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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미한 소리 Dec 04. 2021

아프리카 작가들이 화나 있지 않아서 글을 잘 쓴다고?

세계 3대 문학상을 아프리카 작가가 석권한 일을 기념하며...

나이지리아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소설 ‘아메리카나’를 읽고, 미국 사회에서 미국인 흑인은 화난 사람으로 취급받지만, 미국에 사는 미국인이 아닌 흑인은 그보다 부드러운 사람들로 여겨진다는 점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잡지 <뉴요커>는 미국에서 아프리카 문학이 인기가 많은 이유를 아프리카 흑인들이 미국인 흑인처럼 화가 나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 작품을 번역하던 중에 <뉴요커>에서 “왜 세계는 지금 아프리카 문학에 열광하는가?”라는 기획 기사를 읽었는데, 그 원인으로 꼽혔던 것이 첫째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과거 영국이나 프랑스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아프리카 작가들이 제3세계 출신임에도 영어와 프랑스어를 모국어처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점이었고, 둘째는 아프리카인들은 미국인 흑인들처럼 “화나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소설 '아메리카나' 옮긴이의 말 중에서)


한국 작가 중 노벨문학상에 가장 가깝다고 여겨지는 고은 시인이 수상하지 못하는 이유가 작품을 영어로 번역하면 그 맛이 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아프리카 작가들이 영어와 프랑스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점은 장점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소설 ‘아메리카나’를 읽으면 화나 있지 않은 점이 왜 장점인지도 알 수 있습니다. 인종차별, 남녀차별, 정치와 사회 문제 등 민감하고 무거운 주제들이 나오지만, 그 분위기가 유쾌하고 따뜻해서 누구나 부담 없이 소화시키면서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뉴요커>의 분석이 아니꼽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인 흑인들이 화가 나 있는 이유는 미국에서 함께 사는 백인들이 괴롭히고 차별했기 때문이니까요. 비미국인 흑인이 화가 나 있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나라에는 차별하는 백인이 없기 때문이니까요.(남아공처럼 백인이 함께 사는 국가는 제외하고) 또한 식민지를 통해 영어와 불어를 모국어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 마치 축복이라는 듯 말하는 것도 고깝습니다. 


놀랍게도 세계 3대 문학상인 노벨문학상(스웨덴,) 부커상(영국,) 공쿠르상(프랑스)을 올해에는 모두 아프리카 출신 작가들이 수상했습니다. 그러나 이들 중에서 식민지가 알려준 영어와 불어 덕에 수상한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오히려 탄자니아 난민 출신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낙원’에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탄자니아에서 일어난 식민지의 아픔과 상처를 문학으로 승화시켰기에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식민지가 알려준 언어가 아니라 식민지가 만든 아픔을 이겨낸 아프리카인들의 생명력이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낸 것이지요. 


노벨문학상을 받은 탄자니아 난민 출신 압둘라자크 구르나


한편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수상해서 유명해진 부커상은 남아공 작가 데이먼 갤것의 소설 ‘약속’이 차지했는데, 그 이유는 백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흑인의 유머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반대로 남아공의 백인 가족이 몰락하는 과정을 통해서 굴곡진 남아공(인종차별)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여 주었기 때문에 상을 받았습니다. 


부커상을 받은 남아공의 데이먼 갤것


마지막으로 공쿠르상은 세네갈 작가 모하메드 은부가 사르의 소설 ‘인간의 가장 비밀스러운 기억’이(파리에 살고 있는 세네갈 출신 작가가 과거 1938년에 실종된 다른 작가의 자취를 쫓는 이야기) 수상했습니다. 수상 이유는 <뉴요커>가 언급하지 않았지만, 가장 단순하고 분명한 이유입니다. 바로 글 자체가 훌륭해서입니다.


공쿠르상을 받은 세네갈의 모하메드 은부가 사르


이미 2년 전에 아프리카 문학에 대한 기획 기사를 낸  <뉴요커>의 분석을 틀렸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다만 그 시선 속에 담겨 있는 오만함이 불편합니다. 아마 제 자신의 오만함을 거울처럼 비추기 때문이겠지요. 저 역시 몇 가지 아는 단편적인 사실로 쉽게 분석하는 글을 쓰거나, 다른 사람들을 제 마음대로 평가한 적이 있으니까요. 남들이 제 말을 알아듣기를 바라면서도, 남의 말과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으니까요. 제 허물과 실수를 지적하는 이들이 있으면, 반성하고 변화하기보다 그들을 공격하면서 제 자신을 방어해왔으니까요. 저를 편안하게 만드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의 sns와 글, 유머만을 편향적으로 즐겨왔으니까요. 저도 참 오만한 놈이네요. 이번 수상작들은 아직 번역이 되지 않았으니 다른 아프리카 작품을 읽으면서 제 오만함을 내려놓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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