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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권 Jul 18. 2023

6화. 연남방적


# 연남방적 회의실


“고실장! 결론 없는 이야기만 할거야? 해보지도 않고 어렵다고만 할 거냐고! 인건비는 솟고 경쟁업체들은 치고 들어오고 있다고. 방적공장에서 일할 근로자도 없는 판이야. 우린 반드시 해외에서 답을 찾아야만 돼. 조금이라도 유리한 국가가 있다면 무조건 현장으로 달려가. 알았으면 나가봐”


연남방적 고영현 기획실장은 김 회장 앞에서 연신 고개를 숙였다. 한바탕 휘몰아치듯 야단맞고 나오니 정신이 아득하다. 베트남, 중국,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미얀마, 스리랑카 등 해외 공장 설립 장소를 물색한 지가 1년이 넘었다. 멀쩡한 나라가 어느 한 곳도 없었다. 그럼에도 회장은 되지 않는 이유를 더는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되는 이유와 실제 실행 안을 가져오라고 압박하는 것이다. 깊은 한숨이 나온다. 습관처럼 전화기를 빼든다. 해외진출 조사팀장 최치훈 차장이다.


“최차장, 자카르타 상황은 어때?”


“여기 사정도 미얀마처럼 만만치 않습니다. 이들이 제시한 조건들을 맞춘다는 건 우리 회사에 너무나 큰 부담입니다. 다행히 어제 스리랑카 정부관계자가 꽤나 긍정적인 제안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보름전만 해도 우리 요청을 단칼에 거절했던 친구들입니다. 기다리는 자가 결국 승자네요. 내일 아침 7시 비행기로 콜롬보로 가보겠습니다.”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구만. 최차장. 도착하면 회장님한테 보고할 수 있게 그쪽 제시조건 정리해서 팩스 보내줘. 회장님 포함 비상회의를 바로 잡을 테니까. 조사팀 어깨에 회사 명운이 달렸으니 반드시 일이 되게끔 처리 부탁하네”

“예, 부장님! 수개월동안 해외만 돌아다니니, 마누라도 보고 싶고.. 이제는 반드시 끝내고 싶네요. 여하튼 도착해서 즉시 상황 보고 하겠습니다”


# 투힐리아 방적공장 대회의실(오후 3시)


동양의 진주 스리랑카. 인도대륙의 남쪽 끝과 맞닿아 있는 이 섬나라는 유난히 파란 하늘과 바다를 가졌다. 피부는 검고 마른 체형의 스리랑카 사람들, 수도 콜롬보 시내를 앞마당처럼 휘젓는 까마귀들, 수없이 펼쳐지는 야자수와 작열하는 태양. 아무런 인연이 없을 것만 같은 이 섬나라에서 ‘연남랑카’ 역사가 시작될 판이었다. 조사팀장 최치훈 차장 앞에는 스리랑카 투자청 알리 사브리 투자과장이 앉아있다.


“여기 투힐리아 방적공장을 인수하는 조건입니다. 22만 평의 공장부지에 독일회사가 3년간에 걸쳐 설비공사를 완공한 곳이지요. 돌아보셔서 아시겠지만 공장설비나 건물자체는 양호합니다. 현재는 열악한 재정 상태로 부분 운영만을 하고 있지만, 연남방적이 공장가동 하는 데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어떻습니까?”

“인수가격은 어떻게 됩니까?”

“6백50만 불로 100년은 더 쓸 수 있는 설비 모두를 가져가는 조건입니다.”

“다른 베네핏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국세청에서 나온 자갓 과장이 거들었다.

“처음 15년간 법인세, 소득세를 비롯한 모든 세금을 면제할 예정입니다. 15년 뒤에는 2% 세금만 징수할 겁니다. 우리 정부로서는 최고의 조건을 제시하는 겁니다.”


그야말로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50억 정도로 22만 평의 공장 부지와 양호한 공장과 라인 설비들. 연남방적 조사팀은 이 공장을 반드시 사야 된다는 판단이 섰다. 우선 수도 콜롬보에서 60km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그만큼 입지조건이 한국공장보다도 훨씬 좋은 데다 독일회사가 3년여에 걸쳐지었다는 방적공장의 설비 상태가 아주 좋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최 차장은 우선 1차미팅을 마쳤다. 그리고 내일 이 시간에 2차 미팅을 갖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좋습니다. 다만, 기억해 주세요. 우리가 연남방적에게 베스트 오브 베스트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는 걸 말이죠. 내일 같은 시간 이곳에서 다시 뵙지요”


알리 사브리 투자과장의 자신감 있는 영어발음이 유난히 또렷이 들려온다.

그렇게 헤어지고서 돌아온 호텔방. 최차장은 오늘 미팅 자료를 다시 한번 복기해 본다.

놓친 게 뭐가 없는 것일까. 그런데 무언가 찜찜한 기분이 든다.

이들은 왜 이렇게 선심을 크게 쓰는 걸까... 보름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스리랑카 정부가 서두르는 이유는 뭘까. 의심의 꼬리를 문다.

그때 호텔 전화가 울린다.

‘뚜루루루’

“최 차장님, 잠시 호텔 라운지에서 볼 수 있을까요? 수도경비관할을 맡고 있는 육군소장 라크라싱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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