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후, 반년도 채 안 돼서 한 전신마취.
깨어났을 때,
내 팔과 다리는 내 것이 아니었다.
정말 팔다리에 전기가 통하는 듯
찌릿찌릿 저려서 참을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팔은 아빠가.. 다리는 남편이..
두세 시간은 주무른 것 같다.
몽롱한 상태에서 식구의 얼굴을 봤는데..
괜찮았다.
그 얼굴들로 알 수 있었다.
나 괜찮구나..
그리고 교수님이 말씀하셨던
테이블데스(table death) 2%
그 확률은 안 걸렸구나..
교수님이 오셨다.
다행히 전절제를 안 하고
위에 윗부분 1/3은 조금 남겼다고..
그러나 밑에 음식 조절하는 유문이 없어서
고생은 좀 할 거라고..
두 말할 나위 없이 너무 감사했다.
그래도 나에게 위가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니까..
없는 것보다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
수술 후 입원일 수 5일..
5일 동안 여일곱번의 ‘code blue’
그때마다 내가 숨 쉴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꼈다.
퇴원을 하고는 신기했다.
밥을 먹으면 5분 안에 화장실을 가서
내가 먹은 걸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제야 나는 내 안에 위가 없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화가 났다.
어차피 그냥 나오는 음식인데 하며
먹고 싶은 걸 막 먹기도 했다.
때론 그냥 올라오더라.. 구토도 했다.
며칠 후,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괜찮아?’
‘응.. 이제 괜찮아지겠지.. 좀 지나야 익숙해진데’
친구는 말이 없었다.
‘여보세요? 혜연아!’하는데..
울먹이며..’ 다행이다..’
‘나 전화도 못하고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고
이렇게 통화할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심지어 나한테 수술 잘 받고 다시 와줘서 고맙다고..’
나한테 목놓아 우는 게 아닌가..
사랑스런 내 친구가!
내 절친인 이 친구는 영양사이다.
친구는 알고 있었다.
위의 아랫부분에 있는 유문이 없으면
음식량 조절을 하는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말 천천히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그리고 단백질을 자주 먹어야 한다고.
그러나 내 주위 친정부모님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관심조차 없었다.
위암은 그냥 수술받은 걸로 낫는 줄 아는 듯했다.
그렇다고 난 아픈 걸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아프다고.. 불편하다고 하는 걸..
그 누가 좋아하겠는가?
듣기 좋은 소리도 한두 번이지..
심지어 아프단 소리!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병원을 갔다.
종양내과!
종양내과 교수님은 수술한 교수님이 아니다.
암 조직검사 결과 내 암의 종류가 악성이라고.
영화배우 고 장진영의 암세포와 동일하다고.
발견이 가장 늦게 되는 악성인데 어떻게 발견했냐고.
그랬다!
다행히 위염이 심해서 발견된 것이었다.
임신 중 둘째가 입덧을 하게 해 줘서..
위염이 심해져서..
발견될 수 있었던 것이다.
다행인 건 맞는데 항암은 해야 한단다.
요즘 항암치료제가 좋아져서 머리는 안 빠진단다.
경구약으로 2주 먹고 1주 쉬는 형태로 10개월을 해야 한다고 했다.
위암 2기라서 전이의 위험성이 있어서
반드시 해야 한다고.
항암의 부작용을 듣고 싸인하고 약을 받아서
집에 왔다.
약의 부작용은 심했다.
메스꺼움, 어지러움은 정말 심했고
못 먹어서인지.. 바로 싸 버려서인지..
몸에 기운이라곤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머리카락..
안 빠진다고 말한 사람을 찾아가 때리고 싶었다.
출산 후라서 인지.. 항암약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머리를 감을 때마다 한 움큼씩 빠졌으며
암환자라는 걸 상기시켜 줬다.
그렇게 한 차례의 항암이 끝나고..
아무도 나의 항암에는 관심이 없고..
힘들다는 말을, 아프다는 말을 하기도 싫고..
또 두 번째의 항암이 시작되었다.
둘째 딸은 수술직후
엄마가 항암 때까지 키워주시기로 하고
이미 데리고 가신 상황이었다.
이번에는 더 힘들었다.
가만히 누워있는데
뇌가 움직이지 않음을 느낄 정도..
첫째 어린이집에 딸 데리러 가야 하는데
바지를 갈아입을 때
다리를 바지통에 넣어야 하는데..
다리가 안 들어져서
한쪽 팔로는 의자를 짚고,
한쪽 팔로는 다리를 들어서,
바지통에 다리를 넣었다.
뇌에 힘이 남아있었다면.. 욕을 했을 것이다.
첫째는 구강기가 끝났는데도
아직 무언가를 입에 넣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내가 침대에 누워있는데
첫째가 먼지 가득한 무언가를 빨고 있었다.
난 눈을 감았다.
고개를 돌리고 싶었으나
고개를 돌릴.. 그 조차의 힘도 없었다.
내 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이겠다고
빨고 삶고 소독하고 하던 내가 아니었다.
난 바짝 마른오징어가 된 기분이었다.
몸은 움직이지를 않았고
침대에서 일어나기 위해 팔을 짚을 힘조차 없었다.
가끔 참기 힘든 두통과 메스꺼움에
길 건너 내과에서 수액을 맞고..
너무 못 먹어서인지..
항암약 때문인지..
세 살배기 딸이 엄마를 부르는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자고 일어나 정신을 차린 다음날,
딸 얼굴을 보는데.. 그때 알았다.
인간의 본성을..
내가 아프니까 딸이 안보이더라..
그렇게 또 한 번의 항암이 끝나고
또다시 시작된 항암..
적응이 된 것일까?
마냥 혼자 누워있는 게 제일 편했다.
어줍잖은 위로에 밸이 꼬이기도 했다.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내 영혼은 너덜너덜 해졌다.
생각이 나면 나는 데로..
눈물이 흐르면 흐르는 데로..
멍~
공상~
사유~
그때의 고독들이..
지금의 글을 쓰는 힘이 된 것일까?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