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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미한 소리 Nov 11. 2021

오즈에 사는 겁 많은 사자와 채식하는 호랑이 바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아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사자는 겁이 많습니다. 다른 사자들처럼 덩치가 크고 강하지만, 그래도 겁은 많습니다. 나약하고 심약해서일까요? 오히려 솔직한 것 아닐까요? 아무리 사자가 강하다 해도, 겁나고 두려운 일은 있을 수 있으니까요. 상상해봅니다. 다른 동물들이 사자를 보고 무서워할 때, 사자들도 그들을 보면서 조금은 무섭지 않을까요? "어흥~" 하고 외치는 큰소리가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을 없애는 주문 같은 것은 아닐까요?  사자도 겁이 나지만 용기를 내는 것이고, 용기를 내면서도 겁이 나는 것은 아닐까요?


사자 안에 용기와 두려움이 함께 있다는 상상은 저를 안심시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제가 키가 크고 덩치가 있어서 겁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공포영화도 못 보는 엄청 쫄보이거든요. 사자라는 이유만으로 용맹하다고 여겨지는 것처럼, 목사라는 이유만으로 따뜻한 사람이라고 여겨지는데, 실제로는 딸내미 숙제 도와주다가 욱하고, 사춘기 아들과 투닥거리고, 아내의 핀잔에는 삐지고, 운전하다가 소리를 지르거든요.


물론 제 안에도 나름의 용기와 따뜻함이 있습니다. 다만 두려움과 뾰족한 마음들도 함께 있을 뿐이죠. 이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사자는 겁이 없어야 하고, 목사는 늘 따뜻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즈의 사자는 겁을 내지 않으려고 하고, 저는 차가움을 숨기려 합니다. 하지만 그럴 수 있을까요? 그래야만 할까요?


동화책 ‘채식하는 호랑이 바라’에는 사냥을 싫어하는 호랑이 바라가 나옵니다. 바라는 사냥의 긴장감을 힘들어합니다. 그리고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는 동물들을 마주하는 일이 너무 슬픕니다. 그래서 채식을 하기 시작했고, 이를 숲 속 모든 동물들에게 알립니다. 그러나 바라의 바람과 달리 초식동물들은 호랑이가 채식을 한다는 것을 믿지 않았고, 육식동물들은 채식을 한다는 호랑이를 비웃고 멸시합니다.



예상과 다른 반응에 바라는 한 동안 아파합니다. 그때 바라에게 힘을 준 생각이 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아.” 바라는 다른 동물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채식이 자신에게 가장 잘 맞고,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임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채식과 함께 더 바랄 것 없는 자신만의 일상을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우리는 남들이 알아주길 바라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을까 염려합니다. 그래서 남들이 바라는 모습이 되기 위해 자신 안에 있는 모습을 감추거나 더하지요. 사자는 강해야 한다고 여기는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오즈의 사자는 자신을 겁쟁이로 여기며 용기를 얻기 위해 애씁니다. 목사는 따뜻해야 한다고 여기는 남들의 기대에 저는 제 안에 있는 모난 것들을 숨기기에 바쁩니다. 여러분이 남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숨기고, 무엇을 더합니까? 그것이 도움이 됩니까? 아닙니다. 감추고 억누를수록 오히려 망칠 뿐입니다.


대신 호랑이 바라를 깨운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말로 자신을 깨워 봅시다. 행복한 삶은 남들이 바라는 모습으로 살아갈 때가 아니라, 남들이 뭐라고 해도 자신의 삶을 살아갈 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들이 바라는 좋은 모습만 보이려고 노력하지 말고, 자신 안에 있는 다양한 감정과 모습을 솔직하게 인정해 봅시다. 맛있는 국밥이 그저 뜨겁기만 한 것이 아니라 뜨거우면서도 시원한 맛을 내는 것처럼, 다양한 우리의 모습이 맛있는 인생의 참 맛을 낼 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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