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새벽예배와 운동을 마치고 집에 가는데, 신기하게도 해가 뜬 하늘에서 비가 내렸습니다. 라디오 <출발 FM과 함께>에서도 이 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남아공에서 살고 있는 한 청취자가 해가 뜬 하늘에서 비가 오면 남아공에서는 원숭이가 결혼하는 날이라고 말한다고 했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같은 상황에서 호랑이가 장가가는 날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교류했을 리 없는 우리 조상들과 저 멀리 아프리카 조상들이 같은 하늘을 보며 비슷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점이 마음을 몽글하고 따뜻하게 했습니다.
그때 라디오 진행자인 이재후 아나운서가 그 청취자의 말에 공감하고 웃으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했습니다. 정확한 말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이런 의미였습니다. '결혼생활이 해가 떠 있는 것처럼 기쁘고 행복하고 밝고 즐거운 일이지만, 동시에 비가 오는 것처럼 어렵고 불편하고 힘든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해가 뜬 하늘에서 비가 올 때 원숭이가 결혼한다는 표현은 참 적절하다.'
해가 뜬 하늘에 비가 내리면 호랑이가 장가간다고 신기해했지만, 결혼생활의 이중성을 떠올린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곱씹을수록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해가 뜬 하늘에 비가 내리는 그날 라디오를 들으면서 남아공에서 결혼하는 원숭이와 한국에서 결혼하는 호랑이를 위해서 심심한 위로와 축하를 담아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단군신화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곰과 호랑이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동굴에서 100일간 쑥과 마늘만 먹으면서 지내야 했습니다. 곰은 그 어려운 일을 해냈지만, 호랑이는 실패합니다. 제가 꼭 그 호랑이 같았습니다. 용맹하고 멋진 호랑이가 아니라 사람이 되다 만 호랑이, 마늘과 쑥을 더 먹어서 사람이 되어야 하는 호랑이 말이죠. 누구나 사람답게 살기를 원하고 해야 하는 일을 해내기 바라지만, 곰처럼 성공하는 이들도 있고 호랑이처럼 실패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쨍하고 좋은 날만 있기를 바라지만, 비바람 불어서 춥고 어두운 날도 있습니다. 좋은 날이 있으면 슬픈 날이 있고, 해가 뜬 날에 갑자기 비가 내리기도 하고, 비가 오다가도 갑자기 해가 뜨기도 합니다. 결혼생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자체가 해가 뜬 하늘에 내리는 비와 같습니다.
인생의 이중성을 생각하며 한병철 교수의 책 <불안사회>에서 읽은 말이 떠올랐습니다.
“희망적 사유는 낙관적 사유와 다르다. 희망과 달리, 낙관주의에는 부정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낙관적 사유에는 의구심도, 절망도 없다. 완전한 긍정이 낙관주의의 본질이다. 낙관주의는 어떠한 것이 좋은 쪽으로 흘러갈 거라고 굳게 확신하는 사유 방식이다. 따라서 낙관주의자에게 시간은 닫혀 있다.”(불안사회, 한병철, p22)
한병철 교수의 말처럼 희망은 낙관주의가 아닙니다. 모든 것이 끝났고 가망이 없다고 여기는 비관주의자의 미래만 닫힌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좋을 것이라고 여기는 낙관주의자의 미래도 닫힌 미래입니다. 오직 절망 가운데에서 희망하는 자의 미래만이 열려 있습니다. 남아공의 원숭이와 한국의 호랑이가 해가 뜬 하늘에 내리는 비를 맞으며 앞으로 걸어간 것처럼 우리도 희망을 가지고 열린 시간을 향해 걸어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