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에서 시어머님이 깨를 보내주셨다.
안동 집 앞에서 직접 드실 만큼만 농사를 지으셔서
그 귀한 깨를 한가득 보내주셨다.
택배가 오고 깨를 통에 나눠 담고
뚜껑을 닫으려 뒤돌아 찾는 그 잠깐의 순간.
다시 돌아봤을 때 깨는
식탁에도 바닥에도
이미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아이가 작은 손으로 끌고 가려다
통을 엎어트린 것이다.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덕분에 순간 정신을 차렸다.
살릴 수 있는 깨를 확보하기 위해
깨통을 얼른 세워 뚜껑을 닫아
옆으로 밀어 놓는 순간
물이 엎질러졌다.
아니 아이가 물이 담긴 컵을 엎질렀다.
이제 수습불가..ㅠ
화가 났다.
난 신이 아니기에.
당연한 감정이다.
아이에게 화를 낼까?
혼내줘야 하나?
다시는 안 그러게 따끔하게 얘기해줘야 하나?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잘못한 거를 알리고 가르쳐야 하나?
그런데 아이가 뭘 잘못했다고 말해야 하지?
그러다 알았다.
아~ 깨통을 여기다 놓은 내 잘못이구나.
아~ 이 깨통을 궁금해 한 아이 잘못이 아니구나.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차피 못 먹게 된 깨.
놀이용으로라도 써야겠다.
난 그 깨로 비비고 던지고 또 물에 섞고..
그걸로 나누고 그림도 그리고
먹을 것으로 신나게 놀았다.
아이에게 화내고 치우는 걸 먼저 하고 싶지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이와 오감놀이를 실컷 했다.
물 묻은 손가락에 깨가 알알이 붙어있어
그 손으로 아이의 입에도 대어줘 보고
코에도 묻혀주며 실제 먹기도 해 보며
아이랑 깔깔거리며 잠깐을 신나게 놀았다.
놀고 난 후 감정이 가라앉았을 때
물티슈로 닦아내고 청소기를 돌리고 열심히 치웠다.
그리고 난 후..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엄마로서의 기분 좋음이랄까?
어쩌면.. 나도.. 꽤 괜찮은 엄마가 되겠는걸~?~!
호기심으로 혼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아이에게 제한을 주지 않았으며
자유롭게 해도 좋다는
무언의 허락~안정감이었으리라.
우리나라는 한때,
어쩌면 지금도,
프랑스 아이처럼 키우는 것에 흥분되어 있다.
선진국의 아이들은 이렇게 자라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일까?
하지만 프랑스는 반대로
우리나라의 포대기 육아에 주목한다.
그들이 우리나라의 육아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러하다.
어떻게 그렇게 못 사는 나라에서
이런 민족성이 나오며
그 힘든 시간을 버텨
단기간의 성장을 일으킨 것일까?
그렇다면 그들의 육아문화를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들여다본 프랑스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유아기 시절의 안정감은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정작 엄마들은 힘들지언정
가장 애착관계를 필요로 하는 시기에
엄마의 가슴 또는 등으로
아이와 맞대어 포대기로 엎어 키운 것에 주목한다.
육아에서 주로 안정감을 필요로 하는 시기에
최고의 안정감을 주었다는 평가이다.
(386세대들은 먹고살기 힘든 시절에 아이를
많이 낳아 아이의 육아에 집중하기보다는
포대기로 아이를 둘러업고 일하는 사람들도
많았었다. )
대다수의 엄마들은 엄마가 되고 난 후
‘내 아이는 나처럼 키우지 말아야지’ 혹은
‘내 아이는 나보다 나은 삶을 살게 해 줘야지’ 등의
다짐을 하게 된다.
이건 당연한 모성애 일 것이다.
그러나 육아를 처음 하다 보면
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뭐부터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이렇게 정보가 많은 시대에는
하나의 정보라도 더 듣고 아는 것이
이득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많은 정보들이 쌓이면
헤깔리기 시작한다.
뭣이 중요한지를..
우선 순위가 뒤죽박죽 되기 십상이다.
아이를 남들보다 더 잘 키우고 싶은 엄마들은
내 아이 유기농으로 먹이는 것,
내 아이 좋은 옷을 예쁘게 입히는 것,
내 아이 발달에 맞는 교육을 시켜주는 것 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아이들이 유아기시절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안정감이다.
이건 비단 아이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매슬로의 욕구단계이론에서도 설명하듯
성인도 안정감이 들어야
그다음 욕구가 생각나는 법이니까..
이 안전의 욕구는 생리적 욕구의 다음 단계로
하위에 속하는 기본적인 욕구임에도 불구하고
이 단계에 구멍이 생기면
마음의 병이 생기는 것이다.
사람은 마음의 안정이 안되면
뭘 해도~ 아무리 좋은 것을 해도~
행복을 느끼는 것이 불가능하다.
남들 눈에 행복해 보이거나,
부러움을 살 수 있을지는 몰라도.
세상 어느 좋은 곳을 가도
내 집이 그리운 이유가
바로 이 안정감 때문이다.
그럼 아이들은 안정감을 느낀 다음에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그렇다.
다음 단계인 사랑과 사회적 욕구이다.
아이들도 애정을 느끼고 싶어 한다.
그럼 아이들은 어떻게 사랑을 느낄 수 있을까?
물론 따듯하게 안아주는 것으로도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직접 물어보면
놀라운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이들에게 아빠 엄마 중에
누가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것 같냐는 질문에
주 양육자인 엄마보다 아빠가
자신을 더 사랑한다고 느낀다고
말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다.
매일 밥 해주고 힘들게 뒷바라지해 주며
혼내는 엄마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적당히 눈감아 주며
쉽게 양육하는 듯한 아빠가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것 같다고 말하는
아이를 종종 볼 수 있다.
아이들은 의외로
자신을 자유롭게 해주는 사람이
더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게 해 주면
아이들은 그것을 사랑한다고 느낀다.
누군가의 개입은 불편하고
자신을 싫어해서 방해한다도 생각하기도 한다.
어쩌면..
비싼 장난감이나 좋은 키즈카페보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노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그 눈빛에서 사랑을 느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찰흙놀이나
모래놀이가 좋은 이유는
충분히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성이 보장되어서 이지 않을까?
그럼 도대체 그 자율성이 뭐란 말인가?
자율성은 자기 스스로의 원칙에 따라
어떤 일을 하거나 자기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여
절제하는 성질이나 특성을 말한다.
그런데 엄마들마다 자율성의 범위가 다르다.
또 그 자율성은 때에 따라 다르기도 하다.
우리가 이것을 일관되게 해주는 것은
아이들의 안정감에도 올라갈 것이며
양육자의 신뢰뿐 아니라
사회에 대한 신뢰 역시 올라갈 것이고
(아이에게 양육자는 우주와 같기 때문에)
이것이 바로 자존감과 연결될 수 있다.
그럼 놀면서 성장하는 아이에게
무엇을 해 줄수 있을까?
아이 자존감 높이는 놀이는 많다.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사실.. 꿀팁을 알려드리자면..
놀이보다는 어떤 놀이이든 과정이 중요하다.
답은
힘들게 무엇을 하는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안하는 것이다.
골프를 포함하여 모든 운동이
힘빼는데 평균 3년이 걸린다고 한다.
우리는 좋은 것을 추가하는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안하는 것이
더~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가끔..때로는 너무 자주 잊게 된다.
그래서 자존감을 위한 자율성 향상의 목표로
아래와 같이 제시한다.
첫째. 아이가 집중할 때 흐름을 깨지 않는다.
아이가 집중해서 놀고 있을 때
‘ㅇㅇ아! 잠깐 이리 와 볼래?’ 혹은
’ㅇㅇ아! 이거 봐봐~ 이게 더 재미있겠다.‘하며
집중을 방해하거나
타인에 의해 방향을 바꾸게 하지 않는다.
둘째. 아이가 놀 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영역을
처음부터 명확히 정해준다.
예를 들어 놀이터에서 마음껏 노는데
바지 더러워질까 봐 미끄럼틀을 못 타게 한다든지,
분수 앞에서 옷 젖으면 안 되니
발만 담그라고 한다든지 하며
영역에 제한을 추가하는 언행은 빼주는 것이 좋다.
이 두 가지만으로도
아이의 최소한의 자율성은 지켜지는 것이다.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스스로의 결정이 익숙치 않은 아이들에게
개입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우리 아이들은 성장할 수 있다.
간혹 보이는 유니콘 아이들이 예뻐 보이는가?
잘 차려입은 엄마의 손을 잡고 걷는
고급스럽고 깨끗하게 입혀진 아이.
그 아이가 부러운가?
그럼 그럴 때 그런 아이를 보면 된다.
관상용으로.
그 아이 외면은 관상용이 될 수 있으나
그 아이 내면은 본보기 삼기 창피할 수도 있으니.
자율성!
이것은 자존감을 싹 틔우는 씨앗의 역할을 하며
이것이 성장하며 환경과 상호 보완되어
자존감으로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바로..
엄마의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다.
우리 아이는
엄마의 자존감을 물려받을 확률이
그 어떤 확률보다 높다는 것은
이미 여러 편의 논문에도 나와있고
아마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아이를 감시하거나
참견하거나
혼내는 에너지를
’나’의 자존감을 높이는 곳에
쏟아야 하지 않을까?
이게 힘들다.
이것이 그렇게나 힘든 것이다.
그러나 꾸준히 상기시켜야 한다.
가장 중요한 핵심이
나의 무의식으로 들어가
내가 바뀌는 그날까지.
뿌리가 생기는 그날까지.
파이팅!
다음 편은 엄마로 살아남기에서
엄마의 자존감 높이는 법을 써보겠습니다.
오늘도 평안하세요~
빛날현.
사진: 빛날현의 두 자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