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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권 Jul 18. 2023

13화. 비즈니스 베이비 탄생


“도준아, 오늘은 어디 갔다 왔어?”


함께 지내는 민식이가 물었다.


“응, 근처에 공장 좀 들러봤어. 작은 섬유 공장을 발견했거든. 거기 관리인한테 양해구하고 공장구경 좀 하고 싶다고 했지. 경계하는 눈초리가 있었는데, 그냥 미소 지으니까 둘러봐도 좋데”

“도준이 너도 참, 궁금하면 그냥 저지르는 놈이야”

“근데, 넌 인권운동가 쪽으로 진로를 확실히 잡은 거니?

“응. 마음먹은 지 꽤 됐잖아”


민식이는 인류학을 전공했다. 그는 10개월간 스리랑카 인권단체 경험하고 홍콩의 아시아인권위원회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었다. 도중에 국제법 석사도 도전하고 싶어 했다. 도준이와 다르게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너처럼 장래에 무엇을 할 것인지가 구체적으로 그려진 사람을 보면 무척 부럽다. 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사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여전히 잘 모르겠어”

“도준아, 그래도 다행인 건, 우린 지금 스리랑카에 있다는 거야. 한국에 있어봐. 이런 대화가 가당키나 해? 아주 사치스럽지. 다들 토익 공부에, 학점에, 취업 준비에 모든 걸 쏟잖아.”


민식이 말이 옳았다. 이미 빠른 친구들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공무원 강의부터 들었다. 인생자체에 여유조차 없었다. 3~4학년쯤 되면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너도 나도 취업 스펙경쟁에 마구 뛰어든다. 취업을 위해 졸업을 잠깐 늦추거나 졸업하더라도 수년간 취업준비생으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남들 다 하는데 나만 하지 않으면 불안하니까 그렇다.


불안함을 누르고 뛰고 또 뛴다. 그래야 지긋지긋한 경쟁의 고통에서 잠시나마 달콤함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쟁의 승자들을 보며 더더욱 ‘루저’가 되지 않기 위해서 고삐를 더욱 죈다. 다른 어떠한 ‘뻘’ 생각도 들어올 틈이 없을 정도로.     


다행히 도준은 그런 사회 속에서 잠시 탈출해 스리랑카에 와있었다. 마치 격렬한 농구 경기 도중에 감독의 작전타임으로 잠시 목을 축이려 벤치에 앉아 있는 것처럼. 작전타임이란, 말 그대로 경기에 질 수도 있으니 전략을 정비해 다시 한번 심기일전하는 것이다. 삶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경기에 문제가 보이는데 한 번의 작전타임도 없이 간다는 건 인생을 얕고  단순하게 바라본 건 아닐까. 누구의 인생도 아닌 내 인생인데 말이다.      


안타깝게도 작전타임을 불러줄 꽤 많은 주변인은‘다수가 사는 방식’으로 다시 처방해 준다. 다수 안의 내가 존재해야 안정감과 편안함을 얻고 남들처럼 멀쩡하게 사는 방식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이것은‘악순환의 연속’을 가져올 뿐이다.‘다수 안의 내가 있다는 것’은 ‘남의 시선 속에 가두고 있는 나’를 의미하고 이는 ‘나 자신’은 비었다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게 내가 없는 ‘빈 껍데기’인 채로 살아갈 수 있을까?


인생의 작전타임은 궁극적으로 스스로가 불러야 만 한다. 외부요인이야 있을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신이 결정하고 행동에 나서야만 된다. 다행히 도준에겐 그런 질문을 던질 환경이 자신 앞에 펼쳐졌다. 그날의 대화는 계속 이어진다.


“비가 참 주룩주룩 시원하게 내리네. 이런 대화를 아무렇지 않게 나누는 것도 좋고. 마음속 이야기였던 여태 놓쳤던 질문들은 앞으로 천천히 귀 기울여 볼려고. 언젠가 나도 너처럼 구체적인 그림들이 나오겠지. 포기하진 않을 텐데 그렇다고 다그치지도 않을 거다. 중요한 건 내면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들으려는 내 태도일 테니까. 근데 시간이 갈수록 뚜렷한 생각 하나가 마음속에서 올라오고 있어”

“어? 그게 뭔데?”

“음.. 너처럼 NGO단체 활동가로 살아가는 게 나하고 맞는지 말이야. 수차례 마음의 목소리를 들어본다고 해봤는데 그렇게 살아갈 자신이 없어.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좋아해. 그런데 방식은 다르게 하고 싶어. 이번 연남랑카 사건을 접하고 깨우친 게 있어. 나를 움직이는 건 다른 무엇이 있는 것 같거든. 오히려 비즈니스맨처럼 살고 싶은 맘이 더 커지고 있어. 대학 전공도 살리면서 비즈니스 감각을 가지고 역동적이고 재미있게 하는 그쪽이 솔직히 끌려. 경영을 해본 다는 것은 나를 흥분시키는 것 같아. 중요한 건 언제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리에 있을 때 지금의 내가 만들어진 토양대로 사람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따뜻한 놈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이상하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음 기분도 좋아져.”


그날 민식이와 나눈 대화로 도준은 알 수 없는 흥분을 느꼈다. NGO활동가로 사는 것이 자신과는 맞지 않다고 이야기한 순간 ‘그 생활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너무 섣부르게 이야기했나’라는 걱정이 생겼다. 그런데 마음을 무겁게 하고 괴롭힌 그 마음의 가지를 ‘싹둑’ 쳐내버렸다. 신선한 경험이었다.


‘가지가 많은 나무일수록 바람 잘 날 없다’


생각의 가지가 많을수록 집중할 에너지가 분산되고 어느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 선택하고 집중해야 될 나의 소중한 무엇인가를 자꾸 발견하기 위해선 그 보물을 가리고 있는 ‘어설픈 가지들’을 하나씩 쳐나가야 함을 도준은 알아챘다. 비로소 정박되어 있는 듯 했던 그의 배가 저 큰 바다로 “쑥”뻗어나가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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