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마을의 피자 파티
쏟아지는 가을 햇살이 아까워 뭐라도 널어 말리고 싶은 날, 눈 부신 햇살만큼이나 아름다운 만남이 있었다.
속달마을에 '사람 뜰'이라는 소박한 공유 공간이 생겼다. 내가 가꾸는 마당과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자그마한 공간이다.
오가는 낯선 분들과 울타리 너머로 눈인사를 나누며 한 계절이 갔다. 하늘이 높아지고 가을꽃들이 화단을 채워 갈 때쯤, 꽃 이름을 묻는 분들이 생겨나고 좀 더 친해지자며 풀꽃 초대장을 보내왔다. 마당에서 피자를 굽는다고 했다.
화덕에서 타닥타닥 타오르는 통나무 불꽃이 정겹고, 진한 치즈향이 시골 마당을 풍미 가득한 베이커리로 만들고 있었다.
준비하는 사람들의 분주한 모습에선 사람 사는 냄새가 풍겨났다. 바삭한 피자, 가을향을 품은 야채 모둠 구이, 상큼한 샐러드, 따뜻한 꽃차, 모든 먹거리가 색색의 그림 같았다.
테이블마다 놓인 가을 소국은 계절감을 더했다. 게다가 창밖으로 펼쳐진 들판과 수리산 풍경이 차경으로 들어와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 못지않았다.
무엇보다 마음을 채운 건 사람이었다. 알록달록한 먹거리만큼이나 사람들도 다양했다. 나이에서 직업까지 각양각색인 사람들을 작은 공간이 웃고 어우러지게 했다.
주말농장인 '개울건너밭'을 운영한다는 텃밭언니, 도시 농부학교를 주관하는 어르신, 농사가 좋고 이곳이 좋아 8년째 농사를 배우고 있다는 미국인 앨리스, 두 아이를 키우며 5년째 주말농장서 먹거리를 키운다는 일본인 젊은 새댁, 아이를 산울대안학교에 보내며 12년째 이 마을에 살고 있다는 중년 엄마, 이젠 청년이 되어 바이올린 만드는 걸 배우고 있다는 그분의 아드님, 모스크바에서 무역업을 하다 러시아 정세가 불안해 이곳 부모님 집으로 들어왔다는 청년, 한국어 공부에 빠져있다는 그의 아내이자 러시아 수의사 아나스타샤, 홍성 풀무학교를 졸업하고 농사의 소중함을 알아가고 있다는 앳된 숙녀, 직접 재배한 식재료와 우리밀로 빵 굽는 재능을 기부하며 공동체 모임을 이끌어 가고 있는 분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대중가요 가사가 생각났다.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을 가꾸며 열심히 살아가는 이 분들이 곧 이 작은 공동체의 꽃들이 아닐까. 20대 젊은이에서 일흔이 넘은 어르신까지, 동네 토박이에서 이국만리 타국인까지, 학생, 주부, 전문 분야 종사자까지 격의 없이 소통하고, 먹고, 정을 나눈 하루였다.
다소 서툰 한국말로, 간간이 섞는 영어로도 어울리기에 충분했다. 소통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님을 보았다. 제각각인 듯하지만 자연이 좋아 흙을 만지고 산다는 공통점 하나가 대화로 이어지고, 마음이 열리고, 자연스럽게 여유와 넉넉함이 찾아들었다. 이곳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하는 진정한 '사람 뜰'이었다.
햇살 가득한 마당에서 마음까지 보송해지고 사람들의 온기로 가슴이 말랑해졌다.
사람 사는 일이 사람 때문에 힘들고 막막해지는 날도 있지만 사람 때문에 웃고 또 살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