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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권 Jul 18. 2023

9화. 차입으로 일으킨 제국


종로구 중학동 한국상업은행 기업금융 1실 4팀.


“이 과장, 연남계열사 자료 아직 완성 안 됐어? 서둘러줘. 부행장님 콜 떨어진 지 벌써 반나절이야.”

“예. 팀장님. 지금 거의 완성되어 갑니다. 어휴, 갑자기 이게 무슨 뺑이질입니까? 대출만 수천억 원 회사인데...”

“연남이 신호탄일지도... 옆의 실 대우그룹도 조만간 크게 터진다고 하던데. 당분간 집에 들어가긴 글렀을지도 모르겠네. 휴...”


연남본사 최치훈 부사장은 잠시 회한에 잠겼다.

권불십년이라고 했던가. 10년 전 스리랑카 투힐리아 국영방적회사를 인수한다고 백방을 뛰어다녔다. 그때를 시작으로 연남의 사세는 무섭게 성장했다. 성공방정식 하나가 만들어지자 유사한 방식으로 해외투자에 전력을 쏟았다. 짧은 기간 동안 연남그룹은 1조 매출을 달성했다. 그러나 달콤함은 너무도 짧았다. 섬유산업의 한계가 빠르게 시작됐고, 타 방적회사들처럼 연남 역시 탈섬유화를 시도했다. 국내에선 섬유업과 무관한 금속, 건설, 기계, 전자업체들을 인수하고 새로 설립했다. 이 모든 건 은행권 차입을 통해 이뤄졌다.


“김 비서, 상업은행 서부행장 앞 전화 연결해 주게. 더 이상 지체한다는 건 서로에게 피해만 키울 뿐이네. 후..."


최  부사장의 깊은 한숨에  허망함이 몰려온다.


'연남의 역사도 이제는 지는 거란 말인가...'


“예, 부사장님. 지금 연결되었습니다. 전화 돌려드리겠습니다.”

“서부행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그간 연락이 늦었습니다.”

“아닙니다. 최 부사장님. 그동안 경황이 없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저희를 지지해 주시고 금융거래를 지속해 주신 점,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송구스럽지만, 지금의 시장상황에 회사 자금 사정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습니다. IMF외환 위기 이후 시장금리가 급격히 치솟고,. 회장님께서는 개인 사재라도 털어 자구대책을 강구합니다만,.. 정상화시키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있습니다.”

“워크아웃 신청하실 건가요?”

“예 대안 중의 하나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은행 측에서 저희 연남을 끝까지 도움 주십사 부탁드립니다. 부행장님”

“잘 살펴보라고 지시하겠습니다. 아시겠지만, 지금의 문제는 연남 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대한민국 전체가 위기 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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