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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권 Jul 18. 2023

1화. 스리랑카는 안 가고 싶어요


# 2003년 재단 사무실


"사실.. 스리랑카는 안 가고 싶은데요. 홍콩만 가면 안돼요?"


인턴을 총괄하던 재단 국제팀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야 인마, 어떻게든 너 보내주려고 하는 거야. 윗분들은 경험 없는 인턴이 곧바로 홍콩 파견 가는 건 원하지 않아. 스리랑카에서 필드경험 쌓고 넘어간다고 생각하자.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다."


1년이 넘도록 재단 활동에 매진했다. 겨드랑이 땀나게 뛰었다. 그 와중에 도준을 눈여겨본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홍콩아시아인권위원회 사무총장 지산이다. 매년 5.18 민주항쟁 기념식에 맞춰 수 십 명의 외국인들이 광주를 찾았다. 지산은 일행 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에겐 사뭇 여유가 있었다. 벌써 광주 방문이 다섯 번째이니 그게 가능했다. 수십 명의 외국인 손님맞이로 정신이 없었다. 스타렉스로 광주 곳곳을 돌며 가이드를 했다. 입에 단내 나며 종종 웃음 짓던 도준의 모습이 꽤나 신뢰를 줬나 보다.


"I've been seeing you, how about sending you to Hong Kong?" I'll ask the secretary-general"

"Oh. thank you for your words. It's an honor for me"


그러나 재단 관계자들은 도준의 이력을 못미더워했다. 홍콩은 경험 많은 사람이 가야 된다는 논리였다. 총 파견기간 6개월 과정에서 스리랑카 3개월을 끼워 넣은 이유다. 갑작스러운 파견나라 변경 통보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도대체 지도상 어딘지도 모르는 스리랑카를 왜 가야 하는데... 알고 보니 내전도 끊이지 않았다. CNN 속보에 간간이 나오던 그 테러들이 일어나는 곳. 스리랑카.


'하... 이건 정말 아닌데..'


그렇다고 다른 선택지도 없었다. 그놈의 돈이 없기에. 광주라는 좁은 구석에 매일같이 똑같은 자신이 그냥 싫었다. 성장하고 싶었다. 이놈의 대한민국을 벗어나고 싶었다. 세상밖으로 나간다는데 스리랑카인들 어쩌리. 그런데 자꾸만 '내전'이란 단어가 무서웠다.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순식간에 뭉게뭉게 커져갔다. 지금 어디로 휩쓸려 가는 거지.


# 백양사


마음의 평화, 백양사 가는 길에 들어섰다. 10월의 백양사는 호젓하기 그지없다. 내장산부터 내려온 단풍이 백암산 온 산을 붉게 물들였다. 호숫가에 비치는 단풍에 잠시 눈이 호강한다. 평일이라 눈에 띄게 사람이 없다. 길 따라 대웅전 앞에 도착했다. 역시나 사람도 스님도 없다. 머뭇거리다 신발을 벗고서 가장자리 끝에서 부처님을 바라봤다. 계란형 얼굴에 웃는 듯 안 웃는 듯한 눈매, 커다랗고 축 늘어진 귀, 가느다란 손가락 끝선. 산에서 내려온 공기가 좌에서 우, 그리고 중앙으로 휘돌아 쳐 나갔다. 부처상과 1분 정도 응시하고서 다음 순서인양 눈을 감았다.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를 여러 번 하니 편안해졌다. 그리고서 물었다.


'나는 왜 떠나려 하지?'

'위험한 스리랑카에서 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대찬 인생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제대로 된 성장을 맛보고 싶습니다'

'근데 솔직히 두렵습니다. 죽을지도 모르잖아요.

제일 중요한 건 제발 안전하게 돌아오게 해 주세요... 저 오래도록 잘 살고 싶어요'


몇 마디 더 물었고 스스로 대답해 보았다. 조금씩 차분해져 가는 자신이 보였다. 두려움을 누루고 설렘이 커져가는 느낌이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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