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내가 두 번 다시,
남편이랑 같이 여행 가면 성을 간다!
호언장담했더랬다.
헉.. 근데..
큰일 났다.
아빠한테 말.. 해봐야 하나?
약속은 지켜야 하는데..
특히 나와의 약속은 더더욱..
나와의 약속도 함부로 하는 게 아니구나..
매번 가족여행을 갈 때마다 난 행복하지 않았다.
뭔가를 노력해야 하는 불안함..
그건 아이들에게서 오는 게 아니었다.
정확하게 남편하고의 다정함을 갖고픈
갈망에서 시작한 것이었다.
남편은 한 번도 즐기고 살아본 적이 없는듯했다.
어린 시절 아빠와의 기억도, 가정에서의 행복도.
어릴 적 행복했던 기억을 물어봐도
추억거리가 전혀 없었으며,
시어머님께 여쭤봐도 어려운 시골 생활에 그런 게 어딨냐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에 비해 나는 어린이대공원 놀러 가던 기억,
내가 토했을 때 엄마의 따듯한 기억,
다 클 때까지도 발을 주물러 주던 기억,
고작 미국 두 달 갔을 때 우는 걸 숨기던 기억,
날 다정하게 바라봐주던 기억 등등..
힘들 때마다 세상을 살아갈 힘이 되는 원천은
바로 따듯했던 엄마의 기억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난 아직도 투정을 하며 산다.
힘들다고 징징대는 딸에 불과하다.
그러나 남편은 어린 시절이 정말 없는 듯했다.
외롭고 힘든 시골 생활로 기억한다.
나무를 뜯어 먹었다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깊은 효심이 있는 걸 보면..
그는 분명 나보다 훌륭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남편과의 여행은 항상 불편했다.
즐겁지가 않았다.
즐기는 걸 전혀 모르는 듯했다.
아니 안 하려는 듯 보였다.
워터파크에서는 아이들을 놀아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 사고 날까 봐’, ‘남에게 피해 줄까 봐’ 에만
꽂혀 있는 듯했다.
아이들의 감정 따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안전요원이 된마냥,
호루라기 부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놀아줄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의 긴장은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느낄 정도였지만,
남편만 자기 자신을 모를 뿐이었다.
첫째딸이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가족 여행을 갔었다.
평창으로 썰매도 타고
딸들이 좋아하는 워터파크도 가기 위해~
남편이 막히는 차를 운전하고
저녁을 먹고 체크인을 했다.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남편은 TV를 켰다.
난 놀러 온 아이들을 방에서 TV를 보여주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저녁시간이라 썰매를 타지 못하더라도
하얀 슬로프와 반짝이는 조명을 보며
놀러 온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나갈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남편은 미동도 없었으며
결국 두 딸과 나만 나왔다.
늘 그랬다는 듯 아이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잘 놀았지만.. 내 안에 화는 식힐 곳이 없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두 번 다시 가족여행은 안 가겠다는
나와의 약속도 깨고,
이곳까지 와서, 돈 써가며 인내의 한계 파악을
또 한 번의 반복을 통해 하고 있는 것일까?
다음날, 오전에 썰매를 타고
오후에 워터파크에 갔다.
딸 둘은 물놀이를 너무 좋아해서
개장 때 들어가면 폐장해야 나온다.
그러나 남편은 대부분 중간에 혼자 나간다.
이유는 하나다.
자기는 이렇게 시끄러운 데는 머리가 아파서
오래 못 있겠다고.
남편의 생각엔 나는 시끄러운 곳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니면 나도 같은 사람이라는 걸 깜빡하는 걸까?
아니면 나를 생각해 줄 프로세스 부족일까?
이걸 또 견디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으로
마무리하였다.
그 주에 딸의 책가방에서 그림 하나를 봤다.
초1이던 첫째 딸이 학교에서 그림일기를 그렸다.
눈썰매장과 워터파크를 그려놨는데
우리 셋 뿐이었다.
아이 그림에 아빠가 없었다.
“딸! 왜 그림에 아빠가 없어? ”
큰 딸이 눈을 똥그랗게 뜨며 다시 내게 물었다.
“이때, 아빠도 있었어요?”
헉. 대답해 주었다.
“음.. 아빠 우리 썰매 타러 나왔을 때
콘도에 있었잖아.
차는 아빠가 운전했잖아.
그래서 우리 셋이 놀고.
기억 안 나?”
“아~~~ 있었구나..”
애들 때문에 참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애들한테 아빠 노릇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마음이 잘 맞아 대화가 잘되는 서방도 아니고
몇 날 며칠을 고민에 빠졌었다.
한.. 일이 주일 한마디도 안 했다.
대화단절!
아.. 결정해야 되겠다.
정말 이 사람 도저히 같이 못 살겠다.
이놈의 중딩 내일 모래 오십인데
아직도 술 마시고 새벽에 들어오지 않나..
이놈의 쉐끼 안 되겠다.
이놈의 중딩 다시 돌려보내야겠다.
내일 당장 이혼하러 가야지..
아침에 이혼도장 찍은 걸 얼굴에 날려줄까?
아니야. 그냥 문을 열어주지 말고 내쫓을까?
아니지 아니지.
숙려기간 없이 그냥 바로 헤어지는 걸로.
바로 같이 가서 도장 찍고
내일 아침부터 무조건 이혼이야.
내일 아침에 눈뜨자마자 말해야겠어.
당장 이혼하자고.
마음 바뀌기 전에 말해야 해.
정말 이 놈이랑은 끝이야.
당장 내일부터 이혼녀가 되기로
난 단단히 마음먹었었다.
남편이 들어왔다.
자는 척했다.
묵언수행 중이었기 때문에..
그런데 또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아! 또이구나..
이번엔 절대 안 돼!!!
남편은 나와의 관계를 풀려고 하면
꼭 부부관계를 시도하며 풀었다.
말로는 미안하다 잘못했다를 못하고
몸으로만 말한다.
그러나 이번엔 정말이지 싫었다.
정말 또 이 짐승! 이 동물세끼!
난 때리는 것도 이골이 나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사실 너무 우울해서 몸도 정신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땐, 이혼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쓴 상황에서
앞 일이 캄캄했다.
그런데..
이번엔 뒤에서 가만히 꼭 껴안고 한참을 있었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눈물이 흘렀다.
눈물을 숨기고..
그러고도 한참을 안고만 있었다.
등이 따듯했다.
뭐지? 뭐일까?
이상했다.
남편은 미동도 없이 꼬옥 안고만 있었다.
그냥 살만 닿고 한참을 있었는데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러다..
남편의 본색이 드러나고..
뜨거운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난 아침밥을 차리고 있었다.
뭐지?
뭐야~ 아침에 눈뜨자마자 이혼하려고 했는데
댄장.. 아침밥이나 차리고 있고..
나.. 참..
나 이런 여자 아닌데..
이래서 부부싸움이 칼로 물 베기 인가?
안 되겠다!
이따 나의 소심한 복수를 시작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