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서로 존댓말을 쓴다.
이유는 간단하다. 처음부터 그랬다.
친정부모님이 아직도 존대를 쓰신다.
물론 엄마가 화나시면 아빠에게 ‘야!’라고
소리치시지만 그건 그냥 ‘우리 소녀가 화났구나 ‘
라고 보이는 정도이고 아빠 역시
그때만큼은 엄마에게 맞춰주신다.
이것이 학습된 것인지
나 역시 화나면 존대했던 남편에게
‘야!’를 외친다.
하지만.. 심각하게 싸울 땐 주로 극존칭을 쓴다.
아마 우리 부부에게 이혼 위기가 없었던 건
내 속에 있는 말을 밖으로 안 꺼내서였을 것이다.
겉으로 보이기엔 이성적이고 예의 있는 말들이
오갈 뿐이니까..
감정은 나만의 몫인 것이다.
감정을 숨길 필요도 없지만 들킬 필요도 없다.
“오빠! 우리 결혼 10주년이니까 파리 가야지요.
10년 후에 무조건 다시 가기로 했잖아요.”라는
아내의 요구에 남편께서 말씀하시길
“나.. 아무래도 폐쇄공포증인 것 같아.
비행기는 한 시간 이상 못 타겠어. “
‘아주 가지가지하시네요!’라고
대답해 주고 싶었지만
묵언수행으로 이틀을 버텨서
얻어낸 여행이 ‘오키나와’였다.
제주도가 아니어서 기쁘다고 해야 할 판이었다.
본인이 정한 여행지이었기에
모든 걸 남편이 준비했었다.
렌터카도 국제면허증도 남편만 하는 걸로.
공항에 도착해서 렌터카를 픽업하고
예약한 호텔로 가기 위해 탑승을 하였다.
아~ 에메랄드빛 바다에서 나의 스트레스 풀어 주리라 기대하며~
차에 탑승하기 전 남편이 말했다.
화장실 갔다 올 사람 없어?
“.. ”
그래~ 우리 출발하자~
얼른 호텔 가서 수영하자~!
그리고 출발을 했다.
차를 탔는데 운전석이 반대였다.
남편은 차에 타자마자 한숨을 쉬었다.
미간의 주름은.. 원래부터 있었다.
그런데 그 원래부터 있던 주름은
아주 계곡을 만들고 있었으며
무슨 전쟁터에 나가는 얼굴을 하고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의 좌우가 바뀐 운전석이
편치만은 않았으리라..
얼른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뿐~!
차가 출발하고 얼마 안 돼서 고속도로에 차를 막
올렸을 때였다.
첫째 딸이 말했다.
“엄마! 나 배 아파. ”
“아이~씨~”
남편의 하이톤이 바로 들렸다.
0.1초가 안 걸린 자동 반사적인 대답이었다.
너무 깜짝 놀라 첫째 딸 얼굴을 보니
상태가 안 좋았다.
“ㅇㅇ야! 많이 아파? 못 참을 거 같아?”
라고 딸에게 물었는데 남편이 대답했다.
“그러니까 아빠가 아까 화장실 가라고 했지?”
짜증 섞인 압박 말투에 아이 표정이 안 좋았다.
아! 비상사태구나!
이런 비상사태가 오면
나의 뇌는 바로 최신식 버전으로 탈바꿈된다.
볼륨은 높였지만
차분한 말투로 안정시키기 시작했다.
“ㅇㅇ야! 괜찮아. 엄마랑 화장실 가면 돼.
금방 화장실 찾아 줄게. 걱정하지 마.
배가 많이 아프구나?
어떡해.. 우리 애기~!”
볼륨을 높인 이유는
남편에게 나의 확고한 뜻을 밝히기 위해서였고,
차분한 말투는 아이를 안정시키기 위해서였다.
머리는 지진이 나서 당장 내려서 택시 타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으나..
난 애가 셋이나 딸린 엄마였고 타국이었다.
그것도 자기 생각 외에는 하지 못하는
중학생 아들까지 있었으니..
남편에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에서는 내가 아는 모든 쌍욕이 다 튀어나와
줄줄이 순서대로 내뱉기만 하면 되었다.
그랬다간 정말 우리 가족은 바로 한국행 비행기를 탔을지도 모른다.
욕을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나는 빈속에 박카스 10병은 마신마냥
가슴이 널뛰기를 시작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정말 머리 정수리 뚜껑이 열릴 만큼이었으나
또 나의 앰한 업보 탓으로 돌리며..
긴 숨으로 호흡하고 있었다.
일단 남편에게 고속도로에서 바로 나가라고
얘기하고 아이를 달래기 시작했다.
아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고속도로에서 나가서
대각선 주유소를 가기 위해 U턴하는 데까지..
나는 급한 마음보다
화난 마음을 잠재우느라 최선을 다해야 했다.
계속해서 듣게 되는 남편의 한 숨소리와 ”아이씨~“ 정말 최악의 순간이었다.
차가 밀린 건지 아니면
급한 마음에 내 눈에만 슬로모션으로 보인건지..
미치는 순간이었다.
딸이 배가 아팠지만.. 내 똥줄이 타는 듯했다.
드디어!
주유소에 도착을 하고..
딸이 내리자마자 구토를 했다.
뭐야? 이때까지 참은 거야?
정말 얼마나 힘들었을까?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참았다. 눈물이 나왔다면..
아마.. 쌍욕도 함께 튀어 나갔을 것이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아이에게 물을 먹이고..
눈물을 머금고 다시 차에 탔다.
차 안에서 곰곰이 생각했다.
이 순간을 그냥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았다.
중딩에게 알려줘야 할 의무감을 느꼈다.
널뛰는 마음을 잡고
튀어나갈 욕을 긴 숨으로 대체하고
나의 단련된 이성님을 급하게 호출했다.
그 이성의 언어로 차분하게 말했다.
“오빠! 오빠는 화장실 급하게 가고 싶을 때 없어요?
그때 내가 오빠가 한 것처럼
아주~ 똑같이 해줄게. “
나의 말은 저음이었고 평온한 말투였으나
‘아주’에서만 어금니를 깨물고 말했었다.
아마 약간은 서늘했으리라..
남편도 내가 보통여자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 것이다.
난 항암 중에 남편여행을 보내주는
인내를 가지고 있으며
프로세스가 딱 두 개뿐인 중딩을 키우는 여자이니
이걸 본인 스스로 모를 리 없다.
(정말 모른다면 이거야 말로 대반전!)
가만! 그럼 하늘에 계신 그분께서 이걸 알고 나에게 득도를 가르치려 나를 선점 하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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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즐겁지 않았다.
그래도 두 예쁜 딸 덕분에 버텼다.
또 돈 내고 체험학습을 한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학습을 반복한 것이다.
속으로는 ‘내가 너랑 다시 여행을 가면
인간이 아니다!’를 외치며.. 딸들과 즐기려 했다.
여행 마지막 전날
우린 일본 전통 가옥 비슷한 단독 펜션을
예약했다.
숙소가 한 몫했다.
숙소에서 남편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분위기는 평온했으며
남편이 저녁준비를 했다.
그렇게 마주 앉은 우리 둘만 있을 때 입을 열었다.
“오빠! 오빠의 그 한숨이..
날 얼마나 힘들게 하는 줄 알아요?
아이씨~아이씨 하는 그 소리.. 정말 듣기 싫어요.
그때마다 정말 난 미칠 것 같아. “
남편의 표정은 놀라웠다.
‘내가?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라는 표정.
그는 자신을 모르고 있었던 듯했다.
과연..
난 누구에게 화가 났던 것일까?
10년째 하는 내 선택에 대한 책임?
난 그 표정을 보고
또 다른 남편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했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내면의 표현과 표출을
가족이라는 이유로 인내해야 함을.
아니!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감당해줘야 함을.
집으로 돌아와 남편의 분위기는 좋아졌다.
물론~~~
중딩답게 일주일을 넘기지는 못했다.
난 이번 여행에서 또 한 번의 득도를 한다.
일본까지 가서 할 득도인가 싶지만..
정말이지 이번 여행에서는
중딩이란 애칭보다 ‘이 쉐끼, 이 쉐끼’를
속으로만! 외치며
어금니를 깨물어야 했다.
오키나와의 아름다운 바다를 보며..
10년을 같이 산 남편의 한결같음을 인정해야 했다.
대단하다~! 내 남편~!
초지일관~! 내 남편~!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나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오직 내 마음뿐!
그래~! 우린 여행 스타일은 정말 아니야!
두 번 다시 여행은 안 가는 걸로!
그럼 되는 거지 뭐!!!
그러다.. 잊혀지면 또 가게 될까?
아냐~ 아냐~ 지금 이 느낌!
꼬~옥 기억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