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왼쪽 발 복숭아뼈 아래쪽 피부가 찢어져서 다섯 바늘을 꿰맸더니, 걸을 때에도 천천히 걸어야 하고, 씻기도 불편해서 시간이 오래 걸리고, 꾸준히 앉아서 일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이 평소보다 더 오래 걸렸고, 더 늦어졌습니다. 이렇게 더딘 속도가 불편하고 답답했습니다. 그러나 속도를 더 빠르게 내려고 노력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속도가 너무 빨라서 다쳤으니까요.
요즘에는 저녁만 먹으면 저도 모르게 꾸벅꾸벅 좁니다. 다친 날도 거실에서 졸고 있었고, 아내가 씻고 자라고 깨워서 양치하러 화장실로 걸어갔습니다. 그러다 목이 말라서 컵을 가지러 주방 쪽으로 방향을 틀어 발을 내디뎠는데, 하필이면 고양이 밥그릇을 밟았고, 그대로 뒤로 꽈당 넘어졌습니다. 그때 도자기로 된 고양이 밥그릇이 깨지면서 피부가 찢어진 것이죠. 잠이 덜 깬 상태였던 제 몸이 하고자 했던 행동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다쳤습니다.
그런데 제가 다친 일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이제 막 시작한 담임목회로 지난 몇 개월은 정말 정신없이 보냈습니다. 부목사로 사역했던 교회라서 크게 바뀐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시작하니 낯선 일들이 연속해서 등장했습니다. 마치 잘 아는 길을 운전하고 있는데, 갑자기 공사가 생겨서 다른 길로 돌아가야 하고, 예전에 없었던 단속카메라가 생겨서 속도를 급하게 줄여야 하거나, 새로운 길과 터널이 생겨서 어디로 가야 할지 순간적으로 헤매는 상황이라고 할까요? 아는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처음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늘 마음만 앞서고, 생각만 빨리 달렸습니다. 언젠가는 몸이 꽈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다친 다리로 천천히 걸어야 하는 김에 마음과 일상의 속도도 적정속도로 줄여보려고 합니다.
문제는 적정속도가 얼마인지 알아내는 일입니다. 차량의 속도를 생각해 보면 도로마다 안전속도가 다릅니다. 보호구역은 시속 30km, 시내는 50~60km, 고속도로는 100~110km, 자동차 전용도로는 80~90km, 도로마다 적정속도는 다 다릅니다. 마음과 일상의 적정속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마다 상황마다 적정속도는 다릅니다. 무조건 천천히 간다고 좋은 일도 아니고 빠르다고 다 좋은 일도 아닙니다. 따라서 각자 자신의 적정속도를 확인해야 합니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왜 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그에 맞는 속도로 가야 합니다. 여행 중이라면 주변을 둘러보면서 천천히 걸으면 되고, 운동회 계주 마지막 주자라면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달려야 하는 것처럼 말이죠. 지금 여러분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습니까?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에 맞는 속도로 가고 있습니까? 혹시 너무 빠르지 않나요? 너무 느리지 않나요? 저처럼 속도위반으로 과태료를 받으셨나요? 저는 다리를 다쳤지만, 다른 사람은 마음을 혹은 관계를 다쳤을 수도 있지요. 그러니 자신의 적정속도를 꼭 확인하고 안전 운전해야 합니다.
물론 적정속도를 안다고 해도 일정하게 그 속도를 유지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함께 걸어가야 합니다. 마라톤대회에는 아마추어 참가자가 자신에게 맞는 속도로 달려서 완주할 수 있도록 함께 뛰어 주는 페이스메이커가 있습니다. 자신의 목표 시간대의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달리면 완주에 큰 도움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달리기에서도 페이스메이커가 있으면 큰 도움이 되겠죠. 그러나 인생을 이미 몇 번 완주하고 여러 번 살아본 페이스메이커는 따로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서 함께 걸어가야 합니다. 다만 아내와 저를 생각해 보면, 서로의 속도를 맞추는 일도 어렵습니다. 저는 아내보다 빠르게 걷고, 아내는 저보다 천천히 걷습니다. 아내의 입장에서는 제가 너무 빠르고, 제 입장에서는 아내가 너무 느립니다. 속도만이 아닙니다. 여름에 제가 에어컨 온도를 설정하면 아내는 춥다고 하고, 아내가 설정하면 저는 덥습니다. 겨울에 아내가 환기를 위해서 창문을 열면 추워서 제가 창문을 닫고, 제가 창문을 닫으면 아내는 답답해서 창문을 엽니다. 이렇게 서로의 속도가 다릅니다. 어떡해야 할까요? 그러나 누구에게나 정답인 속도는 없습니다. 유일한 길은 서로 대화하고, 각자 조금씩 양보하고, 조율해서 모두에게 적당히 맞는 속도를 찾아야 합니다. 그 속도로 여러분의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즐겁게 걷고 달리는 하루가 되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