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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날의 구황삼치 Jun 21. 2022

하늘을 나는 퇴비(a.k.a 소똥)와 수단그라스

22년 신상 조사료 드디어 파종


1. 원래 계획

  계획대로라면 5월에는 우리가 먹을 쌀만 생산할 목적으로 900평짜리 논을 쟁기질하고, 로타리 치고, 물을 잡아 모내기 준비를 하는 게 계획의 전부였다. 하지만 겨울에 끝냈어야 했던 퇴비작업이 모종의 이유로 속절없이 연기되어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이제 시간이 없다. 남들이 논에 물을 대는 순간 퇴비장에 산처럼 쌓인 퇴비(소똥)는 계륵처럼 여겨지다가 비용을 지불해야 내 눈앞에서 조금씩 사라질 것이다. 즉 돈을 주고 치워야 한다는 뜻이다.


  예전에 소를 많이 키우지 않았던 시절에는 농사 좀 한다는 사람들이 똥을 차지하기 위해 참혹한 난투극을 벌였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돈을 주고 사갔다고 했는데 요즘은 돈을 주고 치워야 한다. 지자체에서 가축분뇨 자원화 시설이 있으면 그나마 수월하다고 하지만(정확한 내용은 모르니 혹시 아시는 분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엔 그런 시설 따윈 없다. 받아들일 만 하지만 묘하게 비싼 가격(5톤 트럭 1대당 10만 원, 하루에 평균 5~6회 가능, 3일을 치워야 퇴비장 절반 비움)이다. 그나마 농사철도 맞춰야 제때 퇴비장을 비워 또 다른 똥들의 안식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래야 소들도 편히 누워 반추할 수 있으니까.


5월의 전쟁이 끝난 퇴비장. 절반 조금 넘게 비운 모습이다.

  



2. 차선책이 필요하다.

  우리 농장에 딸린 논은 6개다. 900 + 900 + 1500 + 1000 + 900 + 1000 = 약 6200평이고 이 중 900평은 벼농사를 짓고 있다. 5300평으로 퇴비 순환농업을 이끌어내야 한다. 2020년까지 했던 콩(황태)은 이제 이별하기로 했다. 이별의 결심은 콩밭에 잡초가 아니라 나무가 자라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나도 할 만큼 했는데 나무가 자라다니…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라고 생각했다. 난 정글을 사랑하는 모글리가 아니므로 콩으로 부수입을 얻기보다는 소가 좋아하는 조사료(풀) 재배로 내실을 다지기로 결심했다.


5월 : 퇴비 살포(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쟁기질(흙과 똥 믹스 작업), 로타리(평탄화 및 균질화 작업)

6월 : 수단그라스 종자 살포(비야 제발 와라 쫌)

9월 : 수단그라스 1차 수확

10월 : 수단그라스 2차 수확

11월 : 볏짚 작업

12월 : 퇴비 살포(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쟁기질(흙과 똥 믹스 작업), 로타리(평탄화 및 균질화 작업)

            이탈리안 라이그라스 종자 살포

4월 : 이탈리안 라이그라스 수확

반복…

이렇게 계획을 세워보았다. 부디 이렇게 진행되길 빌 뿐…




3-1. 퇴비 in the sky

  귀농 한 5년 간은 내 일이 아니었다. 논에 관련된 모든 일들, 물론 모내기할 때는 돕긴 했지만 예초기 작업, 제초제 살포를 포함한 것들은 오롯이 아버지의 고된 잔업이었다. 올해부터는 내가 해야 한다. 아참, 아버지는 이제 1차 산업에서 은퇴하셨다. 아버지께 원포인트 레슨을 받고 바로 실전에 투입된다. 모든 일은 하면서 배운다. 잘못된 작동으로 고장 난 트랙터의 핸들을 잡으며 씩 웃어보지만 절벽에서 떨어진 먼지투성이 새끼 사자처럼 처량 맞고 외롭다. 그래도 지금까지 해왔다. 배우고 또 익히면 즐겁지 아니할 때도 있지만 퇴비살포기 작업은 즐거웠다. 베이지색 겨울 논에 퇴비를 뿌리면 진한 물감을 색칠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어때요 퇴비 뿌리기 참 쉽죠?

  일단 벼를 심는 논에는 퇴비살포기 기준(용량 5톤) 3차를 뿌렸고(많이 뿌리면 벼가 도복 됩니다) 나머지 조사료용 논에는 얼마나 뿌렸는지 세지는 않았다. 그냥 막 들이부었다. 멀면 조금 덜 뿌린 것 같고 가까운 논에는 30차 넘게 뿌린 것 같다. 잘 부숙 됐다고는 하지만 똥은 역시 똥. 살포 후 냄새가 슥 하고 난다. 동네 주민들에게 미안했다.

내 완벽한 계획표 (무사히 5월 중에 끝남)

3-2. 쟁기질과 로타리

  쟁기질은 말 그대로 땅을 가는 것이다. 기존에 있던 흙과 새로 뿌린 퇴비를 거칠게 섞어준다. 올해 봄은 유난히 가물었다. 퇴비살포기를 몰 때는 논이 단단해서 좋았지만 쟁기질을 하려니 땅이 안 파진다. 너무 말라 먼지만 많이 나고 쟁기를 조금만 깊이 넣으면 트랙터가 앞으로 가질 못한다, 결국 얕은 쟁기질을 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이나 쟁기질을 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로 한다. 자연과 싸워서 이긴 사람은 베어 그릴스밖에 없으니까, 난 그가 아니므로.

요 빨간 게 쟁기


  로타리는 아버지가 등판하셨다. 조금이라도 도와야지 하면서 나오셨는데 마치 조기축구에서 차범근이 등장한 것 같았다. 같은 트랙터인데 엔진 소리부터 달리 들리는 것은 거짓이 아니리라. 로타리는 쟁기질로 무너진 논의 수평을 다시 잡고 파종이 수월하게 흙을 더 잘게 부수어준다. 쟁기 삽을 땅에 박고 앞으로 가는 쟁기질과는 다르게 로터리작업은 속도를 낼 수가 없다. 속도를 내면 기계의 수명을 단축시키고 수평도, 균질화도 모두 다 놓치고 만다. 흙먼지를 일으키는 논 가운데 트랙터를 보며 내년에는 꼭 해보리라 다짐한다.

저 로타리 안에 무시무시한 칼날이…


3-3. 파종 그리고 봄비

  귀농한 후 아침에 일어나면 안경을 쓰고 핸드폰으로 날씨를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오늘은 날이 그럭저럭인데 내일 비가 온단다. 그것도 푸짐하게 온다고 했다. 딱 파종하기 좋은 날이다. 서둘러 아버지께 전화해서 고백한다. 오늘 파종하고 싶다고.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으셨다. 그냥 파종하면 된다.

트랙터에 부착하는 파종기는 없다. 농사도 장비빨이라고 했지만 난 장비보단 관우가 더 좋다. 그냥 등에 지는 비료살포기로 파종한다. 비료살포기 무게는 약 10킬로, 한 번에 1포대씩 파종하니까 약 20킬로 합이 30킬로다. 군 시절 행군이 바로 생각난다. 작년까지 이걸 했던 아버지의 작은 어깨를 생각하며 30킬로를 진 채로 7800보 정도 걸으니 파종도 끝이 났다. 5000평 논이니까 하루에 끝났군. 하루에 소화하지 못할 정도의 논을 가지게 되면 트랙터에 연결하는 파종기를 생각해 봐야지.라고 생각하며 어깨 스트레칭을 했다. 이 날 밤은 몹시 코를 골았다고 했다.


TMI 수단그라스 종자

1포 가격 159,000원 50% 보조사업 대상

 - 총 7포 1,113,000원 (차후 556,500원 환급 예정)

900평에 1포대 기준

종자는 염색해서 붉은 비비탄 같음.

파종할 때 총 머신건을 쏘는 듯한 쾌감이 있음.

행군하는 느낌이 바로 듬.


비료살포기 겸 파종기 겸


4. 현재 2022년 6월

 수단그라스의 싹이 제법 나왔다. 퇴비 살포할 때 똥이 뭉쳤던 부분은 안나는 것 같다. 내년에는 더 고르게 퇴비 살포하리라. 잡초가 섞여 나든 성장이 더디든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식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단 논 귀퉁이를 따라 파놓은 수로에는 풀약(제초제)을 뿌려야 한다고 한다. 나중에 디스크 모어를 부착한 트랙터로 수확할 때 경계선을 용이하게 표시하기 위한 장치이자 장마철에 조사료가 수몰되지 않게 해주는 역할도 한다. 장마 전에 해야 맞는데 아무래도 축사 우방 정리를 하게 되면 또 미뤄질 것 같다.

듬성듬성 … 슬픈 수단그라스

  이제 다음에는 수단그라스의 성장과 수확 그리고 사일리지를 만드는 과정을 글과 그림, 사진으로 담을 예정이다. 부디 올해에는 잘 크길 바랄 뿐이다.


다음 글은 우방 정리입니다. 많은 격려와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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