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든 날

by 지현옥


눈부신 햇살이

창문을 두드리는 아침.

얼마 만의 햇살인가.

밖으로 나왔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얇은 외투 깃 속으로

알맞게 선선한 바람이 파고든다.


햇살이 머문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내내 비에 젖었던 가을은

조금 더 짙고 그윽해졌다.


떨어져 내린 낙엽들 위로

노란 가을볕이 뒹굴고

간만에 올려다보는

높고 푸른 하늘에

가을이 실감 나는 날이다.


동네 앞 가막들공원에서

발길이 멈췄다.

야트막한 산길

동화 속에 나올 것 같은

통나무 원두막에 앉았다.



영롱한 햇살이

온 숲을 파고든다.

햇살을 머금고

숲이 웃는다.


​나뭇잎들은 가장 예쁜 옷으로 갈아입으려 준비 중이다.

이미 갈색 옷을 입은 수국들.

길게 올라온 꽃대 위에서

하늘거리는 바늘꽃은

춤추는 나비들 같다.


아름다운 자연의 품에서

숲을 닮은 듯

나의 마음속에도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공원 옆 작은 도서관에서

책 한 권을 빌렸다.

숲의 냄새와 청명한 햇살 속에서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를 읽었다.


슬프지만 아름답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젊은 의사 이야기.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맘속에 한줄기 바람이 인다.

짧지만 뜨겁게 살다간

한 영혼의 숨결이 느껴진다.


​아름다운 가을 날

꽃보다 아름다운 생을 만났다.


​예쁜 하늘은 다시 비구름으로 어두워진다.

눈이 부시도록 맑은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덮을 줄이야.


​아름다운 건 다 너무나 짧다.

매 순간 후회 없이 살아야 할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