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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미한 소리 May 03. 2022

나는 충분히 씩씩하다

싹을 틔우는 나만의 방법

나무나 꽃들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씨앗을 뿌리고 싹을 틔웁니다.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곤충과 바람을 통해서 꽃가루를 옮기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 말고도 매우 다양합니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책 ‘너의 곁에서’는 그 다양하고 똑똑한 방법들을 소개합니다.


질경이는 바람이나 곤충이 아닌 자신을 밟는 신발에 붙어서 씨앗을 옮기고, 사발 모양의 열매에 담긴 애기괭이눈 씨앗은 사발에 들어온 빗방울에 밀려서 세상으로 나옵니다. 반면 살갈퀴 씨앗처럼 다른 무엇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튕겨 날아가는 용감한 씨앗도 있습니다. 이처럼 씨앗을 뿌리는 방법도 다양하지만, 씨앗이 날아가는 모습도 다양합니다. 수양홍단풍의 씨앗은 대나무 헬리콥터처럼 날아가고, 벽오동 나무 씨앗은 보트 모양의 열매껍질을 타고 빙글빙글 돌면서 멀리 날아갑니다. 가장 화끈한(?) 방법은 오스트레일리아의 건조지대에 서식하는 나무의 경우인데, 느긋하게 자연발화를 기다렸다가 불이 나면 그 열기로 씨앗의 캡슐을 연다고 합니다. 경쟁자가 없을 때를 노리는 것이지요.


만화가 마스다 미리는 나무와 꽃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싹을 틔우는 자신만의 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따뜻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다만 똑똑한 나무와 꽃이 자신만의 길에 집중하는 반면에, 멍청한 사람들은 비교하느라 자신만의 방법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씨앗처럼 차분하게 자신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경쟁하느라 자신의 시간을 살지 못합니다. 만약 신발에 밟힌 질경이가 운이 좋아 강남 한복판에 심겼으면 너도나도 신발에 밟히려고 할 것이고, 벽오동 나무 씨앗이 서울대학교 잔디밭에 심겼으면 너도나도 보트 모양의 열매껍질을 타려고 하겠지요.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우리도 현명한 자연을 본받아 어리석은 비교와 경쟁을 멈추고, 자신만의 길을 가야겠습니다. 물론 쉽지 않겠지요. 그러나 바람과 빗방울에 휩쓸려 엄마 나무와 아빠 꽃에서 떨어져 나가는 씨앗은 쉬웠을까요? 밟히고, 튕겨지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은 얼마나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요? 엄마로부터 멀리 떠나 버린 낯선 곳이나 온통 불이 난 곳에 덩그러니 버려진 씨앗은 또 얼마나 불안했을까요? 반대로 사랑하는 자신의 아기 씨앗을 그렇게 보내야 하는 엄마 나무와 아빠 꽃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럼에도 씨앗은 자신만의 길을 씩씩하게 걸어갑니다. 왜냐하면 그것 말고는 자신의 생을 싹 틔울 방법이 없으니까요.


아직 스스로가 준비되지 않았고,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고, 자신의 길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충분히 씩씩하고 강합니다. 걷지 못하는 아가였을 때, 아무것도 붙잡지 않고 한 발을 앞으로 내딛는 일을 해낸 우리입니다. 내 가족 내 편이라곤 하나도 없는 낯선 학교에 첫 등교를 한 우리입니다. 태풍보다 무서운 사춘기를 견뎌낸 대단한 우리입니다.


그러니 지금 앞에 있는 그 어려움들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남보다 늦어도 됩니다. 돌아가도 되고, 볼품없어 보여도 괜찮습니다. 그저 용기를 내어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면 됩니다. 우리 모두는 씩씩한 씨앗이고, 결국 각자의 방법으로 찬란한 생의 싹을 틔울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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