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이 슬그머니 옆에 와 있다.
1월을 다낭살이로 따스하게 보내고 돌아와 며칠 동안 추위에 움츠려 있었는데, 2월이라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지고 움직이게 된다.
겨우내 추위와 버텼을 속달동의 안부가 궁금해져 오랜만에 발걸음을 했다.
매화나무 가지마다 꽃눈이 통통하게 부풀고 있다. 절기의 변화를 나무가 먼저 알고 준비한다. 봄이 저만치서 오고 있다고 바람이 보고 와서 미리 알려주나 보다. 입춘이 오고 있다는 걸 산수유도 벚나무도 벌써부터 알고 있었나 보다. 자세히 보니 추위 속에서도 가지마다 물을 올려 꽃눈을 키우고 있었다.
언제나 그러하듯 자연은 자기들끼리 조용히 소통하며 순응하고 앞서 간다. 소나무 잎새 사이로도 봄바람이 지나고 있다. 솔잎 색이 많이 연해졌다. 멀리 보이는 수리산도 탁한 갈색옷을 벗으려는 듯하다. 춥다고 웅크리고 있었던 건 나뿐이었나. 아랫집 대문에 입춘대길, 건양다경이라는 입춘첩이 붙어있는 것을 보고서야 입춘이 가까웠다는 걸 알았다.
24 절기 중 첫 번째인 입춘은 이제 농사일을 시작할 준비를 할 때이다. 入春이 아니고 立春이다. 그냥 준비된 봄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잠자고 있는 봄을 깨워 일으켜 세워야 할 때이다. 꽁꽁 얼어붙었던 뜰을 깨우러 봄바람이 먼저 오고, 햇살도 찾아들었다.
쥐불을 놓아 잔디를 태우고 불장난을 하며 땅에 온기를 주었다. 쥐불놀이는 마른풀과 잔디에 붙어있는 유충을 없애 병충해를 방지하고 풍년을 기원하던 정월 대보름 세시풍속이다. 불놀이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다.
잔디가 타들어가는 모습은 마치 도미노가 쓰러지는 장면 같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 액운을 태우고 새싹이 잘 올라와 풍작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불과 진종일 놀았다. 검게 그을린 땅은 마치 가장 화려한 초록을 피워내기 위한 검은 도화지 같았다.
물론 얼굴이 재투성이가 되고 옷에도 불냄새가 났지만 옷에 밴 불향이야말로 풍년을 기약하는 기분 좋은 향이었다. 매캐한 연기 속에서 해묵은 걱정거리들도 한 줌 재가 되어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설날도 지나지 안 않았는데 정월 대보름 기분을 미리 제대로 냈다. 올해 농사는 보나 마나 대박일 것이다. 곧 속달동에 찾아 올 경이로운 변화에 벌써부터 설렌다.
닭들도 봄내음을 맡았는지 웅크리고 있던 횃대에서 내려와 부지런히 모이를 쪼며 놀고 있다. 추운 겨울을 어찌 보냈는지 길양이들도 기지개를 켜며 눈치껏 담장을 타고 내려온다.
겨우내 사철나무 열매 쭉쟁이를 뒤졌을 참새들의 짹짹임도 유난히 경쾌하다. 놀랍게도 화분 한 구석에 매발톱이 얼굴을 내밀었다. 가장 약해 보이는 것이 맨 먼저 언 땅을 뚫고 초록잎을 틔어내다니 감동이다.
생명은 위대하다. 긴 한파와 폭설 속에서도 의연히 버티고 각자의 방법으로 살아남아 다시 선다. 꽃샘추위가 오고 몇 번의 문턱을 더 넘어야겠지만 이미 봄은 여기저기에 와있다. 자연의 섭리와 이치를 따르며 꿋꿋하게 또 한해를 살아갈 준비로 입춘 마중을 했다. 자연을 따르는 삶이 최선의 삶이지 않을까. 한결 누그러진 바람과 오후 햇살에 봄기운을 느끼며 나도 마음의 문에 입춘첩을 붙였다.
立春大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