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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권 Jul 18. 2023

3화. 놓치고 있던 행복


# 스리랑카 네곰보 브리또아저씨 집


숙소가 마련되기까지 파견단체 사무총장인 브리또 가족과 함께 살았다. 키가 컸던 도준에게 침대는 참으로 작았다. 모기장 역시 침대크기에 맞춰졌고, 발은 이내 밖으로 삐져나왔다. 저녁내 모기들의 만찬이 되었고 습한 열대기후에 밤잠을 설쳤다.


"리 말리(리 동생)! ~ 떼 본느(차 마셔)"


망글리아 아주머니의 부드러운 기상소리다. 아침 기상할 때면 따뜻한 모닝 밀크티를 꼭 준비하신다.

뒷마당에서 딴 바나나 한 손을 내오면서 말이다. 부엌 내 달콤한 밀크티 향이 피어오른다.  


"후루룩. 크~~"


한 모금에 피 빨린 혼수상태(?)로부터 빠르게 깨어난다.  

그런데 수일 전부터 밀크티 가장자리로 거무스름한 점들이 한두 개씩 보였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이게 뭐지?'

"아주머니, 혹시 이 검은 거는 뭐예요?"


왠지 불길한 마음으로 물었다.


"아, 그거? 개미야. 설탕통에 들어갔던 애들인데 타다 보니 거기도 들어갔네. 호호호."


다리로 보이는 것들이 아주 미세하긴 했는데 설미 진짜 개미였다니. 그리고 그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웃어버리시는 아주머니의 모습에 잠시 멍했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우리에게 중요했던 건 아침을 풍요롭게 하는 밀크티 한 잔의 여유였으니까 말이다.


# 이상한 행복


열대의 나라 스리랑카 아침은 그야말로 상쾌했다. 정답게 짖어대는 새소리에 풀잎 위 내려앉은 이슬, 화려하고 선명한 열대지역 꽃들이 제마다 멋을 뿜어낸다. 보고 있노라면 행복감이 밀려온다. 한국에서 느껴보지 못한 특별한 경험이다.


아침은 하루 중 가장 시원한 시간이었기에 운동하기 가장 좋았다.

중고 자전거를 싸게 구입한 덕에 매일 아침마다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곤 했다. 하루는 꽤 멀리 떨어진 마을에 도착했다.  


나뭇잎으로 지붕을 만든 집들이 즐비했고, 담벼락 대신 듬성듬성 나무가 세워져 있다. 빈민촌 같아 보였다. 도준이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처음 본 외국인에 웅성웅성해지기 시작했다.


“아유보완(안녕하세요)”

"키키키, 히히히"


웃기고 신기했던지 여기저기 꼬마아이들이 웃기 시작했다.

마을에 들어서며 긴장했던 나도 꼬마아이들이 보인 미소에 한결 마음이 놓였다.  


“안녕, 얘들아”

“아저씬 이름이 뭐예요?”

“어디서 왔어요?”

“스리랑카에는 무엇 때문에 왔어요?


몇몇 용감한 아이가 한두 개 질문을 하고 나자 뒤이어 다른 아이들도 질세라 질문이 막 터져 나온다.


"마게 나무 폴리(내 이름은 리야) 오야드 나무못갓뜨(너는 이름이 뭐니?)..."

"깔깔깔"


아는 현지어로 더듬더듬 얘기하자 일제히 웃어젖힌다.

도준 역시 호기심으로 여기까지 왔지만 동시에 아이들에게도 신기한 존재였다.


“여기에 상처가 났어요”

"응?"


한 명의 아이가 갑자기 말을 걸었다.


“어? 어쩌다가 그랬니, 어디 한번 볼까? 아, 진물이 나고 있네”

“며칠 전 크리켓 하다가 그랬어요”

“약은 안 발랐니?”

“약 없는데요”

“아.. 약을 바르면 금방 나을 텐데”


갑자기 몇몇의 꼬마아이들이 자기들도 상처 났다고 바지를 추켜올리며 발에 난 상처를 보여준다.


“약은 안 발랐니?”

“약은 따로 없어요”


아이들 중 제일 고학년으로 보이는 소녀가 차분하게 말했다.


“따로 약을 살 돈이 없어요”

“약은 얼마나 하는데?”

“100루피 정도 될 거예요”


100루피. 우리나라 돈으로 1000원이었다. 아이들 앞에 약속했다.


“알겠어, 내가 내일 약을 사가지고 올게”


아이들은 환호했다.

약을 사 온다고 해서 기뻐했던 건지 아님, 내일 또 온다고 해서 기뻐했는지  알 수가 없다.


다음날 도준은 동네에 약국을 찾았다. 바디랭귀지로 연고, 솜, 소독약, 붕대, 반창고, 가위, 집게 등을

모조리 샀다.

300루피(3000원). 믿기지 않았다.

다시 마을로 향하며 페달을 밟았다.


'뭐지? 이 행복감은?...'


왜 설레고 기분이 좋은 거지?

약봉지를 기다리는 아이들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진 건가?

아이들이 필요한 약봉지를 가져다줄 수 있어서 기분 좋아진 건가?

휘파람과 콧노래, 맞바람에 웃음이 난다. 마을에 도착하니 도준은 이틀사이에 유명인사가 되어있었다.

입구부터 몇몇 아주머니는 미소 지었고, 눈치 빠른 아이들은 도준 옆을 따라 함께 움직였다.


소녀를 찾았다. 소녀의 이름은 니삭스라였다. 눈이 선하고 예쁜 아이였다.


“니산스라, 상처 있는 아이들 좀 이쪽으로 불러줄래?”


크리켓 하던 아이들을 포함해 동네 모든 아이들이 왔다. 잠시 당황했다.


“발이나 손에 상처가 있는 사람만 올래?”

“나도요, 여기요, 저기요”

“니산스라, 애들을 한 줄로 세워줘. 한 사람씩 차례대로 치료하자”

"키키키, 큭큭큭"


옹기종기 모인 아이들의 반응은 극렬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잠시 주춤거렸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지는 뜨거움을 느꼈다. 발가락에 상처나 진물이 흐르는 첫 번째 아이부터 소독약을 솜에 타서 닦아갔다.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아프다고 난리다. 그 모습을 본 주변의 아이들은 웃긴다고 자지러진다.  


“니산스라, 이 놈 팔 좀 잡아줘”


어느새 10명이 넘어간다. 이미 딱지가 아물었는데도 아프다고 치료해 달라는데 웃음이 터졌다. 도준이 웃으니 또 아이들이 신나게 따라 웃는다.


'뭐지...? 이 기분은?'


이게 뭐라고 이토록 행복감을 솟구치게 만드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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