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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미한 소리 Jan 18. 2022

봄의 신호는 나비가 아니라 사람이다.

체코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 카렐 차페크는 프라하에 있는 자신의 정원을 오랫동안 가꿨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정원가의 열두 달”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차페크 특유의 유머와 따뜻한 시선으로 전하는 정원가의 모습과 열두 달 동안 정원가의 손길에 따라서 변화하는 정원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정원을 돌보는 일과 우리 마음을 돌보는 일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허락도 없이 정원에 자라는 잡초처럼, 온갖 불편한 감정들도 우리 마음 안에 자라납니다. 정원가가 노력한다고 가뭄과 장마를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대비하고 노력해도 사고와 질병들을 모두 막을 수 없습니다. 정원가가 부지런하고 성실할수록 정원이 풍요롭고 아름다워지는 것처럼, 마음도 잘 돌보고 살필수록 풍요롭고 아름다워집니다. 한편 정원가는 정원에 빈자리가 없어도 새로운 식물을 사서 어떡하든 그것을 새로 심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왠지 버리지 못하면서 무언가를 꾸역꾸역 채우기는 잘하는 우리 모습 같지 않습니까? 이처럼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을 지내면서 정원을 가꾸는 정원가의 이야기는 한 해 동안 자신의 마음과 일상을 돌보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책 이야기 중에서 가장 공감한 부분은 추운 겨울날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그저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정원가의 심정이었습니다. 마치 코로나가 어서 빨리 극복되기만을 기다리는 우리의 심정 같았고, 불쑥 찾아오는 화, 슬픔, 불안 따위가 우리를 압도할 때 느끼는 무기력한 심정 같았습니다. 그러나 차페크는 겨울날에도 정원가가 해야 하는 나름의 임무가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봄의 신호를 발견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봄의 신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많은 분들이 나비를 떠올리실 텐데, 차페크는 여전히 추운 날 때 이른 나비는 봄의 신호가 아니라, 지난해에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까먹고 남아 있는 녀석들이라네요. 정원가가 발견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따로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어느 날 툭 터져 올라온 작은 잎사귀입니다. 비록 너무 작아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고, 보인다고 할지라도 정원의 전체 분위기를 바꾸지 못하는 새싹이지만, 정원가는 정원에 찾아온 작디작은 잎사귀를 단박에 알아차립니다. 그리고는 삽과 비료를 들고 정원으로 뛰쳐나가지요. 그래서 차페크는 말합니다. 봄의 신호를 먼저 발견한 이웃이 가장 명백한 봄의 신호라고요.


화려하고 눈에 잘 보이는 나비가 아니라 너무 작아서 보이지도 않는 새싹을 발견하고 정원으로 뛰어 나가는 사람이 봄의 신호라는 차페크의 이야기가 울림과 희망을 줍니다. 마음의 정원에 찾아오는 봄의 신호 역시 저 멀리 어디선가 날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새싹이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정원의 언 땅을 뚫고 나오는 것처럼, 우리가 기다리는 마음의 봄 역시 우리 안에서부터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올라옵니다. 물론 그 역시 작디작아서 당장 무엇을 바꿀 수는 없겠지요. 다만 새싹을 발견한 우리가 마음으로 달려가 정성스럽게 돌본다면, 분명히 아름다운 정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마음의 정원을 잘 살펴서, 기쁘게 뛰어나가는 봄의 신호가 되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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