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조금 무거운 날이면 ‘에피톤 프로젝트’라는 가수의 ‘그대는 어디에’라는 곡을 듣곤 했다. 어떤 그대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내가 내 생각의 끝을 따라가다 보니 그 끝에 서 있는 누군가를 쫓았던 것 같다. 그렇게 마음속의 그대를, 누군가를 따라가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단어가 나를 반겼고 그 단어 속에서 어렴풋이 그대가 보였다.
누군가가 경험한 것을 문자로 그것을 머리에 그려보았다. 모두 저마다의 모습으로, 저마다 가지고 있는 단어들의 이미지로 그것을 그리는 것이 알아볼수록 새롭다. 예전에는 자주 들었는데 요즘에는 앨범을 내지 않아 궁금해하고 있었던 사이에 에피톤 프로젝트, 그들은 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들의 여행에 뒤늦게 따라가 보고 있다.
그들이 런던과 파리를 여행 다니면서 경험한 많은 낯선 길거리, 그곳에서 느낀 조촐한 따듯함이 조금 부러워진다. 그 속에서 예상치도 않은 비에 젖은 채로 거리를 걷는 것과 항상 긴장감을 유지한 채로 다니는 것들 물론 부럽다. 언제나 새로움은 그만큼의 행복과 긴장을 주니까.
어딘가로, 무엇으로부터 떠난다는 것은 쉬운 것 같지만, 생각보다 더 어렵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의 익숙함과 내게 주어진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낯설고 그에 따라 생기는 긴장감을 감수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그들이 경험해 준 많은 것들로 말미암아 나는 그곳으로 이렇게 여행을 떠날 수 있다. 그들의 노래를 듣다 보면 그때 그들이 경험했던 비에 젖은 카메라를 누르는 그 손의 물기마저 촉촉하게 전해지는 느낌이다.
나도 어느 순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을 감출 수는 없지만, 내게 주어진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떠나기란 쉽지가 않다. 과연 내가 그곳에서 겪을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을지,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모두 두고 새로운 것에 적응할 수 있을지가 두려워 더 그런 것 같다.
쉽게 떠나지 못하기에 자꾸만 시간이 흘러 계절이 지나가는 와중에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또는 너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조금이라도 더 기억하기 위해서 내가 마주하는 많은 장면과 감정들에 인사하며 그것을 기록하고 사진에 남긴다.
내가 지금 어딘가로 떠날 수 없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그것은 어쩌면 핑계일 뿐이다. 하지만 그래도 떠날 수 없기에 집어 든 이 책이 조금이나마 나를 위로해준다. 내 기억 속에 그 멜로디와 그들의 이 경험이 나에게 주는 작은 선물처럼 그 세계를 내게 선물해준 것 같다.
책에 담긴 많은 단어가 마치 내 마음속의 단어들 같았고, 그 단어가 그리는 그림이 내 마음속에 폭 담겨 새겨졌다.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언제든 꺼내볼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