어난 첫째 딸 덕분에

남편의 퇴근시간은 007 작전을 방불케 했었다.

그러나 협조 안 하는 남편 덕에

항상! 언제나! 실패로 돌아갔더랬다.

어찌나 무던하고

어찌나 마이웨이의 남편이신지..

애써 재워놓은 아이를 깨우는 데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으며

일말의 미안함은 없었다.


어느 날,

남편은 누워있는 첫째 딸을 보며

어색한 웃음이 나왔다.

좋은데.. 이쁜데..

표현하기 쑥스러워하는 웃음이랄까..

왜 안 그렇겠는가?

자기와 또~옥 같이 생긴 딸이

얼마나 신기하고 만져보고 싶고..

만지면 없어질까 부서질까 다칠까 싶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눈에서는 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아이의 머리 정수리 부분을 문지르는 게 아닌가?

아니 미친 듯이 손으로 아이 머리 위를 비벼대는 것이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사람의 머리 위에는 숨구멍이 있고

갓난아이의 경우 그곳이 아직 닫치지 않은 상태라

아이에게 위험했다.

순간 뭐지? 경악하며 남편의 손을 뿌리쳤다.

너무 놀란 나는 “애한테 왜 그래?”라고 말하는 순간! 떠올랐다.

분명 이런 일이 전에도 있었는데..

전생이었나..

처음 일어나는 일이 아닌데..

싸~아~한 이 느낌. 뭐지?


신혼시절

남편이 집에 돌아오면

가끔 내 머리를 미친 듯이 비벼댔다.

한 번은 “오빠 나 오늘 바뀐 거 없어요?”라고 물으니

“어. 왜?”

(아~ C 뎅~내가 뭘 바라냐.. ㅠ) 요론 마음을 누르고

“오빠! 나 머리 했잖아요~

파마(펌이라고 하면 못 알아듣는다)가

자연스럽게 나와서 너무 맘에 들어요.

예쁘지 않아?”라고 웃어 보이면

내 머리 정수리 부분을 미친 듯이 비벼댔었다.

하지 말라고 소리쳐도..

굳이 예쁘게 신경 써서 정돈한 머리를 망쳐버렸다.

이런 행동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싫다고 얘기해도 구태여 하는 장난꾸러기 같은 행동.

분명 싫다고 얘기했는데

‘내가 장난으로 말하는 줄 아나?’

주기적으로 해 댔었다.


데자뷔가 아니었다.

신혼시절,

그는 내게 열심히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열심히 아니 자연스럽게

사랑 표현을 했었던 것이다.

지금처럼 자기 딸을 보고 이뻐서 어쩔 줄 모르는

눈을 하고서 자기 식의 사랑표현을 했더랬다.

촌스럽지만 자기 방식대로 진심을 담아..

당시엔 몰랐었다.

그것도 전! 혀!


‘오~ 주여~

이제 저에게 독심술까지 주시려 하시나이까?

인내심 하나면 충분하다 생각했습니다~

남은 제 인생이 불쌍하지도 않으시옵니까?ㅠ’


참고:

독심술을 터득한 나는

2년 후..

암수술을 앞두고

만 3세 딸내미 밥을 굶기겠다는 남편의 말에

남편의 생각과 마음까지 간파하는

능력자가 되었다.

아래 글을 참고하시길 바란다.

https://brunch.co.kr/@052005602ea6480/17






이 무슨 해괴망측 한 방법이란 말인가~

뭔 놈의 바디랭귀지가.. 어느 나라 표현법인지

요로코롬 이해하기 힘들어서야 원~~~

이 촌스러운 방식은

당최~ 어디서 삐집고 스멀스멀 올라와

날 괴롭히는 건지..

정말 가위로 싹~뚝 끊어버리고 싶은 요~론~ 표현~


역시..

진실은 시간이 알게 해 주었고

관계의 역사 속에 해답이 있었다.



결혼을 하고 첫 명절에 간 안동 시댁.

막히는 길을 달리고 달리느라 체력은 고갈되고

땅에 발 붙이는 걸 너무 오랜 시간만에 해서

몸은 공중부양 상태였다.

그래도 효와 예를 다 하는 며느리 노릇을 하고자,

도착하자마자 아버님 앞에 앉았었다.

나의 시아버님은 평소에 말 수가 적으시다.

아니 없으시다.

말 수 적으신 선비의 모습 그대로이시다.

아버님께서 물으셨다.

“을마나 걸렸나?”

“휴게소 잠깐 들러서 5시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라고 답하는 내게 다시 물으셨다.

“그래~ 운전은 니가 했나?”


띠용~

‘니’???

결혼해 처음 가는 명절에

‘새아가’도 아니고.. ‘니’

평소 ‘니’, ‘야’, ’ 너’란 호칭을 들어본 경험이

거의 없었다.

뭐지? 이 하대 받는 기분?

기분이 너~~~ 무 나빴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냥 내 마음 한 구석에

꼬깃꼬깃 접어 두는 수밖에..


그 후 호칭은 거의 없으셨다.

잊고 지낼 때쯤,

둘째를 낳고 평수를 넓혀 이사 간 우리 집에

시부모님께서 방문하셨다.

안동에서 오시기 때문에 자주는 못 오시지만

한 번 오시면 집에서 주무시고 가신다.

방이 더 생긴 집을 둘러보시고 좋아하셨다.

둘째 아들이 뒤늦게 장가가서 아이를 둘이나 낳고

알콩달콩 예쁘게 사는 것 같아

마음이 좋으신 듯했다.


그간 다사다난 했던 가정 내 사건과 사고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지

그걸 아시는 어머님은 안도의 한숨과

좋은 덕담으로 대신하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와중에,

아버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니한테 고맙제~”

한 줄 정리해 주셨다.

(앗! 한 줄 정리. 이때 알았다.

아버님이 우리 남편 스승님이시구나..)


이번에도 나를 ‘니’라고 호칭하셨다.

그런데 이번에 ‘니’는 그 어떤 다른 호칭보다

친근하고 부드럽게 느껴졌다.

‘니’라는 한 글자에 따듯함과 진심이 느껴졌다.


물론 안다.

그 간의 세월 속에 상호 간의 신뢰에서 오는

뉘앙스의 차이임을.

단지, 단어가 다를 뿐..

말에서만 느낄 수 있는 뉘앙스.

그걸 온도라고 표현한다면 그 온도는 따듯함을 넘어 끓는점을 넘은 듯했다.  



이쯤 되면..

감 잡으셨쥬?

아~~~ 유전이구나.. ㅠ







이걸 알게 되고 둘째랑 책을 읽을 때였다.

“엄마! 호랑이는 곶감을 제일 무서워 한데~”

라고 눈 크게 뜬 둘째 딸에게

“엄마는.. 유전이 제일 무서워~”

“엄마! 유전이 뭐야?”라고 묻는 딸에게

나도 모르게 어금니 꽉 깨물고

“아! 니! 다!”


속으로 다시 다짐했다.

‘딸들 시집보낼 때, 시아버지 자리를 보기로’

가 아니라..

흑인은 돼도,

경. 상. 도. 는 아니 된다!!!!!!!!!!!!!


이 엄마 브런치에도 유언을 남겼다. 딸들아!


다들~ 증인입니다~!

하트 누르고 증인 해 주이소~!








사진 :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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