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업무분장에 팀장은 필요가 없었다

by 이도권


신임팀장의 업무 중 팀원들 앞 업무를 배정하는 게 있다.

팀장으로서 전체 그림을 그리고 각 파트별 책임자를 지워주는 일이니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일중에 하나다.

우선 팀원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팀의 현재 주소,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가고 싶은 길을 구체성과 비전을 곁들여 이야기를 했다.

제대로 전달했는지는 모르겠다.

팀원들의 얼굴을 보니 큰 무리 없이 수용하는 듯했다.

하루가 다르게 팀은 구색을 갖춰나갔고, 거래처를 응대하는 속도도 빨라졌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A과장으로 일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서서히 헉헉대는 모습이 비쳤고, 급기야 피로감으로 병원 방문이 잦았다.


어느 날, 내 눈앞엔 팀원들 간 대화를 나누는가 싶더니, 이내 업무를 서로 주고받고 있는 모습이 목격됐다.

두 과장을 축으로 서로의 업무량을 조율했고 신입이 그것을 받쳐주는 이야기가 내 귀까지 들렸다.

논의 결과 선임 팀원은 그렇게 업무량을 조율하겠다고 나에게 말했다.

역시 행운의 팀장이 맞았다.

팀원들 간 허물없는 대화를 넘어서 서로의 입장을 헤아리며 업무조율을 그들 안에서 해내 버린 것이다.

이 대목에 내가 지시할 사항은 전혀 없었다.

선임 팀원의 요청에 무조건 콜!



비슷하지만 결과가 전혀 다른 경험도 있었다.

중견 팀원쯤 되었을 때, 당시 담당 팀장은 업무에 해박했고 지시에 능하셨다.

그리고 시시각각 업무의 진행 상태를 점검했다.

진행 상태가 조금 뒤처진다고 느끼면, 다음날 아침 여지없이 해당 건 진행을 서둘러 달라는 말을 했다.

물론 팀 운영에 빈틈이 없어야만 마음이 놓이는 건 누구나 꿈꾸는 일이다.

다만, 빈번할 정도로 묻는 일정점검과 자율성보다는 지시를 통한 통제 속에서 팀원들은 쉽게 지쳤다.

갈등을 미연에 방지해야만 마음이 놓였기에 정해진 톱니바퀴처럼 업무를 꾸려 나갔다. 팀장의 지나친 기우는 우리를 경직되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나와는 맞지 않는 업무스타일이었다.


특히, 특정 팀원에게 일이 몰리는 것처럼 보이면,

어느새 팀장은 옆 팀원에게 해당 업무를 대신 맡아달라며 업무를 넘겼다.

미세하게나마 그때 받은 느낌은 이랬다.

팀장이 모든 걸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놓쳐버린 업무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면 납득 가능하겠다.

그러나 업무 스케줄을 스스로 조율 가능한 팀원에게 갑작스러운 업무배분은 부담스러운 일 중 하나다.

솔직히 대면하며 말하는 팀장의 지시에 어느 누가 거절을 할 수 있겠는가.


문제는 다음이다.

대화와 자율성이 배제된 체 억지로 꿰맞춘 업무 배분은 일의 흥미를 곧바로 줄였다.

어쩔 수 없이 처리해야 되는 업무이다 보니 흥도 안 나고 스트레스도 증가한다.

만약, 팀장과 팀원 간 자율적 조율로 팀원으로부터 마음속 ‘찐’ 수긍이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대화와 자율성이 보장되고 마음속 수긍이 많은 팀일수록 문제해결능력 및 속도는 필히 높아졌으리라.

통제와 지시에 능한 팀장과 그 지시에 수동적인 팀원일수록 서로 간 대화는 준다.

그리고 눈치도 덩달아 는다. 연약한 팀장인 내게는 따르고 싶지 않은 길이다.



팀원들이 자신들의 업무를 팀장 없이도 서로 간 대화를 통해 조율했다는 사실. 이건 크나큰 복이다.

물론, 조율되지 않았거나 팀원 간에도 서로가 말하기 어려운 것을 짚어내고,

대화를 통한 지혜로운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여전히 팀장이 해야 될 일이다.

결론은 대화와 조율, 그리고 팀원들로부터 ‘찐’ 수긍을 끌어내며 이를 끊임없이 선순환시키는 거.

쉬운 길은 아니다.


내공이 어디 쉽게 쌓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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