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가 상견례를 마치고 결혼식을 두 달여 남겨두고
그가 심각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오늘 할 말이 있으니 집 앞으로 가겠다고.
이때까지만 해도 해맑던 나의 뇌는
판타지 세상이었다.
뭐지? 오늘 프러포즈하려나?
집 앞 생맥주 집에서 그를 만났다.
프러포즈받기에는 누추한 맥주집이었다.
‘뭐야? 장소가 너무 아닌데?
만약 여기서.. 한다면..
무효라고 다시 하라고 해야지’
의기양양해하며 맥주 한잔을 마시는 나에게
그는 A4용지 한 장을 건네며 말했다.
이걸 보고 잘 결정하라고.
돌이킬 수 있는 순간은 지금 뿐이라나?
신중하게 생각해서 확실하게 말해달라고.
이게 뭔 말이야?
어안이 벙벙했다.
열어보니 이렇게 써있었다.
가용 자산 vs 비가용 자산
이렇게 두 개의 표가 그려져 있었다.
내용은 본인의 현재 수입상태와
저금, 적금, 보험, 연금 등 본인 자산의
상세 내역을 엑셀로 정리한 것이었다.
숫자와 안 친한 나는, 다시 말해,
계산기를 10번 치면 10번 다 다른 숫자가
나올 정도로 숫자 개념이 “제로”인 뇌를 가졌다.
그런 나에게 이건 신박한 종이였으며
그런 나의 눈에는 숫자 나열이 아닌..
이렇게 보였다.
“신뢰. 신뢰. 신뢰. 신뢰. 신뢰. 신뢰.. “
문제는 오피스텔이었다.
자가로 알고 있던 오피스텔이 월세였다.
“오빠! 이거 자가라면서요?”
당황한 구남친은 눈도 못 마주치며 한 숨을 쉰 후,
“이 나이에 월세 산다고 도저히 말 못 하겠더라. ”
헉. 뭐야? 이 고백은?
말도 잘 못하는 사람이
표현은 왜 이렇게 진실되게 하는 거야?
아~짱나~~~ 공이 또 내게로 온 거야?
이억.
단 돈 이억 때문에 결혼을 엎어?
아니지!
그건 아니지!
난 그 자리에서 바로 답했다.
“알았어요”
그가 다시 물었다.
“뭘 알았다고요?”
“괜찮다고요!”라고 대답하자,
“집에 가서 잘 생각해 보고 말해도 괜찮아요. ”
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 200% 신뢰라고
쓰여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생각했다.
아~ 이 사람 찐~이구나!
아~ 이 사람 청국장~이구나!
이억이란 돈이 없는 건 안타까웠으나
그에 대한 내 믿음은 더 깊어졌다.
그 진국은
현재까지 매달~ 한 푼의 오차 없이
한 달의 거름도 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의 표현방식 역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말 한! 치! 의 오차도 없이
너무 또~옥 같다.
그래~ 그가 바뀐 건 단 하나도 없구나.
단지 내가 몰랐을 뿐..
어쩌면 바뀐 건 나였을지도..
어쩌면, 날 힘들게 하는 건 나의 기대였을지도..
기대만큼 나쁜 놈은 없다.
기대만큼 내 마음을 힘들게 한 놈도 없다.
기대 말고 실전만이 날 버티게 할 지어다!
그래~ 가르치자!
학습의 기회를 주자!
내가 태어나서 두 번째로 잘한 일이 있다.
첫 번째는 두 딸을 낳은 것이고
두 번째는 남편에게 육아를 가르친 일이다.
두 딸이 3살 5살이던 해의 일이다.
전편에 썼듯이 본인이 행복한 건
모두 내 덕이라는 걸 잊어 가던 시절쯔음..
https://brunch.co.kr/@052005602ea6480/54
남편이 새벽에 들어온 것이다.
남편은 장모님을 잘 만난 관계로
육아의 비중은 5% 정도를 밑돌고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의 뇌구조와 태생이 문제였다.
남자들은 밖에서 돈 버느라 힘드니
여자들이 육아와 가정살림을 하는 건
당연하다는 ‘논리’가 아니라 ‘자세’였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그 가부장적인 기가
하늘에 닿을 듯했다.
단 한번도 입 밖으로 여성비하 발언을 한 적은 없다.
그냥 느껴졌다. 그 오만방자한 생각들이..
그 기를 꺾고 싶어서 여러 번 소리 높여 외쳤었다.
“나도 ‘집에서 육아할래?
나가서 10시간 강의할래?’
물어본다면 당연히 일하는 게 편하다고!!!”
“지금 오빠가 돈 버는 거
그중에 반은 내가 버는 거라고!!!”
물론 그의 표정은,
해석컨데..
어느 집 개가 짖냐는 정도도 안 되는 듯했다.
최극단의 감정 노동과
육아에서의 자아싸움 경험을 이해 못 하고
나의 노고를 알아주지 않는 남편은
날 더욱 고립시켰으며 외롭게 했다.
그리고 기분이 나빴다.
무척이나.
뭐가 그리 당당한지.
남편은 사기업에 다니는 주제에
본인이 공무원인 줄 아나 허구한 날
칼퇴를 하여 집에서 매일 저녁을 먹었다.
집에 오면 아이들 목욕은 아빠가 담당해 주기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난 매 저녁을 아이 저녁과 경상도 저녁
이렇게 두 번의 상차림을 해내야 했다.
사실 이 시기는 내가 아픈 기간이었다.
(암 수술 후 3년 차였다)
https://brunch.co.kr/@052005602ea6480/16
그때는 몰랐지만.. 지나고 나니..
이때 나는 안간힘을 다해
정상인처럼 보이려고
정상인 이상으로 행동하려고 했던 것 같다.
어느 금요일 밤..
나의 스트레스는 극도에 다달았다.
불금을 즐기느라 전화 불통~
새벽 4시에야 들어오는 남편.
문이 열리자마자!
아주~ 때리고, 밟고, 욕하고..
혼자 온 힘을 다해 액션 영화를 찍었다.
물론 남편은 고주망태로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남편이 그 사건을 기억하는지는..
모르겠다.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때리고도 분이 안 풀렸다.
짐을 쌌다.
토요일 새벽 5시.
집을 나왔다.
친구에게 간다고 전화를 하고
친구네 집에 도착해서 전화기를 껐다.
친구네 집에서 자고 일어나서
미용실 가서 머리를 하고
밖에서 맛있는 거 사 먹고
나름 싱글 라이프를 즐기려 했지만..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두 딸아이들이 얼마나 불편할까
심히~ 걱정되었다.
TV 전선을 끊어버리고 나왔어야 하는데..
우리 딸 두 눈이 혹사당하겠구먼..ㅠ
하루 종일 TV 틀어 줄 것이 자명했다.
그래도 속으로 기도했다.
첫째의 까칠함이 터져줄 때,
둘째가 저지레를 동시에 해 주기를!
첫째와 둘째가 싸워서 동시에 울어 젖히기를!
첫째와 둘째가 식사 준비 한다며
주방을 초토화시켜주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이것만이라도 경험하게 해 주기를
간절히 또 간절히 바랐다.
만 이틀 집을 나간 것이다.
다음날 일요일 밤 11시에 들어갔다.
들어가기 직전에 핸드폰을 켰다.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와 있었다.
“미안해요”라고.
또 한 줄 문장이었다.
집안으로 들어갔다.
말을 섞지도 않고 내 할 일을 했다.
집안은 예상대로 난장판이었다.
곳곳에 흔적들이 보였다.
남편 얼굴을 훔쳐봤다.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와 있는걸
볼 수 있었다.
예쓰~! 예쓰~! 예쓰~!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 것일까?
다음날 아침,
발코니로 들어오는 햇살이 아름다워 보였다!
살아갈 힘을 충전한 기분이었다~
남편은 어땠을까..?
어쩌긴 어쩌겠는가?
이게 ‘마누라’라는 사람인 걸~^^
그도 ‘그의 몫’은 있는 것이다.
메롱~ 메~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