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황포강을 중심으로 어느 쪽 뷰가 더 높은 가치의 뷰일지 말이다.
1. 동방명주를 포함해 푸동이라는 고층빌딩의 마천루 뷰
2. 와이탄이라는 서양식 건물 뷰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텐데, 나의 경우 현대식 건물이 즐비한 마천루보다
100년 이상을 견뎌낸 와이탄 건물 뷰가 그렇게 좋았다.
상하이 와이탄이란 도시가 만들어지기까지 청나라 때부터 현대까지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 지면에는 역사적 사건을 나열하기보다는 그저 의식의 흐름대로 휘적거린다.
그렇게 많은 관광객들이 푸동의 현대식 마천루 풍경에 빠져있을 때
나 홀로 와이탄 큰 도로 옆 인도를 걸었다.
군중들로부터 떨어져 있으니 아주 호젓한 느낌이 들었다..
시선 높이는 바닥을 장식한 유럽식 보도블록, 가로수를 감싸는 잔디부터 시작해
건물 입구마다 장식된 각각의 조각상, 어떠한 건축 양식일지 모르겠지만, 섬세하면서도 대칭적으로 표현된 창, 그리고 곳곳의 문양들. 그러다 저 높이 건물 탑 정도에 이르러 '나 좀 봐주오'하는 건축물의 정점을 보여주는 끝 마감의 무엇들...
세상 혼란스러웠다던 청나라 말기, 당시 이 멋진 건물을 만들던 조각공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작업을 했을까. 근데 그 보다 사실은 이 멋들어진 건물에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면서 그 시대를 보냈을까가 더 궁금했다. 그렇다. 나는 건물을 보면서 그 시절의 사람들이 궁금했다. 어느 유튜버에 의하면,
동서양을 막론하고(물론 영국인이 가장 많았겠지만) 꿈 많고 도전적인 사람들이 수도 없이
들어왔다고 한다. 세상 흐름의 중심에 서있 던 상하이행을 선택했고, 그곳에 인생을 걸었던 그들. 그들은 인생의 어떤 목적을 갖았기에 상하이행을 선택했을까.
그들도 나처럼 와이탄 대로 옆을 지나치며 사색에 빠져있었을까.
인생을 걸었기에 그들 앞의 삶은 그 자체로 드라마였을 거다.
간혹 실패에 쓴 맛을 볼 때면 황포강을 응시하며, 다시 마음을 세우기도 했을 거라고 나는 상상해 본다.
출근길, 목적지가 분명한 그 길 위에서 나는 100년 전 상하이로 몰려든 꿈 많았던 사람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엇을 보았기에 모험을 감행했을까. 사십 대 중반에 이르러서도 쉽게 심적 방황을 겪는 나에겐
허튼짓 같은 이런 행동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중이다. 푸서에서 푸동 일터로 넘어가는 직장인들 속에서 돌연변이처럼 뛰쳐나온 나에게 '페리 선착장으로 가는 와이탄 길'은 그래서 매력적이다.
100년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건물 옆을 지긋이 쳐다보며 상상의 나래를 펴는 출근길.
상하이에 인생을 건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온전히 나 자신으로 살고 있는지를 성찰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님 거울처럼 지금의 나를 쳐다보고 싶었던 것일까.
'life work'
기회의 땅, 그리고 미지의 상하이에서
100년 전 그들, 그리고 지금의 나.
그들이 만들어 낸 '결'과 '스토리'는 나와는 다르다.
하지만,
삶의 목적이자 찾아내서 이뤄내야 할 'life work'을 대하는 마음은 얼핏 비슷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쓰고 보니, 이 글은 여행에서나 쓸 수 있는 이야기인 듯하다.
깊은 속내를 드러내기도 하고, 약간 혼란스럽기도 하고.
삶을 여행처럼 이란 화두에 참 맞는 글이기도 하고.
오락가락하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