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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권 Jun 20. 2024

22화. 김대표의 뚝심

'내 나라임에도 이렇게 사업이 힘들 줄이야.. 해외로 본사를 이전해야 되는 걸까'

기운 빠진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언제까지 버텨야 할지 기약없는 회사에 꽤 많은 직원들이 자신을 떠나갔다.호텔 조식을 챙기며 김대표는 간밤의 온 이메일을 챙겨보았다. 반가운 메일 하나가 보였다.

과학기술부 산하 기관인 NEIPA라는 정실장이었다.


"대표님, 드디어 과기부에서 150대를 만오천대로 늘릴 수 있다는 변경공지문이 내려왔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대표님!!! 그간 마음고생 심하셨을 텐데,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추후 진행되는 작업은 제가 잘 챙겨서 백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대표님."


김대표는 만감이 교차했다. 이것으로 디디박스 내 나라에서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잠시나마 그간의 고생이 위로받는듯 했다. 그러나 현실은 이미 죽어가는 패잔병이었다.150대라는 터무니없는 초기 허용대수로 수년간 영업할 기회는 찾지 못해 결국엔 자본잠식 돼 가는 회사를 보자니, 억장이 무너졌다. 일시적 위로와 깊은 허탈감이 동시에 밀려오는 지금, 김대표는 도준이 떠올랐다. 15,000대 허용을 위해서 회사 자금흐름과 추정 매출을 비롯한 재무자료 5년 치를 느닷없이 제출하라는 주무부처 사무관의 지시였다. 영세한 운수업과 배달대행업을 작게 운영했던 대표 입장에선 자료 자체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난감했다.


그때 생각난 사람이 도준이었다. 항상 힘  때마다 따뜻하게 응원 해주었던 였다. 짧은 고민을 마치고, 곧바로 도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리님, 저 좀 도와주십시오!"

도준은 김대표의 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15,000대로 확대변경을 위한 재무리포트를 작성해 주기로 했다. 주말을 이용해 빠르게 만들어낸 자료는 결국엔 주무부처의 의결논거로 쓰이게 됐다.

뛸 듯이 기뻐할 도준의 모습이 김대표 눈에 아른거렸다


두바이 IOT사물인터넷 전시 5일 차,

아침을 든든히 한, 김대표의 마음엔 무언지 모를 단단한 희망 하나가 싹트는 중이었다.

 

'지금까지도 버텨왔다. 한국에서도 좋은 소식도 왔다시 뛰어보자!'


김대표가 두바이에 날아온 지 그 새 일주일이 돼 간다.

혼자서 일당백의 자세였다.  

전시회에서 나눠준 명함만 벌써 3통이 넘어가는 중이었다.

그만큼 주목받는 물건이었다. 

특히, 중동의 사정은 한국의 사정과 달랐다.

두바이 교통관리부에선 디디박스라는 LCD광고배달통이 도리어 교통사고를 방지한다고 판단했다.

디디박스 제품이 시장에 유통되도록 적극적으로 규제를 바꿔주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그들에겐

신시장을 개척하는 것과 동시에 교통사고를 예방한다는 두 마리 토끼를 주목했다. 혁신도시국가에 맞게

전기오토바이와 디디박스의 합작품에도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전시회의 피날레를 장식할 걸출한 기업 하나가 김대표 앞 서있었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저희는 탈라밧에서 왔습니다. 혹시 딜리버리 히어로를 아시나요? 저희 모회사입니다."


라밧을 김대표가 모를 리 없었다. 두바이 중동전시회준비하면서 이들의 관한 자료조사는 이미 마친 상태였다. 배달의 민족 역시 국내의 대표적인 배달플랫폼사이면서 독일계의 딜리버리 히어로에게 4.7조 원이란 어마어마한 가격에 인수되었다. 라밧 역시 중동의 대표선수로 딜리버리 히어로가 수년 전 인수한 회사였다. 김대표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긴장감이 몰려왔다.

 

"반갑습니다. 김길상 대표입니다."


라밧은 디디박스가 히트상품이 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런 이유로 전시회 첫날부터 주변을 서성이다가 전시회 마지막 날 김대표에 다가온 그들이었다.

  

"대표님과 거래를 제안드리고 싶습니다. 함께 논의할 수 있을까요?"


전시회 부스에서 시작된 논의는 그렇게 1시간을 넘어서고 있었다.

김대표는 논의를 정리하는 선에서 마무리 발언을 했다.


"당신들의 회사와 디디박스가 협업한다면, 타 경쟁사에는 제공하지 않을 우선 계약을 체결하겠습니다. 다만, 당신들이 제시한 100대 물량계약은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적어도 1000대 이상은 계약해 주어야만 우리로선 비즈니스가 가능합니다. 이점 내부적으로 검토해 주시고 연락 주시면 좋겠습니다."


코로나가 끝나가면서 대형 배달플랫폼 사들 대부분이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을 김대표는 알았다.

비대면시장에 맞춰 급격히 성장한 배달시장은 대면시장의 회복과 주머니사정의 어려움 등으로 배달의 필요성이 확연히 줄게 되었다. 이는 배달플랫폼사들의 수익에 큰 타격을 주었고, 살아남기 위해 원가절감, 신사업 진출 모색 등이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그럼에도 뚜렷한 답을 못 내던 차, 누군가의 눈에는 디디박스가 들어온 것이, 지금의 라밧이기도 했다.


한국 정부의 답답한 행정처리로 수년 간 100대에 묶여 시장을 탭핑 할 수도 없었던 불운이 코로나가 끝나 전혀 다른 방향에서 대운이 몰려오고 있었다. 새로운 수익모델을 발굴하지 않고선 생존을 위협받는 배달플랫폼사에겐 디디박스의 존재는 한 번쯤 고민할 수밖에 없는 물건이었다.

누구도 배달통은 배달대행사들의 고정된 점유물이었을 뿐, 실시간 광고라는 수익모델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중동의 대표플랫폼 탈라밧 역시 같은 고민을 갖고 있었고 결국 김대표 앞 협업의 제안을 던졌다. 다만, 누구도 해보지 않은 길이기에 신중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선 최소물량 100대만을 요구해왔다. 그들에겐 1000대 이상 매수해야 한다는 김대표의 제안은 다시 심사숙고해야만 했다.


그렇게 두바이 전시회가 끝나가는 그 무렵, 초로 하게 혼자서 두리번두리번거리는 한 젊은 외국인이

김대표 앞에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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