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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권 May 28. 2024

15화. 김대표와 운명적 만남


코로나 이전부터 배달바람이 불었다. 디디박스라는 배달통은 김대표의 개인적 경험에서 발명된 신박한 제품이었다. 과거 배달대행회사를 운영했을 때다. 기사들이 바쁠 때면 본인이 직접 배달을 뛰었다. 어느 날, 네네치킨 상무점 사장은 그를 알아보고 이처럼 말했다.


"어이 김사장, 거기 배달통에 우리 가게 상호 좀 붙여주면 안 될까? 내 한 달에 50만 원을 줄게"


"아이고 사장님, 그럼 저는 다른 가게 배달은 어떻게 합니까? 지금 당장 요기 옆에 교촌치킨 콜도 뛰어야 하는데... 죄송하지만 불가능해요. 사장님"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교촌 상무점 사장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은가. 한 달에 50만 원씩 주겠다는 상점주들. 그렇다면 시장수요는 있다는 말인데, 그 당시 김대표는 기발한 생각을 해낸다. 고객이 치킨을 주문하면, 해당 치킨집은 배달 라이더에게 콜을 보내고, 라이더는 치킨을 수령함과 동시에 해당 치킨집, 그러니까 네네치킨 상무점이 배달통 삼면에 자동으로 송출되는 시스템. 물론 고객 앞 주문완료되면 일반 광고가 송출된다. 조금 있다가 이젠 교촌치킨 상무점 주문 콜이 들어온다. 고객이 주문할 때마다 해당 가게 상호가 송출되는 시스템을 배달통으로 만든다면? 이름하여 스마트 배달통, 디디박스의 탄생은 바로 생활에서 얻은 기지를 구현한 제품이었다.


그러나 묵은 법도 법이라며 규제가 발목을 잡았다.


정부는 디디박스를 국내 150대만 운영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탁상행 정식이었던 정부규제는 공장과 설비설치에 수십억을 투자한 김대표에게 그 자체로 고난이었다. 백방으로 이를 해결할 방법을 찾고 또 찾았다. 수년에 걸쳐 정부와 협상 후 15,000대 운영이 가능하다는 통지를 받았다.


안타깝게도 그에게 남은 건 수 십억에 달하는 은행 빚, 그 많은 국내외 바이어들 대부분이 자기 탐욕에 눈이 멀어 끊임없이 뒤통수를 쳤고 그로 인한 송사에 휘말린 사건 들 만이었다. 그야말로 처첨한 상황에 놓였었다.

이런 그를 6년째 옆에서 지켜본 이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도준이었다.  


도준의 젊은 날, 비즈니스맨이 되겠다는 포부로 한국에 돌아왔다. 스리랑카의 그 본질적 질문에 답하며 내면의 힘이 길러졌다고 내심 자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는 달리 한국의 현실은 너무나 냉혹했다. 방황 끝에 백수를 선택했던 도준. 그 시절, 그를 바라보는 바깥 시선은 차가웠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도준을 눈빛으로 때리는 것만 같았다.  


'저 선배, 학교 다닐 땐 좀 잘난 척하더니, 아직도 학교에 어슬렁 거리는 거야?'


'너 백수야. 그렇게 특별한 척하더니 너도 별거 없는 놈이네'


백수 생활을 선택하기 전까지 자신감에 넘쳐 살았던 그였다. 그러나 주변이 만들어 낸 공포감과 압박에 자존감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동안 살아있던 모든 방식이 부정되었고 세상을 이렇게도 몰랐던 진짜 무지한 인간이었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도망치다시피 백수 생활을 1년을 보내고 겨우 찾았던 직장은 A은행. 첫 발령지는 고향 광주였다. 도준 앞 김대표가 나타난 건 바로 6년 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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