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이 채 지나기 전 명절이었다.
난 아이들과 함께 안동에 내려갔다.
둘째 며느리였지만 아이는 우리밖에 없었기에
무리해서라도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막히는 곳을 갈 자신이 없어서 라는 핑계로
우리는 명절 전전날 내려갔다.
어린아이들이 자는 틈을 타서 달리고 달렸다.
밥을 먹는 건 생각도 못했다.
아이 둘이 멀미를 하거나 울어대는 게 겁이 났다.
배가 고팠지만 달리고 또 달려~
5시간가량 걸려 늦은 저녁에 도착을 했다.
시부모님은 식사를 하신 시간이었다.
어머님께서 저녁 먹었냐고 물어보셨고
남편이 안 먹었다고 해서 차려주셨다.
저녁밥상은 ‘회’였다.
회와 김치!
내가 먹지 못하고 당황해했다.
남편이 어머님께 곰국 끓여 놓은 거 있음 달라고 했다.
어머님께서 회 맛있으니 그거 먹으라고 하셨다.
남편은 다시 어머님께 요구했고
잠시 후.. 내 밥 옆에 놔주었다.
서글펐지만.. 아무 말 없이 그냥.. 밥을 먹었다.
며느리가 위암 수술을 한 지
1년도 채 안되었는데.. 회를 주신 것이다.
밥을 먹고
시어머님과 담소를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몇 시에 출발한 거냐? 아이들은 괜찮았냐? 등등..
그러다 시어머님께서 내게 물으셨다.
“얘! 애비 왜 이렇게 살이 빠졌니?”
순간 머리를 돌로 맞은 기분이었다.
10kg가 빠진 나는 누가 봐도 얼굴이 안 좋아 보였다.
더구나 가는 내내
멀미도 했고.. 밥도 못 먹어 저혈당으로 힘들었다.
더 핼쑥했으리라..
내 얼굴은 못 보셨을까?
“어머님! 저도 많이 빠졌어요.”
난 차분한 톤으로 대답했다.
시어머님의 대답은 “그랬니?”였다.
울고 싶었다.
울 공간이 없었다.
실은 눈물이 흘렀었지만
아무도 내 얼굴 따위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자고 일어나
난 전을 부치고 일을 했다.
명절 당일 오전에는 많은 친척들이 왔고..
설거지를 했다.
그리고 친정집으로 올라왔다.
수술 후, 반년쯤 지났을 땐
이미 내 주변 모든 사람이 내가 암수술을 했던 것조차 잊은 듯했다.
아니 수술만 하면 그냥 낫는 줄 알았나 보다.
요즘 암은 암도 아니라고 흔한 질병이라고..
아무도 낫는 과정은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나의 친정 식구들까지도..
명절이 며칠이 지났는데도
화가 가시지 않았다.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분노가 더 차올랐다.
정말 쌍욕을 하며 미친 듯이 소리 지르고 싶었다.
소녀 같은 나의 친정엄마에게는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친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말을 시작했는데..
울음 반, 울분 반..
소리 지르며 울기 시작했고..
언니는 나를 대신해 욕을 해주기 시작했다.
너무 시원했다.
한 시간을 웃다 울다를 반복하며 통화했다.
아이처럼 언니에게 이른 것이다.
언니는 정말 속 시원히 욕을 해주고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제부 잡지 마~’
현명한 울 언니!
가끔 남편의 누나인가 헷갈릴 만큼
나를 남편의 입장에서 이해시킨다.
자기 동생 고생하는 거 알면서도
그렇게 말하는 언니의 속은 오죽하랴..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