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멘붕, 다시 내공연마

by 이도권


갑작스러운 여수발령.

모든 스텝이 꼬인 것 같았다.

주변인들은 나를 위로했다.

하지만 위로는 전혀 되지 않았다.

그저 헛헛함, 무기력감이 찾아들었다.


왜지? 비록 조직에 메여있긴 했으나 최근 8년간 선택당한 것이 아닌 선택을 해왔다.

노조간부, 육아휴직, 고향 광주로 복귀.

입에 달고 다닌 말이 있었다.

선택할 수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종속되기보다는 내 선택에 따라 움직인다는 삶의 주체성.

그 주체성을 물씬 느꼈던 시절이었다.


느닷없는 여수발령은 주체적 삶의 종점처럼, 현실 속 직장인으로 다가왔다.

그래서다.

그간 몸속 깊이 내려앉은 주체성, 그로 인한 행복감, 결과적으로 나답게 살아오기 수월했던 시간들이었다.

역으로 무기력하게 된 건 그 점 때문이었다.

조직에서 내려온 발령통보는 나를 화들짝 놀라게 했다.

방심하고 있었다. 연약한 초짜 팀장으로 가열하게 달려오던 중이었다.

바람 따라 높이 띄우다 갑작스레 끈 떨어지는 하나의 연 같았다.


주도적이었던 태도는 한순간 종속적으로 틀어졌고 의욕은 증발됐다.

주변 동료들의 ‘여수도 괜찮아’라는 위로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인사 통지로 완전히 바뀌어버린 상황들.

이것이 직장인의 숙명이자 한계인 것인가라며 헛헛함을 쓸쓸히 달래 보았다.

무심하게도 내일의 아침 해는 다시 떠올랐다.

내 의지와는 별개로 기계처럼 돌아갔다.

다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정신없고 두서없는 현재의 상황 속에서 나다움을 찾을 수나 있을까?


정글 같은 조직 속에서 8년간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다.

운이 좋게도 팀장자리를 얻었다.

이곳 역시 팀장자리다.


연약한 초짜 팀장은 너덜너덜한 마음을 보듬었다.

이내 새로운 팀원과 새로운 환경에서 내공연마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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