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날현 Jul 31. 2024

끄떡도 없는 씹세~


2005년 석사논문을 쓰기 전이었다.

지도교수님께 학교를 그만두고

치대 대학원 준비를 하겠다고 말씀드리고

두 달쯤 뉴욕에 간 적이 있다.

가기 전,

별다른 꿈이, 목표가 없었다.

매일 이상한 생각을 하며, 공상을 하며,

자아가 여기저기 허공을 떠다니며,

사춘기마냥 방황을 하던 시기였다.


그러다 간 뉴욕!

뉴저지에서 홈스테이 하며

혼자 배낭을 메고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간

센트럴 파크.

지쳐 앉아있는 내 눈에 들어온 한 컷.

노부부였다.

손잡고 벤치를 향해 걷고 있는 노부부.

그 노부부를 보는데 눈 동공은 커지고

눈꼬리는 내려왔으며

가슴은 뛰었다.

난 그 자리에서 내 인생의 목표를 정했다.

이거다!

나의 노후를 이렇게 맞을 수 있는
삶을 산다는 건~

그리 살 수만 있다면..



그때 당시만 해도 이런 말이 있었다.

서울 외곽지에서 산책하거나
밥 먹고 나올 때,
손잡고 다니면 불륜.
따로따로 걸으면 부부.


태어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반백 년쯤 희로애락을 같이하고도

저리 두 손 꼭 잡을 수 있는 사이로 남는다는 건,

그간 버텨온 세월이 얼마나 잘 아물은 걸까?

상처없이 살고 싶다는 유아틱한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상처를 잘 봉합하며 살고 싶다.

저렇게 서로 다정하게 의지하며

남은 세월을 맞이한다면 더 바랄 게 없으리라~


이날 이후 이건 나의 꿈이었다.

나의 로망이자 나의 목표였다.

나는 단 한 번도

일등을 해보고 싶은 적도

무엇인가 대단한 업적을 남기고 싶은 적도

큰돈을 버는 것을 꿈꿔본 적도 없었다.

그냥 잔잔한 행복을 바라며

나의 최종 꿈은

‘환갑이 넘었을 때, 남편과 손 잡을 수 있는 정도로 다정할 수 있다면 ‘이었다.

잔잔한 풍파를 겪었지만 그래서 더 단단한 부부.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다정함이 남아있을 정도.

딱 그 정도로만 잘 살고 싶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나의 꿈은

정말 이룰 수 없는 허상이라는 걸

‘신의 물방울의 비리’를 들으며

바로 깰 수 있었다.



아니 아니다.

한.. 몇 달은 더 아니라고 부정하며

자기 최면을 걸었더랬다.

그때 내 꿈을 이룰 수 없다는 무너짐에

흘린 눈물을 모았다면

한여름 나오는 수박 한 통에서 짜낸 주스보다

더 많았으리라.





둘째의 존재가 생기기 전,

가족 셋이서 부산에 단촐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남편 첫 직장에서의 후배를 만났다.

후배와 함께하는 꼼장어 집에서

한창 분위기가 익어갈때즘 후배가 얘기했다.

“형수님!

0기 형님은 정말 이쪽 업계에서는 전설이세요.

그 임원진들이 뒤에 서서 다 지켜보고 있는데~

그걸 혼자 풀어내는데~

와~ 정말 대단하세요. ”라고

말하는 표정을 볼 세도 없이 난 바로 대답했다.

“알아요. 이 사람은 모든 게 0 아니면 1이라

일은 정말 잘할 거예요. 제가 살아봐서 알아요.

가정도 육아도 사랑도 일도 프로세스가 하나인 사람이니.. 얼마나 잘하겠어요. ”

이렇게 속사포처럼, 랩을 하듯 자동 발사하고 나서

나도 나의 무의식에 놀랐다.

‘아~~~ 나 알고 있었구나.. 알면서도 그렇게 힘들어 했구나.. 정말 의식과 무의식이 싸우면 무의식의 압승이구나..’

남편의 후배는 무덤덤히 말하는 내 얼굴을 보고

공감의 웃음으로 대답해 주었다.


남편의 백그라운드는 이러하다.

남자 형제밖에 없으며 공대를 나온 남편은

과묵하기로는 경상도를 대표할 수 있을 정도이며

여자와의 공감 능력을 말하자면 ‘절대불가’이다.

그런 그 이기에

일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할 것이다!

컴퓨터가 무엇이던가?

0 아니면 1을 인지하는 시스템을 구조화시켜놓은 것이다.

그거 하나를 정~말 기가 막히게 잘한다.

남편은 IT 업계의 전문가이다.

내가 사장이라도 남편 같은 전문가를

최우선 생각할 것이다.

일과 사랑, 가정, 육아, 개인사 그 모두를

0 아니면 1로 인지해서 처리하는 그이다.

그 얼마나 훌륭한가?


남편의 뇌는 이러하다.

예를 들어 설거지를 해 달라고 해서 하게 되면,

딱 설거지만 한다.

식탁에 있는 밥그릇은 절대 손대지 않는다.

식탁은 물론 싱크대에 튄 물로 한강이 될지언정

그는 딱 설거지만 하고, 한 것에만 의미를 둔다.

이런 식의 사고는 다른 면에서도 연장된다.

혹여 말다툼이 시작될만하면,

내가 이길 수 ‘있다’와 ‘없다’를 먼저 생각하고

‘대답을 할 것인가’, ‘ 말 것인가’를 결정한다.

본인이 질 것이 예상되면 절대 대꾸하지 않는다.

본인이 이기려고 들면

대답이 나올 수 없는 한마디로 종결시켜 버린다.

예를 들자면 사람을 어이없게 만들어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육아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이 목욕을 ‘시킬 것인가’ , ‘안 시킬 것인가’에 따라 움직이며 하는 자체에만 의미를 둔다.

절대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

아이가 울던 불편하던 춥던지 간에

목욕순서나 아이의 감정을 동요할 줄 모른다.

그래서 모든 과정에는

나의 개입과 뒷정리가 반드시 필요한 그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 뒷정리가 일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는 그이기도 하다.


고백컨데 심지어 부부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부부관계도 ‘할 것인가’ , ‘말 것인가’를 결정하고

할 것이라고 마음먹으면..

싫다고 때리고 발로 차서 침대에서 떨어져도

소용없다.

다시 올라와 덤빈다.

자고 있는 아이들이 깰까 봐 소리도 못 지르는

상태의 아내를 구태여 점령하는 그이다.

정말 아주 묘한 재주를 가진 그이다.

어쩜 이런 확실하고 단순한 프로세스를 가졌는지

정말 존경스럽다.


그래서 난 마음을 고쳐 먹었다.

내가 바꿀 수 없는 범주임을 인정하기로!

이러하기 때문에,

이러한 뇌 구조를 가진 사람이기에,

지금 IT업계의 전문가로 있는 것이고

그 때문에 지금의 우리 가족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라고.

내가 여기서 불만하면 안 된다고.


(IT업계에 계신 전문가분들 중에
혹여라도 안 그러신 분이 계시다면..
부디! 제발!
저에게 알리지 말아 주세요!
저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 공존함을 믿고, 세상 공평하다는 걸 믿고,
살아가고 싶습니다.)


일과 개인사를 모두 통합적으로

이분법적 처리하는 남편이 집중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고.

그래.. 일따로, 사랑 따로, 육아 따로, 개인사따로,

이렇게 따로따로를 요구하면 안 되지..

그럼~ 그럼~ 안되는 거야.

그 얼마나 훌륭한가?

컴퓨터도 0 아니면 1

와이프도 0 아니면 1

내 세끼도 0 아니면 1

잠자리도 0 아니면 1

모든 생활이 0 아니면 1


이것이 그 유명한 ‘업보’란 말인가..


시어머님께 가끔 얘기했더랬다.

“어머님 저는 다시 태어나면..

꼭 윤0기로 태어나고 싶어요~

세상~ 제일 편한 팔자 부러워요.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까요?”하고

웃었더랬다.

그러면.. 어머님은 내심 “내 아들 편하게 사는구나~”

하고 좋아하시는 눈치였다.

며느리 속은 썩어가는 줄도 모르고..










요렇게 좋~게 마무리 할 줄 알았지?

자~ 준비하시고..

다 같이 에브리바리~!


야!~ 이~ 씹~ 세~ 야~~~~~~~~~~~!!!


(누구든 좋다~

미운 사람 욕 한번 해줘서

내 마음이 좀 시원해진다면 말이다.^^)






사진: 핀터레스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