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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권 Jul 18. 2023

8화. 비상, 그리고 또 확장


“반대 의견이 있는가?”

“없습니다!”


김 회장은 이사들을 천천히 훑어본다.


“바로 즉시 투힐리아를 인수합시다. 법인장은 고영현 기획실장. 공장장은 최치훈 팀장, 부공장장으로는 라크라싱어를 임명하네.”


파격적인 인사 조치였다. 현장감각을 최우선으로 하는 김 회장 다운 결정이었다. 투힐리아 인수작업에 최첨병으로 나섰던 최 팀장과 해외투자 총괄기획 실장이었던 고영현을 공장장과 법인장으로 앉힌 이유다. 거기에 라크라싱어 부공장장 선임은 화룡점정이었다.


국내에선 섬유산업은 사양산업이었고 수 많은 출혈경쟁으로 대규모 적자를 기록할 수 밖에 없었다. 스리랑카 정부가 연남방적을 원했듯 연남방적도 투힐리아가 생명줄이었다. 두 이해관계자의 손이 제대로 맞아 들어간 순간이다. 모두가 투힐리아를 반드시 성공시켜야만 했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우리는 아마 어디에도 다시 없을 기회를 잡은 것 같았습니다”


고영현 연남랑카 법인장은 국내 유력 신문사 기자 앞 솔직히 털어놨다.   


하루에도 수십 명이 죽어나갔던 아수라장의 나라, 스리랑카.

한국 방적산업의 새 길을 찾겠다는 결단을 내린 연남랑카의 첫 번째 조치는 부공장장으로 라크라싱어을 고용하는 것이었다. 타성에 젖어버린 스리랑카 근로자들을 몰아붙이고 기강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공장을 뒤덮은 잡초들을 베어내게 하고 한국으로부터 40명의 연남방적 근로자들을 파견해 스리랑카 근로자들에게 새로운 기술과 작업방식을 익히게 했다. 과거처럼 술을 마신 채 출근하거나 무단결근을 일삼는 근로자들은 정당한 절차에 따라 해고했다. 무려 1백20명의 근로자들이 해고됐다. 노조는 거세게 반발했지만 일을 해야 회사가 살 수 있고 임금도 올려줄 수 있다는 정당한 논리에 이내 잠잠해졌다.


회사를 인수한 지 불과 석 달만에 한국으로부터 최신 방적기계들을 설치하고 공장을 돌리기 시작했다. 일단 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하자 연남랑카는 단숨에 흑자를 내기 시작했다. 첫해 3천만 달러였던 매출액은 두 번째 해 5천만 달러, 세 번째 해엔 1억 달러로 늘었다. 엄청난 성장 속도였다. 인수 당시 월 60달러 수준이던 근로자들의 임금을 2년 만에 이 나라 최고 수준인 90달러선으로 올려주고 간부사원들에게는 회사숙소를 마련해 주는 등 사원복지에도 신경을 쓰자 생산성과 제품의 품질도 날로 높아졌다.  


“연남랑카가 생산한 제품의 품질 수준은 한국제품과 같거나 오히려 높았습니다”


최치훈 공장장이 거들었다.  


# 확장, 또다시 확장


작열하는 열도의 태양도 아랑곳없이 연남랑카 설비 증설공사는 끊임없이 진행됐다.

쇄도하는 수출주문을 소화하기 위해 월 1백70만 야드인 직물생산 능력을 배로 늘리는 공사를 했고, 화섬직물가공공장의 증설공사도 벌였다. 연이어 자수공장의 증설도 시작했다.


“제2, 제3의 연남랑카를 추진합시다!”


연남랑카의 성공은 달콤했다. 김 회장은 발 빠르게 해외투자를 추진했다. 우선 계열사 연남전자가 연남 마그네틱사를 스리랑카에 추가로 세웠다. 총 2천만 달러가 투자되었던 이 회사는 컴퓨터 헤드를 생산, 미국과 유럽으로 수출할 계획이었다. 국내 본사에선 대우와 합작으로 아프리카의 수단에 방직공장을 설립해 나갔다. 파키스탄과 베트남 진출도 시작했다. 말 그대로 물 들어는 대로 노를 쉼 없이 저었다.


여전히 국내에서 대규모 적자를 면치 못했던 연남방적은 한국 방적산업의 새로운 비전을 해외에서 찾았던 것이다.


“이제 밖에서 벌어 안을 먹여 살리는 시대가 왔다”


고영현 법인장의 말처럼 스리랑카에서의 성공으로 연남방적 사람들의 해외도전은 더욱 뜨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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