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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권 May 28. 2024

16화. 대표님 같은 분은 처음입니다

"대리님. 손님이 찾아오셨는데요. 안쪽으로 안내할까요?"

청원경찰이  도준을 찾았다.

업무에 정신없었던 도준에겐 잠시나마 숨 고를 기회였다.


"예. 저희 소회의실로 안내부탁드려요. 금방 갈게요"


그렇게 도준 앞에는 50대 초반의 한 남성이 앉아있었다.

사내는 두꺼운 서류뭉치를 들고서 건물 내부가 신기한지 여기저기 두리번거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디디박스의 김길상대표입니다. 저희 사무실은 여기 상무지구에 있습니다.  대출상담하려고 은행을 찾아온 건 처음이네요."

"아, 그러시군요. 저는 이도준 대리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우선 자리에 앉으시지요"


그렇게 도준과 김대표 간의 상담은 시작됐다. 김대표가 들고 있던 서류  뭉치는 다름 아닌 국내외 특허증 서류였다. 수십 개로 보이던 특허증을 보이며, 어떻게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배달시장이 어떤 시장인지, 그 시장에서 자신의 발명품인 디디박스로 어떤 사업모델을 갖고 있는지 도준의 호기심 잔뜩 한 질문과 함께 이야기를 풀어헤쳤다.


그는 여느 대표와 달랐다. 무언가 꿈을 위해 달렸던 사람처럼 보였다. 말씀은 차분한데 회사의 미래상은 거대했다. 도준은 도대체 배달시장이 어떤 시장인지, 김대표가 소개한 디디박스란 물건이 배달시장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 것인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르는 게 천지였다. 묻고 또 물었다. 대화에 이토록 빨려 들어가는 게 언제였던가.


기아차와 삼성가전의 하청 생태계가 주류 산업이었던 이 지역에 전국, 아니 전 세계를 무대로 배달시장의 게임체인저가 되겠다는 김대표의 이야기는 정말로 신선했다. 


도준은 자신이 모르는 미지의 비즈니스 세계가 못내 궁금했다. 대표가 그리는 미래상에 잠시나마 올라탄 느낌이었고 도준은 그 속에 한번 빠져들고 싶었다. 그러나 초창기 벤처기업을 취급하기엔 본인 스스로 한계가 있었다. 


"대표님, 들으면 들을수록 재밌고 흥미롭네요. 제가 모르는 배달시장이어서 그런지 싶은데, 정말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오신 건 저희 지점과 거래 가능한 지를 알고 싶어서 오셨을 텐데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설립된 지 이제 2년 차 자본잠식상태에 사업모델만으로 이 곳에서 취급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너무나 흥미롭고 매력적인 아이템으로 보이는데, 죄송합니다."


도준의 정중한 거절에 김대표는 도리어 담담하고 편안한 표정이었다.


"괜찮아요. 대리님. 저도 은행 와서 처음 상담했는데 제 이야기를 잘 들어주신 것 같아 고맙네요. 괜찮습니다."


도준은 문득 김대표로부터 따뜻한 사람의 향기를 느꼈다. 그리고 인연의 시작을 알릴 제안을 던졌다.


"혹시,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보증기금에 한번 가보시겠어요? 그곳에서 대표님이 갖고 있는 특허권 등으로 보증서 발급 가능한지 타진해 보세요. 그게 가능하면 저희 쪽에서도 거래 가능하답니다. 물론 보증서는 저희만이 아닌 모든 은행에서 문제없이 해 줄 겁니다."

"아, 그런 게 있었군요. 대리님 덕분에 좋은 정보 얻었네요. 혹시라도 보증서 발급받게 되더라도 대리님한테 가지고 오겠습니다. 오늘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모습에 솔직히 감동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도준에게 김대표 같은 사람은 처음이었다. 이미 정해진 곳에 납품하는 하청 생태계의 기업들만 보다가 전 세계 배달시장이라는 곳에 도전하는, 심지어 게임체인저가 되려고 한다는 그의 말에 도준은 어느새 빠져들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정말로 대표가 꿈꾸는 사업모델이 현실가능할까 궁금했다. 확신에 차 있던 김대표. 비록 거절은 했으나 무엇에 홀린듯한 상담은 1시간을 훌쩍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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