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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권 Jul 18. 2023

12화. 마음의 빚


자꾸만 스리랑카 근로자들 앞에서 뱉은 말이 맴돌았다.


“여러분에게 무엇을 도와드릴 수 있다고 확답할 순 없습니다만, 이 문제를 어필해 보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마음의 빚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콜롬보 무역관 태도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스스로 무력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대학생 신분으로, 스리랑카 현지 단체에 파견된 인턴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이 뭔지를 생각했다.


‘콜롬보 무역관 게시판에 글을 쓰자. 담담하게’


「저는 스리랑카에서 인턴생활을 하고 있는 한국 대학생 이도준입니다. 콜롬보 무역관 업무에 제안을 드리고자 이렇게 글을 적습니다.


지난 일주일간 스리랑카 신문에선 연남랑카를 비롯한 몇 개의 한국 경영인들의 야반도주사건을 보도했습니다. 한국인으로서 미안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이번 사태를 보며, 과연 돈을 버는 목적이, 기업을 경영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깊게 생각하게 만듭니다.


시급하게 한국 정부의 조치가 있기를 희망하지만, 현재 고통받는 사람들의 상황은 그렇게 시간을 두고 기다릴 정도로 여유롭지가 않습니다.  


콜롬보 무역관 앞 제안드립니다. 스리랑카에 진출한 일부 한국 기업들의 야반도주 사건에 대해 정확한 정보와 유의사항을 게시해 주십시오. 스리랑카를 찾는 한국 기업인들에게 잘못된 경영실태를 알리고, 윤리 경영을 하게끔 유도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주십시오.

투자 유치 실적을 홍보하는 일보다,

야반도주 사태로 현지인이 한국인을 바라보는 인식을 어떻게 해소시킬지,

매력적인 스리랑카 시장을 진출하려는 기업가들에게 책임 있는 윤리경영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제대로 알려주는 게 공공기관의 임무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우리 기관과 부합되지 않는다는 이기적이고 편협한 사고방식을 갖지 않길 바랍니다. 부디 이번 사태에 대한 발 빠른 조치로 콜롬보 무역관의 더 발전된 모습을 기대하겠습니다.」


‘글을 게시하시겠습니까?’

‘Yes’


그렇게 클릭하고 글은 게시되었다.

도준은 머리를 쓸어 올렸다. 글 하나 올린다고 마음의 빚이 사라졌을까.

콜롬보 무역관에 글을 게시했다고 고통받는 근로자들에게 당장 도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 정부 앞 무엇 하나 어필할 수 있을까. 본사가 부도가 난 상황에 무엇 하나 쉽지 않겠지. 무기력이 다시 한번 스며들었다.


도준은 마당으로 나섰다. 열대성 스콜이 느닷없이 쏟아졌다.

한 낮의 뜨거운 열기에 바짝 말랐던 황토바닥을 빠르게 적셨다.

마른 흙 향이 코끝을 강렬하게 때렸다. 때론 향기가 사람의 뇌를 깨운다.


‘연남랑카는 한때 스리랑카 제조업 중 가장 큰 회사였다. 아무리 본사가 부도가 났어도 연남랑카의 독자적 생존은 어려웠을까? 경영진이 야반도주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경영관리가 극단적으로 부실했을까? 내가 경영자라면?’


근로자 실태조사로 무기력함을 느끼던 순간, 도준은 근로자 관점이 아닌 경영자 시선으로 연남랑카를 쳐다봤다. 기업가라면 어떤 식으로 경영했어야 했을까? 도준의 뇌에선 도파민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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