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너머로 불어오는 들녘의 바람결이 제법 보드랍다. 춘분이 지나면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더니, 이제 정말 완연한 봄이다. 볕 좋은 마당에 제비 대신 산수유가 찾아왔다.
가지 끝마다 다닥다닥 매달린 노란 꽃망울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어미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한 번이라도 더 받아먹으려 새끼 제비들이 경쟁하듯 노란 입을 벌리고 있는 것 같다. 바람이 슬쩍 가지를 흔들고 지나가면, 수천 마리의 새끼 제비들이 일제히 짹짹거리며 아우성을 치는 환청이 들리는 듯하다.
겨우내 딱딱하고 차가운 껍질 속에서 햇볕 한 모금을 갈구하며 긴 잠을 버텨낸 꽃잎들이 마침내 깨어난 것이다. 수천 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옛집 처마를 찾아오는 제비처럼, 산수유 역시 시린 겨울을 견디고 어김없이 내 마당에 봄을 몰고 왔다.
한낮의 볕이 마당 깊숙이 내려앉는 오늘, 참았던 허기를 달래듯 일제히 노란 꽃잎을 터뜨렸다.
경망스럽지 않은 겨자빛 노랑, 올망졸망 붙어있는 작은 꽃들이 반짝이는 별빛처럼 마당을 밝힌다. 작아서 더 사랑스럽다. 아직은 삭막한 마당에서 노란 봄볕처럼 따뜻함을 안겨준다.
나무를 싫어하는 이 없겠지만 나는 유독 나무를 좋아한다. 존재 자체만으로 편안함과 행복감을 주는 사람이 있듯, 나무는 내게 그렇다. 나무마다 특징이 있고 다 다르지만, 특히 산수유에 마음이 가는 건, 함께하는 시간이 길기 때문일까.
찬란하게 피었다가 이내 져버리는 꽃들과 달리, 산수유는 오랫동안 곁에 머문다. 마당에 가장 먼저 꽃으로 찾아오고, 가을이 되면 노란 꽃자리에 붉은 열매를 맺어 다시 한번 자신을 증명한다. 한겨울 엄동설한에도 새빨간 열매는 무채색 겨울 풍경에 알알이 박혀 새봄이 멀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다시 온 봄, 올해도 산수유꽃은 햇병아리처럼 앙증맞고 몽실몽실하다. 갓 태어난 새끼들의 재잘거림 같은 꽃들을 보고 있자니, 그 수많은 꽃을 피워내느라 너덜너덜해진 나무줄기가 눈에 들어왔다. 노란 피를 남김없이 끌어올려 꽃을 피우고 쇠잔해진 줄기는 어디선가 본 듯한 앙상한 몰골을 하고 있다.
멀리 떠나시기 전, 헐렁한 옷 사이로 드러났던 어머니의 팔다리를 보는 듯하다. 자식들을 꽃으로 키워내느라 정작 당신의 몸은 돌보지 못한 채, 아무 말 없이 누워 계시던 그 애잔한 마지막 모습이 눈에 선하다.
화사한 꽃을 보다가 만신창이가 된 줄기를 다시 보았다. 마치 어머니를 뵙는 듯하다. '영원불멸의 사랑'이라는 꽃말조차 어머니를 꼭 빼닮았다. 내가 왜 산수유나무에 그토록 마음이 머무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오고, 산수유꽃도 다시 활짝 피었건만, 노란 봄 햇살 속에 떠나신 어머니는 소식이 없다. 흐드러진 산수유꽃들의 한바탕 아우성에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만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