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표현하는 말들은 참 많다.
새싹, 꽃봉오리, 아지랑이처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명사들이 있고, 희망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형용사들도 많지만, 봄은 무엇보다 생동감 넘치는 동사의 계절이다.
녹다, 움트다, 깨어나다, 돋아나다, 피어나다, 수놓다 등과 같은 시작과 보여줌의 의미를 내포한 단어들이 새봄의 꿈틀거림을 잘 묘사한다.
그렇지만, 내가 좀 더 주목하고 좋아하는 동사는 따로 있다. '캐다'와 '뜯다'.
어릴 적 이맘때면 들판을 돌며 몸에 익고 각인된 단어들이다. 게다가, 봄을 캐고 뜯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머릿속에 박혀 있다.
봄바람을 맞으며 뜯고 캐낸 쑥떡과 냉잇국은 향긋하고 햇살 냄새가 났다. 그 봄맛을 뇌가 강하게 기억하고 있으니 '뜯다'와 '캐다'에 마음이 머무는 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땅을 비집고 올라온 쑥과 냉이를 찾아 허리를 숙이는 순간, 가까이서 봄과 눈을 맞추게 된다. 즉, 뜯고 캐는 행위는 봄의 속살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만져보는 체험이다.
흙을 헤치고 줄기를 끊어내는 손끝을 통해 봄은 비로소 우리의 감각 속으로 들어오고 몸속으로까지 들어온다. 결국, 나에게 봄의 정취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은 '나물을 뜯다, 나물을 캐다'는 동사로 점철된다.
봄나물은 눈으로만 보기엔 너무나도 귀하고 강한 생명력을 품고 있다. 달큰하고, 쌉싸름하고 풋풋하고 싱그럽다. 초록으로 움튼 봄의 정취를 바구니에 차곡차곡 담아 가는 것도 봄에만 느낄 수 있는 기쁨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 자연이 차려놓은 생명력의 잔치에 초대받았다. 나는 속달동 작은 터에서 그 잔치에 기꺼이 동참한다. 어릴 적 기억대로 나물을 캐고 뜯는다.
오늘은 매화나무 아래서 오랫동안 땅을 응시하며, 작고 낮은 봄 손님들과 눈 맞추고 놀았다. 아직 꽃망울을 터뜨리기 전인데도, 매화나무 주위는 벌써 분주했다. 꽃을 피우기 위해 제 안의 모든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일까, 주변이 따뜻하고 환했다.
돌나물이 한 뼘씩 영역을 넓혀가고, 가느다란 달래 줄기도 눈에 들어왔다. 이름 모를 풀꽃도 보였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흙색 냉이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단 몇 뿌리를 캤는데도 손끝에서 냉이 향이 났다.
이어 텃밭으로 옮겨, 월동 시금치와 겨울을 난 움파를 몇 뿌리씩 캤다.
겨울의 모진 칼바람을 이겨내고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던 시금치는 잎사귀 끝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흙 속에 몸을 숨겼다 누런 떡잎 속에서 다시 고개를 내민 움파의 새 초록과 흰 밑동은 또 얼마나 선명하고 윤이 나던지.
달큰한 시금치, 움파의 싱그러운 색감과 진한 향, 그리고 흙의 기운을 고스란히 품은 냉이로 저녁상을 차렸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된장찌개에 냉이 몇 뿌리를 툭 던져 넣자 순식간에 집안은 봄 향으로 가득 찼다. 달디단 월동 시금치는 씹을수록 달큰한 즙을 내뿜었다. 바삭하게 구운 곱창김과 노릇하게 지져낸 두부구이에, 움파를 잘게 썰어 넣은 양념간장을 곁들였다. 참기름 향보다 파 향이 더 코를 자극했다.
창밖은 어느덧 어둠이 깔렸지만, 식탁은 한낮의 매화나무 아래처럼 봄기운으로 환했다.
화려하게 흐드러진 꽃잔치도 좋지만, 흙 속에서 갓 올라온 새봄의 첫물들로 차려낸 소박한 밥상이야말로 내가 만날 수 있는 가장 값지고도 깊은 봄의 정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