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내려놓으니 놓쳤던 게 보였다

by 이도권

3년 전쯤 일이다.

거래처 중 요양병원이 있다.

전북 순창에 위치한 이 병원엔 의외로 광주에 거주하는 분들이 많았다.

광주에서 순창까지는 대략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곳의 운영전반을 맡고 있는 행정원장님도 그랬다.

그런데 어느 날, 별안간 병원을 떠나신다고 했다.

이유는 다름 아닌 ‘번 아웃’ 증상 때문이었다.

치유를 위해 쉼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가 최근 전화가 걸려왔다.

“이제 제가 다시 일을 맡았어요. 몇 가지 상의드릴 게 있는데 지점에 언제쯤 찾아가 봐야 될까요?”


그렇게 지점을 찾아온 그의 눈빛은 무언가 편안함을 느끼게 했다.

비록 마스크로 얼굴의 상당 부분이 가린 상태였으나 눈과 얼굴빛은 밝아보였다.

대략 일 년 정도를 현업에서 잠시 벗어났다고 말하는 그.

나는 궁금한 걸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럼 그동안 어떻게 보내셨어요?”

“명상을 하러 몇 군데의 나라를 돌아다녔어요. 인도 첸나이는 세 번이나 갔었네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었다. 궁금함은 더 차올랐다.

“인도 첸나이는 어땠는데요?”


그렇게 시작된 서로의 안부와 이야기는 꽤나 길어졌다.

일 이야기를 해야 됨에도 우리 둘 ‘직장인’은 특히, ‘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됐다.

너무나 앞만 보고 달렸던 직장생활에 몸 전체적으로 에너지가 소진됐었던 그였다.

신기하게도 몸의 회복은 마음의 회복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마음이 회복되니 몸은 자연스레 따라온다고 했다.

인상 깊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와중에 와닿는 말을 또 한다.


“내려놓으니 그동안 놓쳤던 게 보이더군요.”

“놓쳤던 게 뭐였어요?”

“가족은 가족대로 신경 쓰지 못했네요. 일터에선 직장동료들에게 닦달하고 조급하게 일처리 했던 옛 내 모습도 있었습니다. 그땐 아침부터 다이어리에 꽉꽉 일정을 채워 넣고 모든 걸 소화시키려 그렇게나 낑낑 됐었구요.


그러니 제 마음 자체가 답답하고 제 주변 동료들은 그것대로 힘들어했지요. 이제 복귀한 지 몇 달이 지났는데, 주변에서 저보고 정말 달라졌데요. 사실 그렇잖아요.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일은 굴러가면서 도리어 서로 간의 틈이 있으니 여유도 생기고 생각도 유연해지는 거. 전보다 전반적으로 훨씬 좋아졌습니다.”


간간히 인도 첸나이에서 명상하러 가다 생겼던 에피소드를 말할 때면 그가 참 생기 있어 보였다.

그러면서 나를 서서히 걱정해 주기 시작했다.

“차장님 애들이 어떻게 되시죠? 아, 8살 5살이라고요? 집에선 가장역할에 회사에선 줄곧 달려오시기만 했을 테니 정말 쉼이 필요할 때 일 텐데, 안 그래요?”

“실은, 원장님 말씀 듣고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정말 즐겁네요. 3년 전쯤이었을까요? 저 역시 번 아웃 증상이 있었어요. 그땐 도저히 현업 복귀한다는 게 두렵더군요. 그래서 육아휴직을 결정했었답니다. 그때 둘째가 15개월 됐었는데. 아이들하고 좋은 추억 만들다 복귀했었네요.


좀 다른 방향의 이야기지만, 그때 흥미로웠던 기억이 있어요. 글쎄, 육아휴직을 하고 복귀한 여직원분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여유가 있어 보였단 거죠. 한 직장에 들어와서 모두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는 싶겠지요. 직장인의 꽃이 승진일 테니 말입니다. 그런데 어찌 보면 인생의 목표나 삶의 목적이 그것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저를 포함해 그분들 역시 쉬어보고 내려놓아보니 보이는 게 있었을 것 같아요.”

의미 있는 대화였다.

그리고서 업무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것 또한 놓쳐선 안 되는 일이었고 그분께서는 그 일 때문에 순창에서 광주까지 온 것 아니었겠는가.

찬찬히 상담해 드렸고 철학적 이야기 이후 모드 전환해서 일이야기를 하는 나 자신이 재밌기도 하고 괜찮아 보이기도 했다.

어찌 보면 뻔한 하루 속에서도 철학적 향은 곳곳에 스며드는 게 아닐 까.

이것을 아주 잘 표현해 준 문장들이 있어 여기에 적어본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작가, 구본형의 「익숙한 것과의 이별」이란 책, 한 예문이다.


삶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구체적이며, 매일 아침 눈을 비비고 일어났을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그것이 바로 삶이다.

그것은 지금 주어진 물리적 시간이기도 하고,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 자체이기도 하다.

우리가 아침에 먹은 음식이기도 하고, 저녁에 좋은 사람과 나눈 빛깔이 아름다운 포도주이기도 하다.

마음속의 꿈이기도 하고, 잊혀지지 않은 추억이기도 하다.

슈퍼마켓에서 산 몇 마리의 코다리 명태이기도 하고, 스칠 때 얼핏 나눈 웃음이기도 하다.

삶은 작은 것이다.

그러나 모든 위대함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신은 세부적인 것 속에 존재한다.

일상의 일들이 모자이크 조각처럼 모여 한 사람의 삶을 형상화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하루하루는 전체의 삶을 이루는 세부적 내용이다.

작은 개울이 모여 강으로 흐르듯이 일상이 모여 삶이 된다.


그러므로 오늘이 그냥 흘러가게 하지 마라.

내일이 태양과 함께 다시 시작하겠지만 그것은 내일을 위한 것이다.

오늘은 영원히 나의 곁을 떠나간다.

아쉬워하라.

어제와 다를 것 없이 보내버린 오늘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을 참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하라.


오늘도 그렇게 시작해 보자. 모두 다 즐거운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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