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물어 메마른 땅에 반가운 빗소리와 함께 단비를 내리시어 산천이 춤을 추게 하옵소서.”
지리산에서 목회하는 선배 목사가 산청에서 시작된 산불이 근처까지 와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면서 카톡 단톡방에 올린 글입니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다행히 바람의 방향이 갑자기 달라져서 선배 교회와 집은 무사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얼마나 놀랐을까요? 언제 산불이 내려와 교회와 집을 불태울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니, 얼마나 두렵고 긴장되었을까요? 그럼에도 정작 본인이 직접 나서서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비를 내려달라는 간절한 기도에서 절절한 선배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큰 산불 앞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하는 것뿐이라는 점이 새삼스럽게 다가왔습니다. 당장 큰 산불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사람의 나약함을 느끼면서, 우리가 얼마나 뭐든지 할 수 있고, 뭐든지 괜찮다는 거대망상 속에서 살고 있는지 깨달았습니다. 사람의 부주의로 만들어 낸 산불 앞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비를 내려 달라며 자연의 자비로움에 호소할 뿐입니다. 화가 난 자연 앞에서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우리의 거대망상이 얼마나 가소로운지 드러났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자기 자신을 거대하게 여기면서, 자신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자신은 힘이 강해서 아빠하고 팔씨름을 해도 이길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기본이고, 번개 파워, 백만 볼트로 악당을 물리칠 수 있다고 여깁니다. 자신이 까치라서 날 수 있다며 지붕에서 뛰어내리는 아이도 있고, 빨간 망토를 두르고 자신이 슈퍼맨이라고 여기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학교에 갈 때 즈음이 되면 지붕에서 뛰어내리면 다리가 부러지고, 아무리 번개파워를 써도 사람을 쓰러뜨릴 수 없고, 망토를 두른다고 초능력이 생기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죠.
이처럼 성장한다는 점은 거대하고 과장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는 과정도 비슷합니다. 뭐든지 할 수 있고, 뭐든지 괜찮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사람도 동물과 식물과 마찬가지로 생태계 안에서 살아가는 작은 존재라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럴 때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이 번개파워를 쓰지 못하고 까치처럼 날지 못한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대신에 다른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나는 커서 손흥민 같은 축구선수가 될 거야, 아이유 같은 연예인이 될 거야, 일론 머스크처럼 부자가 될 거야.’ 물론 이 꿈들 역시 이루기 쉽지 않아서 현실적이라고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거대망상이 아니라 꿈입니다. 앞으로 더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고 꿈을 위해서 노력한다면, 조금씩 더 현실에 가까워지겠지요. 그리고 언젠가 또 다른 손흥민과 아이유가 등장하겠지요. 이처럼 과장된 자신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만날 때, 꿈이라는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만이 거대해진 불균형적인 유아적 바람을 멈추고, 생태계 안에서 다른 생명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우리가 될 때,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이번 안타까운 산불을 통해서도 새로운 길이 열리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도 새로운 길이 열리길 소망합니다. 까치처럼 날지 못해도, 하늘 높은 꿈은 품고 살기를 바랍니다. 혼자 거대하지는 않지만, 함께 위대한 삶을 살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