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단 한 번도
이혼이란 단어를 꺼낸 적이 없지만,
신혼 초 나의 머릿속에 이혼은
라면 먹는 횟수만큼은 했으리라..
“아.. 쌤아!
난 왜 결혼을 한 걸까?
내가 이렇게 결혼과 안 맞는 여자라는 걸
난 왜 몰랐을까?
난 정말 주제파악을 못했나 봐~
지금이라도 이혼하는 게 맞는 걸까?”
“뭐~ 느그 남편이 바람을 폈나?
아님.. 때려?
아니면.. 돈을 안 벌어다 줘?
아주~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싸는 소리 하시네~”
나보다 두 살 많은 예전 직장동료는
시원한 부산 사투리와 말투로
내 머릿속을 깨끗하게 정리해 준다.
“닌~ 무슨 복이 있어 그리사노?
느그 남편 돈 잘 벌어, 집안일 잘해줘,
노름 안 하고 성실해,
거기에 대화까지 잘 통했으면..
쌤한테 장가 안 갔겠제~
세상은 공평하다 아이가~”
이게 ‘공평’인가 생각하고 있는데
한마디 더 날아왔다.
“쌤아~ 니 거울 안보나?
이제 니 안 이쁘다 아이가~
정신 차리라~고마~!“
아~! 이제야 주제파악 완료!
측근의 직격탄은 그 어떤 공감보다
직방의 치료제가 되기도 한다.
‘그래! 난 아줌마다. 본분을 하자!’
아줌마의 생활이 젖어들 때쯤
피임 중에 둘째가 생겼다.
술 마시고 늦게 들어와 덤벼서,
때리고 발로 차서 침대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며칠을 허리 통증으로 찜질을 했던.. 그날이었다.
예상치 않았던 둘째의 임신.
몸이 정말 무거웠다.
첫째도 노산을 했는데
둘째는 불혹에 낳는다고
친구들이 애국자라 칭찬해 댔다.
의리로 살아야지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라나?
급속한 노화에 물먹은 스펀지가 되어
하루하루 몸무게를 갱신할 때쯤
주변 지인에게 이끌려 간 화실.
그곳에서
태교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그림을 배워보거나 그려봤던 것도 아닌데
난 큰 캔버스를 선택하고
어렵지만 마음에 드는 그림을 선택하여
따라 그리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뱃속에 아이를 생각하며 고른 그림인데
왠지 바닷속 돌고래를 탄 아이가
마음에 들었다.
첫 그림을 너무 어려운 걸 선택한 것이다.
일주일에 한두 번 화실을 갔다.
그림은 생각보다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처음엔 면을 나누고 구상을 하고..
점을 찍어 위치를 표시하고.. 연결하고..
시간의 흐름.. 몰입..
인간의 자아실현 과정에 예술이 있다고 했던가?
아니 최상위가 예술이라고 했던가?
그 느낌을 조금이나마 알 듯했다.
큰 캔버스에 구상을 잡을 때
비율을 잡으며 그림을 그려나갔다.
마냥 막연하기만 했던 캔버스에 1/4로 나누고
또 둘로 나눠서 점을 찍어가며
선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가장 큰 그림, 가장 중앙을 먼저 그리고
그다음 큰 부분, 그다음, 그다음
헉!
어찌 이리 인생이랑 똑같지?
인생의 중요 포인트를 이어가는 게 삶이란 건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 하는 이 느낌.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내 인생.
처음 살아보는 내 인생.
난 중심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구나..
뿌리를 내리기 위해,
가지치기를 하기 위해,
나 스스로의 독립을 하는 중이었구나.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사유를 하는 동시에
자기만의 세계에 빠질 수 있는 온전한 시간이었다.
호르몬 때문일까?
둘째를 갖고는 사색을 많이 한 듯하다.
결혼이라는 건 ‘정말 인생 2막이구나.’ ,
‘새로운 시작이구나’라는 생각은
결혼생활 햇수가 더해 갈수록 짙어졌다.
그리고 옛 어르신 말씀들이 몸으로 느껴졌다.
‘환갑이 넘으면 숨소리도 싫다던데..’
이 옛말에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남편은 생각보다 짜증 났다.
참기 힘든 정도는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서서 볼일을 보는 변기 사용,
화장실 사용 시 문을 안 닫는 것,
한 번 누우면 안 일어나는 것,
커피 마신컵을 바짝 마르게 담가두지 않는 것,
냉장고에서 주스나 우유 꺼내어 입 대고 마시는 것,
가래 뱉는 듣기 싫은 소리를 매일 아침 듣는 것,
빠릿빠릿한 행동이 아닌 느긋한 행동들..
아무리 말해도 고쳐지지 않는 것들이다.
정말이지 질렸다.
이런 걸 매일 참아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인생이란 큰 캔버스를 생각했을 때,
이러한 것들은 큰 부분이 아니었다.
내가 참기 힘들어하는 부분은
돌고래를 빛나게 해주는
저 밑 미역 줄기나 해초에 해당하는
고작 그 정도의 비중이었다.
그 정도의 비중이면..
그림에서 미역을 빼 버릴까?
그럼, 미역을 빼면.. 이 바다가 더 아름다울까?
나의 그림이 더 괜찮은 그림이 될까?
정답을 찾은 기분이었다.
그래~ 이 모든 부수적인 것들이 있어야
메인이 빛나는 거지.
어느 것 하나 뺀다고 좋아질까?
하나하나 채워나갈 때마다 생각했다.
이건 나를 힘들게 하는 부분,
이건 나를 춤추게 하는 부분,
이건 내가 해결해야 하는 부분,
이 부분은 나를 지탱해 주는 부분이지..
이러한 생각들로 그림을 채우고 보니
내 인생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림을 마칠 때쯤..
나를 화실로 데려간 동네 언니가
내 그림을 칭찬했다.
‘그림 그려서 팔아도 되겠는데?’라는
말도 안 되는 과한 칭찬에
난 바로 판매 대상을 떠올려 버렸다.
그래! 남편!
그날 저녁, 퇴근한 남편에게 말해줬다.
“오빠! 내가 백만 원짜리 그림을 하나 그리고
있는데.. 오빠한테 팔 거니까 준비해 놔요.”
단호한 나의 말에 남편이 놀란 건 ‘백만 원’이었다.
돈 열심히 벌어 나에게 다 가져다주고
60만 원 용돈 받는 남편이시기에 놀라셨으리라~
우리 남편은 만 원짜리 티셔츠 입는 짠돌이 아니던가..
“뭐? 백만 원?”
어머! 진짜 놀란 듯했다.
난 얼른 꼬리를 내렸다.
“알았어~ 알았어~ 가족 DC 해줄게요.
50% 해서 오십만 원! 그 이하는 절대 안 돼!
정말 오빠 최측근이라.. 특별히 50% 해주는 거야!
보통 가족 디씨도 30%인데
내가 정말 특~별히~ 해주는 거다!”
남편의 저항 없이 대화는 이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그림을 마칠 때쯤의 결혼기념일날~
우리는 결혼기념일에 별다른 걸 하지도 않았고
짠돌이 남편이라 기대도 없었다.
남편은 딸과 집 앞의 이태리 식당으로
나오라고 했다.
무거운 몸이라 귀찮았지만..
밥 하기 싫은 마음에 집 앞이어서 나갔다.
그런데 케이크와 꽃.
헉! 배부른 와이프를 위해?
전혀~ 기대도 안 하고.. 나는 아무것도 준비 안 했는데..
그리고 식사를 마칠 때쯤 주는 것들..
빛나는 작은 것들이 촘촘히 박힌 반지와
카드 그리고 봉투였다.
반지는 프러포즈 링과 똑같은 디자인에
다른 컬러였다.
불현듯 프러포즈받았을 때 내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이거 반지가 너무 얇다~!
매년 하나씩 사줘서 세 개 같이 끼면 예쁘겠다!’
헐.. 이걸 기억하다니..
다음은 카드와 봉투.
카드가 있는데 또 봉투까지 줘서
봉투를 먼저 열어봤다.
봉투에는 신사임당 10장이 들어있었다.
“이건 뭐예요?”라고 물으니..
“그림값!”
‘뭐야? 이 한 줄 정리가 이렇게 멋있다니..
항상 날 숨 막히게 하는 한 줄 정리였는데..‘
감동이었다.
카드의 내용은 실로 더 놀라웠다.
‘지금 내가 이렇게 행복한 건,
모두 당신 덕이라고..! 고맙고.. 사랑한다고..!’
이것은 남편한테 이때까지 받은 선물 중
단연 최고이다.
결혼하며 받는 다이아반지보다, 샤넬백보다,
그 어떤 것보다 더 의미 있고 뜻깊은 글귀였다.
이 문구는 내 마음을 춤추게 했으며
이후,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시간을
버티게 해 준 ‘장본(張本)‘ 이기도 하다.
사람 참 재미있다.
자본주의에 젖은 내가 이런 거에 감동하다니..
그림이 완성되던 날~
남편에게 판 그림은 아이방에 걸어줬다.
남편이 DC금액에 사서
아이방에 선물한 셈이다~^^
가끔 남편이 늦는 날이나
혹은 낮 12시까지 자는 날!
초등학생이 된 딸들이 그림에 대해 물으면,
자랑스럽게 얘기하며
뿌듯했던 그때의 그 감정을 떠올리곤 한다.
‘그래~!
중딩을 키우는 게 가끔은 보람이 있구나~!’ 하며..
나를 달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