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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권 Jul 18. 2023

14화. 불행이란 파도


연남랑카 경영진의 야반도주, 다음날 공장 폐쇄. 성난 근로자들은 당장 한국 경영진과 친밀했던 중간관리자 자갓을 찾아 나섰다.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었다는 상실감, 임금체불과 사회보장기금 체불로 살길이 막막한 그들의 분노는 자갓을 위험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자갓조차 한국 경영진의 야반도주를 전혀 몰랐다. 공장이 닫혔던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저기, 자갓이 왔어요.”


공장 문 앞 근로자들은 일제히 자갓을 발견했다. 우르르 몰려왔던 그들의 눈빛은 초조와 분노가 함께 섞였다.


“자갓, 너는 알고 있었지. 뭐라고 말 좀 해봐!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성난 이들 몇몇은 자갓을 둘러쌌다. 여차하면 집단 폭행이 일어날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자갓은 침착하려 애쓰며 말을 했다. 목소리는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한국 경영진은 저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처럼 문이 닫혀 있는 걸 저 역시 지금에서야 알았습니다. 그들 모두의 전화기는 현재 연결이 되지 않는 상태라는 것도 이제야 알았습니다.”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평소 자갓의 온화한 성품과 진솔한 태도를 익히 알고 있었다. 다행히 자갓의 이야기에 오해는 금방 풀렸다. 문제는 자갓 스스로에 대한 허탈감이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서 연남랑카에 들어와 무수히 많은 일을 했다. 회사는 빠르게 성장했고 스리랑카 제1의 제조업이 되었다. 자갓 역시 능력을 인정받아 초특급 승진과 막대한 업무권한을 위임받았다. 인생의 항해가 그렇게 순조로울 수가 없었다. 그 배가 하루아침에 침몰했다.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 수 날이 지났다.


그날도, 공장 앞을 찾았다. 몇몇의 근로자들은 여전히 피켓을 들고서 시위 중이었다.

그들을 뒤로하고 시내 인터넷 PC방으로 돌아온 자갓은 메일을 확인했다.


“아...!”


자갓을 유독 챙겼던 김 부장 메일이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구나. 미안하다 자갓. 연남 본사가 넘어지면서 모든 게 엉망이 됐다. 그날 밤, 법인장을 비롯해 공장장조차 야간 비행기로 스리랑카를 떠나자는 말에... 나는 어떤 대항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비겁했다.


자갓. 네가 느낄 상실감과 배신감에 진심으로 사과의 말을 남긴다. 아마도 나를 포함한 한국경영진이 어떤 용서를 구해도 용서가 쉽지 않음을 안다. 너에게만큼은 미리 솔직하게 말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날 밤, 우리 모두는 두려움을 안고, 죄인처럼 스리랑카를 떠나야 했다. 비겁했다.


용서를 구할 염치도 없다만, 오랜 시간 나를 잘 따라와 준 자갓 너에게는 이렇게라도 메일을 남기고 싶었다. 정말... 미안하다. 자갓. 그럼에도 너의 인생은 여전히 창창하다. 지금의 시련을 이겨서 다시 일어서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김 부장의 자갓 사랑은 남달랐다. 뛰어난 언어능력, 무엇보다 한국 경영진과 스리랑카 근로자의 가교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연남랑카가 스리랑카 내 제조업 1위 기업으로 우뚝 서는데 숨은 공로자를 뽑으라면 김 부장은 단연 자갓을 뽑을 정도였다. 그의 탁월한 관계력, 업무력은 정말 최고였다.  


메일 한 통의 힘은 대단했다. 이상하게도 그간 자갓을 짓 누르던 허탈감이 날아가는 듯했다. 김 부장 역시 책임질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척박한 스리랑카에서 어떻게든 최선을 다하셨던 김 부장이었다. 자신에게 미안함을 토로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안 좋았다. 그도 도의상 무엇인가를 책임지려 했으리라. 그런 사람이었다 김 부장은.


자갓이란 청년의 선함이 다시 빛나는 순간이었다. 인생의 커다란 파도하나가 자갓을 덮친 것 같았다. 너무나 빠른 성장이 더더욱 그를 나락으로 빠뜨렸을까. 그런데 그 거친 파도의 터널을 지나니 도리어 파도를 타고 있는 자신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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