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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현 Apr 22. 2024

(9) 며느리 암 vs 내 아들 감기 ???


일 년이 채 지나기 전 명절이었다.

난 아이들과 함께 안동에 내려갔다.

둘째 며느리였지만 아이는 우리밖에 없었기에

무리해서라도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막히는 곳을 갈 자신이 없어서 라는 핑계로

우리는 명절 전전날 내려갔다.


어린아이들이 자는 틈을 타서 달리고 달렸다.

밥을 먹는 건 생각도 못했다.

아이 둘이 멀미를 하거나 울어대는 게 겁이 났다.

배가 고팠지만 달리고 또 달려~

5시간가량 걸려 늦은 저녁에 도착을 했다.


시부모님은 식사를 하신 시간이었다.

어머님께서 저녁 먹었냐고 물어보셨고

남편이 안 먹었다고 해서 차려주셨다.

저녁밥상은 ‘회’였다.

회와 김치!

내가 먹지 못하고 당황해했다.

남편이 어머님께 곰국 끓여 놓은 거 있음 달라고 했다.

어머님께서 회 맛있으니 그거 먹으라고 하셨다.

남편은 다시 어머님께 요구했고

잠시 후.. 내 밥 옆에 놔주었다.

서글펐지만.. 아무 말 없이 그냥.. 밥을 먹었다.


며느리가 위암 수술을 한 지

1년도 채 안되었는데.. 회를 주신 것이다.


밥을 먹고

시어머님과 담소를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몇 시에 출발한 거냐? 아이들은 괜찮았냐? 등등..

그러다 시어머님께서 내게 물으셨다.

“얘! 애비 왜 이렇게 살이 빠졌니?”

순간 머리를 돌로 맞은 기분이었다.

10kg가 빠진 나는 누가 봐도 얼굴이 안 좋아 보였다.

더구나 가는 내내

멀미도 했고.. 밥도 못 먹어 저혈당으로 힘들었다.

더 핼쑥했으리라..

내 얼굴은 못 보셨을까?

“어머님! 저도 많이 빠졌어요.”

난 차분한 톤으로 대답했다.

시어머님의 대답은 “그랬니?”였다.


울고 싶었다.

울 공간이 없었다.

실은 눈물이 흘렀었지만

아무도 내 얼굴 따위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자고 일어나

난 전을 부치고 일을 했다.

명절 당일 오전에는 많은 친척들이 왔고..

설거지를 했다.

그리고 친정집으로 올라왔다.


수술 후, 반년쯤 지났을 땐

이미 내 주변 모든 사람이 내가 암수술을 했던 것조차 잊은 듯했다.

아니 수술만 하면 그냥 낫는 줄 알았나 보다.

요즘 암은 암도 아니라고 흔한 질병이라고..

아무도 낫는 과정은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나의 친정 식구들까지도..


명절이 며칠이 지났는데도

화가 가시지 않았다.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분노가 더 차올랐다.

정말 쌍욕을 하며 미친 듯이 소리 지르고 싶었다.

소녀 같은 나의 친정엄마에게는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친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말을 시작했는데..

울음 반, 울분 반..

소리 지르며 울기 시작했고..

언니는 나를 대신해 욕을 해주기 시작했다.


너무 시원했다.

한 시간을 웃다 울다를 반복하며 통화했다.

아이처럼 언니에게 이른 것이다.

언니는 정말 속 시원히 욕을 해주고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제부 잡지 마~’

현명한 울 언니!

가끔 남편의 누나인가 헷갈릴 만큼

나를 남편의 입장에서 이해시킨다.

자기 동생 고생하는 거 알면서도

그렇게 말하는 언니의 속은 오죽하랴..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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