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준비

by 지현옥


매일 오가던 거리가 우리 동네 골목처럼 익숙해지고, 오토바이 경적소리가 무뎌져가는데 헤어질 준비를 해야 한다.

여행은 그런 것이다. 비로소 그곳이 낯설지 않게 되었을 때, 다시 떠나야 하는 시간을 맞이한다.


지난번 신세를 졌던 한국인 부부에게 연락을 했다. 배가 아팠던 날, 해변 산책을 나갔다 우연히 만난 분들이다. 한달살이 거처에서 누룽지를 끓여준 마음이 내내 고마웠다. 떠나기 전, 밥 한 끼라도 대접하고 싶었다. 흔쾌히 나와 주셨다.


박리안시장에서 싸고 싱싱한 갈치가 있어 사 왔다며 갈치무조림으로 또 점심을 해주겠다고 했다. 그건 아니라고 자주 갔던 베트남 식당 '벱쿠온'에서 만났다.



벱쿠온은 미케 비치 근처에서 한국인 입맛에 맞는 깔끔한 베트남 가정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제미나이가 알려준 식당으로 나의 까다로운 요구를 비교적 만족시키는 집이라 단골로 들락거리게 되었다. 서양 여행객들에게도 인기가 있어 웨이팅이 다소 길지만 기다린 시간이 아깝지 않다.


그분들은 아파트를 얻어 한달살이를 하면서 주로 한국 음식을 해 먹는다고 하였다. 어딜 가나 음식에 입 가림이 심한 나보다 더 신토불이 토종 한국인 입맛이었다. 가장 무난한 쌀국수와 해물볶음밥, 월남쌈 롤, 공심채로 그분들도 맛있게 드셨다. 근처 하이랜드 커피점에서 소금 커피로 마무리를 하고 작별을 했다. 위에서 스치는 만남이 여행을 더욱 의미있고 풍요롭게 한다.



하이랜드는 베트남 국민 카페 체인이다. 매장이 넓고 사람이 많아 다소 소란스러운 감은 있지만, 우리나라 스타벅스처럼 목 좋은 곳에 있어서 베트남에 처음 가는 여행자에겐 오토바이 물결과 사람 구경하기 좋은 곳이다. 커피 맛도 부드럽고 좋다.


베트남은 세계 2위 커피 산지다. 커피는 쌀과 더불어 베트남의 가장 중요한 수출 품목 중 하나로 그들에게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삶이다. 길가에서 마시는 천 원짜리 커피도 나쁘지 않다. 인도 목욕탕 의자에 앉아 마시는 커피는 베트남 여행의 상징이기도 하다. ​커피 마니아는 아니지만 골목에 풍겨 나는 커피 향이 벌써 그리워질 거 같다.



구경만 하고 나왔던 한 시장에도 다시 갔다. 관광객들이라면 빠지지 않고 간다는 공산품 위주의 시장이라 역시 혼잡했다. 베트남의 값싼 노동력으로 만들어진 각종 아웃도어 제품들이 말도 안 되는 착한 가격이었다. 한국 여행자들도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나도 아들딸에게 줄 반팔 티를 하나씩 샀다.



바다색이 예뻤던 선짜반도의 풍경도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날씨가 흐려 기대한 비췻빛은 아니었지만 야자나무 그늘에 앉아 물멍, 하늘멍을 했다.


매일 가던 마사지숍에서의 달콤한 휴식과 호사도 마지막으로 누렸다.​ 이방인의 어설픈 눈으로 바라보던 것들이 18번의 해가 뜨고 지는 동안 어느덧 나의 일상이 되어 아쉽게 느껴졌다.


잠깐 머물고 가는 여행지와의 헤어짐도 미련이 남아 하루 종일 종종 거렸는데, 마지막 떠나는 인생길과의 작별은 어떨까. 후회 없이 살 일이다.


어떻게 산들 미련이 없겠는가마는 여행지에서 시간을 챙기듯 알뜰살뜰 살아야겠다. 머무는 숙소도, 지나가는 풍경도 내 것이 아니기에 소유하려 애쓰지 않는다. 대신, 유한한 시간이 아까워 더 열심히 보고, 더 깊이 몰입하고 감동한다.


인생도 여행이다. 하루하루를 함부로 허투루 보내지 말자고 다짐하며 다낭에서의 마지막 잠을 청했다. 고요해진 어둠 속으로 야식을 파는 '바잉 미(Bánh Mì)'외침소리가 들려왔다.


특유의 리듬감이 옛날 출출한 겨울밤에 듣던 우리나라 '찹쌀떡~ 메밀묵~'같은 감성을 풍기며 골목에서 멀어져 갔다.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