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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권 Jul 18. 2023

2화. 우다르


# Colombo 7 주스리랑카 대한민국 대사관


..

우다르는 이마에 땀을 훔쳤다.  

오늘로써 비자 발급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끝냈다.

발길을 뒤로하고 나오려니 플래카드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한국-스리랑카 외교관계 수립 26주년 기념식’


참으로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병색이 짙어가는 어머니에 가난한 형편은 도대체 나아지질 않았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한국행'


스리랑카 대졸기준 평균 월급여 15만 원. 한국 그것의 20배를 벌 수 있게했다. 한국행만이 질척이는 삶을 끊어낼 수 있었다.  


우다르의 고향 갈레는 한국어 학원이 없다. 콜롬보로 가야만 했다. 매주 토요일 이른 새벽마다 콜롬보로 향했다. 왕복 8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서 한국어 학원을 다녔다. 한국 근로자가 되기 위한 준비과정과 기본적인 한국어를 배우는 곳이었다. 한번 다녀오고 나면 온몸이 녹초가 되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기회는 왔다.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 지, 우다르는 한국어시험 우수 합격자로 선발됐다. 한국 정부로부터 취업 허가를 보장하는 구직표가 전달 됐고 스리랑카 해외고용청은 한국교육훈련원 3주 과정 합숙대상자로 통지문을 보내왔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우다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고생 많았다... 우리 아들."


어린 시절, 한없이 맑게 뛰놀던 아이가 어느 새 집안의 기둥으로 우뚝 서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아직 무엇도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훈련원 생활을 무사히 마쳐야만 숨 좀 고를 수 있었다.  


훈련원 생활은 말 그대로 군대였다. 체력 훈련은 한국 공장의 노동 강도를 견뎌내기 위해 4시간씩 강도 높은 군대식 훈련으로 대체했다. 언어 훈련은 의무적으로 한국어로 읽고 쓰도록 했다. 특히 공장 용어와 필요한 인사말을 숙지해야만 했다. 그 외 세부교육을 끝마치기까지 한국에서 원하는 근로자가 되기위해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이런 시스템 덕분에 한국 고용노동부가 주관하는 사전교육훈련심사 대상 15개국 중 단연 스리랑카가 최고 점수를 받았던 이유였다.     


우다르는 한국이란 나라가 좋았다. 6.25 전쟁 이후 한국은 스리랑카보다 못 사는 나라였다. 불과 50년 만에 일궈온 한국경제는 그야말로 드라마틱했다. 스리랑카는 여전히 후진국에 머물렀고 한국은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다. 우다르는 자신을 성장시키기엔 한국만 한 나라도 없음을 알았다.  


갈레에서도 한국을 다녀온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 그들 대부분은 집을 사고, 비싼 벤을 샀다. 스리랑카의 평범한 직장인으로는 모을 수 없는 돈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스리랑카에선 벤으로 여행업을 하며 적지 않은 돈을 벌었다. 벤은 그 자체로 부를 축적해 줄 자산이었다. 부의 추월차선에 올라선 그들의 삶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 이상의 부를 일구는 사람은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우다르는 그들보다 더 큰 부자가 되고 싶었다. 그들과는 또 다른 자신만의 방식으로 크게 성장하고 싶었다. 갈증이 커질수록 답답한 마음 역시 커져갔다. 갈레, 아니 스리랑카를 서둘러 떠나야 했다.


# 카투나야케 공항


자정을 넘긴 시간, 부모님과 약혼녀인 마누시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가족의 생계를 이고 떠나는 그를 보자니 마음이 미어졌다. 우다르는 특히나 수척해진 어머니와 마누시를 안심시켰다.


“걱정 마세요. 그동안 준비 잘해왔잖아요.”


약간의 곱슬머리에 스리랑카 특유의 선한 얼굴을 갖은 우다르. 그의 자신감엔 한국에서 할 고생은 사서도 할 각오였다. 그만큼 절박한 선택이었다.


우다르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동년배처럼 보이는 친구들도 가족들과 헤어짐을 준비하고 있었다. 가족과 자신을 위해 떠나야만 하는 지금, 그들 모두의 가슴엔 설렘과 걱정이 함께했다. 우다르는 대한민국행 새벽 티켓과 여권을 바라봤다. 짙은 어둠 끝에 찾아든 여명과도 같은 희미한 희망처럼 보였다. 잠시 후 공항 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지금부터 7C1405편, 인천행 탑승을 시작하겠습니다. 탑승객은 7번 게이트로 오시기 바랍니다”    


'힘들더라도 버틴다. 반드시 크게 성장하고 오겠다'


우다르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마지막 인사는 그의 단호한 마음처럼 간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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