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미국 듀크대학교 진화인류학(심리학. 신경과학) 교수 브라이언 헤어와 같은 대학의 진화인류학 연구원이자 작가 버네사 우즈가 버네사 우즈가 함께 집필한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인간과 동물의 생존과 번영의 결정적인 요인은 다윈이 주장한 “적자생존”과 경쟁에 있지 않고, 다정함에 있다고 말합니다. 듣기 좋고 따뜻하지만,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말처럼 들립니다. 왜냐하면 오랜 세월 살아남은 우리가 만든 세상은 다정하지도, 따뜻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비정한 세상에서 다정함의 힘을 전적으로 믿지 못하는 저 같은 사람에게 책은 다정하고 따뜻한 보노보를 소개합니다.
아프리카 콩고의 열대우림에 사는 보노보는 침팬지의 가까운 친척입니다. 이 둘은 거의 모든 인지력 실험에서 비슷한 결과를 보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에서 보노보가 침팬지보다 좋은 성적을 얻는데, 바로 협동능력입니다. 이를 보여주는 좋은 실험이 위의 책에 나옵니다. 실험은 콩고에 있는 롤라 야 보노보 보호구역에서 진행되었습니다. 1단계 실험은 보노보가 아침을 먹기 전 방 안에 과일을 한 더미 갖다 놓고, 보노보 한 마리를 방 안으로 들여보냅니다. 배가 고픈 보노보는 과일 더미를 혼자 다 먹어 치울 수도 있고 아니면 방 사이에 놓인 여닫이문을 열어 다른 보노보와 나눠 먹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침팬지였다면 문을 열지 않고 혼자 다 먹었을 것이라고 저자는 예측합니다. 그러나 보노보는 달랐습니다. 문을 열고 음식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자기가 먹을 음식이 줄더라도 나눠 먹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이런 보노보의 행동이 놀라웠고, 적어도 음식 앞에서는 저보다 보노보가 다정하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2단계 실험은 더 놀라웠습니다.
2단계에서는 서로 다른 무리의 보노보를 각각 다른 방에 모여있게 한 다음, 이전과 마찬가지로 보노보 한 마리를 탐스러운 과일 더미가 있는 방으로 들여보냅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선택지가 두 개가 아니라 셋이 됩니다. 첫 번째, 그냥 혼자서 다 먹는다. 두 번째, 과일을 가지고 자기가 속한 무리가 모여 있는 방으로 가서 나눠 먹는다. 세 번째, 과일을 가지고 만나본 적이 없는 다른 무리의 보노보가 있는 방으로 가서 나눠 먹는다. 실험 결과 모르는 보노보가 있는 쪽의 문을 여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합니다. 저자는 침팬지였다면 있을 수 없는 결과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침팬지에게 낯선 침팬지는 위험한 적으로 간주되며, 실제로 성체 수컷 침팬지는 어떤 적보다 모르는 수컷에 의해 죽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그러니 처음 보는 침팬지에게 과일을 가져다주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겠죠.
만약 내가 이 실험에 참가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침팬지처럼 낯선 사람을 물리적으로 공격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보노보처럼 낯선 이들을 다정하게 환대하지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낯선 이들에게는 전혀 관심을 주지 않고, 혼자 먹을지 가족들에게 가져다 줄지만 고민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다 한 두어 개 몰래 먹고 가족들에게 가져다주었을 것 같습니다. 음식 앞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 저보다 보노보가 더 다정합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보노보가 저보다 더 성숙한 신앙인이라고 느껴집니다. 저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설교만 할 뿐인데, 보노보는 실제로 행동하니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도 보노보처럼 다정하게 살 수 있을까요? 침팬지와 보노보의 차이에서 그 실마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음식 나눠 먹기 실험에 참가한 수컷 침팬지에게서는 테스토스테론, 즉 경쟁을 위한 호르몬이 증가했는데, 같은 상황에서 보노보는 스트레스 관련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증가했습니다. 침팬지는 바로 경쟁을 위한 준비를 한 반면에, 보노보는 문제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고민을 한 것이죠. 다정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도 동일합니다. 바로 경쟁하고, 무조건 공격하고, 전부 이기려고 하지 말고, 더 나은 방법은 없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갈등 상황에서 대화로 해결책을 모색하며, 협력을 위한 실천을 찾아봐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도 갈등과 경쟁이 극심한 비정한 세상에서 다정한 보노보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진 : Friends of Bonobos / 뉴스펭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