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착한 아이 컴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왔다. 가정에서는 착한 자녀로, 친구들 사이에서는 내 의견보다 친구들의 의견에 맞춰주는게 다반사였으며, 사회생할을 할때는 이리저리 눈치보기 바빴다. 그렇게 나 자신을 사랑해주는 법도 모른채 결혼해서 배우자에게 양보하고 최대한 맞춰주려 끊임없이 노력했다. 더불어 나의 자녀에게도 허용의 범위를 넓게 허락하고 살아왔다. 그러나 나는 착하게 살겠노라 살았는데도 힘들어지거나 상처받는 일들이 많았고 지쳐서 어느순간 나 자신은 어디있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나 자신을 제외한 모든 타인들은 내가 배려해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거나 좋은 의도로 행동하는 나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뒤돌아보면 그렇게 바보처럼 배려하는 건 누가 시켜서 한건 아니었다!누가 그러라고 했나? no. 아니었다. 나는 왜 언제나 먼저 착한 아이가 되어 인정받고 칭찬을 받고 싶었을까.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교육 탓이었을까? 주입식으로 경직된 가치관이 형성된 어린 시절을 보내 어른이 되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건가…
나보다 8살이 많은 지인은 자기밖에 모르는 자기중심적인 이기적인 사람이다. 상대방이 들으면 기분 나쁠 언사도 서슴없이 내뱉는 나이값 못하는 인물이다. 우연히 몇 명의 지인과 그 인물이 속한 모임에 나도 참여를 하게되어 지속적으로 만남을 갖고 있다. 나는 나와 성향이 맞지 않는 그 인물덕에 벌써 몇번이나 모임을 그만둘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인물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과는 친분이 두터웠기에 그럭저럭 유지하는 것을 택했지만 영 마음에 안들었다. 특히 그 사람의 가볍고도 교만한 이중적인 성정은 쉬이 바뀌지않았다. 애초에 타인이 바뀔것이라는 허황된 생각을 품은 내가 바보라는 것을 곱씹는 계기가 되었을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사람에게 싫은 티도 내지 못했고, 더군다나 친절한 척도 해왔다.
나는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지혜롭게 내 의사를 표현하거나 잘못된 것을 말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 있다.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란 나는 수직적 가치관이 내재되어있어서 연장자에게 반대의사를 표현해야하는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말해야 할것은 해야하는데 그것도 잘 못하는 헛똑똑이인것이다.
그래서 나 자신을 바라보면 어떤 면에선 비겁하다 생각되기도 하지만 안쓰럽고 보듬어 주고 싶을때도 있다. 이 나이에도 싫어하는 것을 온전히 끊어낼 용기도, 말할 용기도 없고 예의를 차린다는 명목하에 맞지도 않는 옷을 입은듯 불편한 상황에서 벗어날 지혜도 없는 작은 아이가 나의 모습이기때문이다. 나는 무엇때문에 항상 착한 아이가 되려고 자처했을까.
진정으로 나를 아끼고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해야할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는데, 오랜기간동안 나는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받아들이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어느정도는 알것 같다. 내 자신이 바로 서고 나를 가장 많이 사랑해줘야한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알게되었으니 조금씩이라도 연습을 하려고 한다. 진정한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하고싶은 것들을 더 자유롭게 하면서 살아갈것이다. 똑부러지지 못하고 항상 착한 아이 코스프레를 하며 살아온 인생이었기에 남은 인생은 나를 가장 사랑하는 훈련을 해나가며 살아갈거다. 진짜 행복한 삶을 향해 나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