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소년의 시간>
넷플릭스 시리즈 <소년의 시간>은 13세 소년이 인스타그램에서 자신을 ‘인셀’이라고 놀린 같은 반 여학생을 살해한 사건을 다룹니다. 도대체 ‘인셀’이 뭐기에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을까요? 인셀(Incel)은 Involuntary Celibate (비자발적인 독신자)의 줄임말로, 여성들에게 인기 없고 매력이 없어서 성관계를 하지 못하는 남성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여성의 80%가 인기 많고 매력적인 상위 20%의 남성들과만 관계를 맺는다고 여깁니다. 이것이 ‘80대 20 법칙’인데, 이 법칙 안에서 자신들은 기회를 박탈당하고 무시당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좌절감과 분노를 자신을 거절한 여성들에게 퍼붓습니다. 자신이 외롭고 비참하게 살아가는 원인이 다 여성의 잘못 때문이라고 왜곡하여 생각해서, 여성들을 향한 분노와 폭력을 행사합니다. <소년의 시간>의 주인공도 비슷한 심정으로 여학생을 살해했으며, 살해 후에도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고 오히려 그 여학생이 잘못했다고 여깁니다. 드라마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사회의 끔찍한 이야기이냐고요? 안타깝게도 오늘 우리 사회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현실입니다. 왜곡된 신념으로 비참해하는 남학생들과 그들의 테러로 공격당하는 여학생들이 실제로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에서는 <소년의 시간>을 학교교육 자료로 사용하면서, 이러한 현상에 대한 대비와 교육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셀’과 ‘80대 20 법칙’은 여성혐오 혹은 남성우월을 주장하는 극단적인 온라인집단(매노스피어)에서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그러나 <소년의 시간>에서 그리는 것처럼 최근에는 청소년과 청년들이 인스타그램이나 여러 소셜미디어에서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다행히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아직은 ‘인셀’과 ‘80대 20 법칙’을 많이 사용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대신에 ‘테토남, 에겐남, 테토녀, 에겐녀’와 같은 비슷한 용어는 사용합니다. 저도 저희 자녀들이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테토’는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의 줄임말이고, ‘에겐’은 ‘에스트로겐’(여성호르몬)의 줄임말입니다. 따라서 '테토남(녀)'는 남성호르몬이 강한 사람이고, '에겐남(녀)'는 여성호르몬이 강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말만 호르몬이지만 전혀 과학적이지 못한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용어들이 ‘인셀’처럼 혐오를 담고 있거나 극단적인 개념을 담고 있지는 않고, 가벼운 심리게임이나 놀이처럼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장난 수준의 이야기에 호르몬을 가져다 붙여서 마치 과학적인 내용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점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에 대한 단편적이고 왜곡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위험도 있어 보입니다. 나아가 언제든지 혐오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을 것 같아서 걱정됩니다. 그래서 아들과 딸에게 너희는 성인이 될 때까지 절대로 소셜미디어는 하지 말라며 제 불안함을 투척해 버렸습니다.
이 짧은 분량의 칼럼에서 인셀 현상을 깊이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니 분량이 넉넉하게 주어진다 해도 제가 잘 해낼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 일부터 하려고 합니다. 먼저 나부터 다른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외모와 스타일, 능력과 하는 일, 재산과 삶의 모습은 모두 다릅니다. 그러나 다를 뿐 그것이 등급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늘 의식하며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내 실패, 좌절, 외로움의 원인을 상대방과 외부에서 찾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남탓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삶에 어려움이 생기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조건반사처럼 남 탓을 합니다. 부모 탓, 사회 탓, 가족 탓, 운명 탓, 하나님 탓! 그러나 실제로는 남 탓만도 아니고 자기 탓만도 아니라 다 함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남에게 탓을 돌리기보다, 내가 스스로 무언가 할 수 있는 내 안에서 원인을 발견하는 일이 더 현명한 태도입니다. 마지막으로 내 안에 잘못된 고정관념은 없는지 늘 경계하고 살펴야겠습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왜곡되고 편향된 생각과 신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성숙한 사람도 잘못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다만 성숙한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저도 잘못을 인정하고 성숙해져야겠습니다.
<소년의 시간>을 보고 하는 저의 다짐들은 인셀 현상에 거의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할 것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제가 살아가는 하루의 시간 속에 있는 혐오와 차별은 조금씩 걷어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