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남랑카의 성장은 너무 빨랐다.
누군가는 그것을 기적이라 불렀고,
누군가는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부에 있던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이건 기적도, 운도 아니었다.
차입이었다.
투힐리아 방적공장을 인수한 뒤,
연남랑카는 숨 돌릴 틈 없이 확장을 시작했다.
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하자 주문이 밀려들었고,
주문이 늘어나자 설비가 부족해졌다.
설비가 부족해지자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빌리는 것.
은행은 기다렸다는 듯이 문을 열어주었다.
“이미 실적이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이 정도 성장 곡선이면 문제 없습니다.”
숫자는 언제나 논리를 만들어냈다.
첫해 매출은 3천만 달러.
다음 해에는 5천만 달러.
그리고 세 번째 해,
매출은 1억 달러를 넘어섰다.
그래프는 매끈하게 우상향했다.
회의실에서는 박수가 나왔고,
본사에서는 ‘성공 사례’라는 표현이 붙었다.
그러나 그 그래프 아래에는
작게 적힌 숫자들이 있었다.
차입금.
상환 일정.
환율 변동 리스크.
그리고 다음 확장을 위한 추가 대출.
연남랑카는 멈출 수 없었다.
멈추는 순간,
이 구조는 바로 무너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확장은 선택이 아니라
유지 조건이 되어버렸다.
공장은 계속 커졌고,
설비 증설 공사는 쉬지 않았다.
직물 생산 능력은 배로 늘어났고,
화섬 가공공장과 자수공장까지 더해졌다.
“제2, 제3의 연남랑카를 추진합시다.”
김 회장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지금 멈추는 것은 곧 퇴보였고,
퇴보는 곧 도태였다.
국내 방적 산업은 이미 끝이 보이고 있었다.
한국 안에서는 더 이상 싸울 이유도,
이길 방법도 남아 있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야 했다.
밖에서 벌어
안을 살려야 했다.
연남랑카의 성공은
그 논리를 완벽하게 증명하는 사례처럼 보였다.
스리랑카 정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연남방적은 필요했고,
연남방적에게도 스리랑카는 탈출구였다.
이해관계는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그래서 조건은 파격적이었다.
그리고 그 파격은
누군가에게는 기회였고
누군가에게는 부담이었다.
공장은 흑자를 냈다.
근로자들의 임금은 올랐고
일부 간부들에게는 숙소도 제공됐다.
신문은 이렇게 썼다.
“연남랑카, 스리랑카 제조업의 새로운 희망”
그러나 내부에서는
아무도 그 문장을 그대로 믿지 않았다.
흑자는 났지만
여유는 없었다.
임금을 올리면
차입 상환이 빠듯해졌고,
설비를 늘리면
다음 투자가 필요해졌다.
성공은
항상 다음 결정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 결정은
언제나 더 큰 위험을 동반했다.
확장은 계속됐다.
연남전자가 연남마그네틱을 세웠고,
아프리카 수단,
파키스탄,
베트남까지 이름이 오르내렸다.
지도 위에서
연남방적의 점들은 빠르게 늘어갔다.
“이제 밖에서 벌어
안을 먹여 살리는 시대가 왔습니다.”
고영현 법인장은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아무도 그 다음 질문을 크게 묻지 않았을 뿐이다.
‘그 밖은 언제까지 우리를 버텨줄 것인가.’
‘이 제국은 얼마나 많은 빚 위에 서 있는가.’
연남랑카는 그때,
가장 높이 올라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가장 높은 지점에서는
아래가 잘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