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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미한 소리 May 13. 2022

흰 코끼리 프로젝트 vs 회색 코끼리 프로젝트

 ‘흰 코끼리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흰 코끼리는 불교에서 신성한 동물로 여겨지고, 동남아시아에서는 왕권의 정당성과 위엄을 상징하기 때문에 함부로 대하거나 일을 시킬 수 없습니다. 오히려 흰 코끼리를 위해서 사람이 일을 해야 하고, 많은 돈을 써야 하지요.  마찬가지로 ‘흰 코끼리 프로젝트’는 보기에는 번드레하지만 유지하는 데에는 엄청난 돈과 노력이 들어가는 데다 실질적인 이용 가치는 전혀 없는 프로젝트를 의미합니다. 50~60년대 중반 개발도상국가들이 경제적 실현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고 눈에 띄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참조 : 장하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부키)


  물론 흰 코끼리가 사람을 위해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사람이 흰 코끼리를 위해 일하고 돈을 써도 됩니다. 흰 코끼리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과 생명은 사람에게 실질적인 이용 가치가 없어도 충분히 위대하고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흰 코끼리 프로젝트’는 다릅니다. 조심하고 멀리해야 합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위에서 어슬렁거리면서 유혹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흰 코끼리를 신성한 동물로 여기는 결정적인 이유는 보통의 코끼리와는 달리 흰색이라는 특별함 때문입니다. 흰 코끼리 프로젝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 규모가 있고, 눈에 띄는 그럴듯하고 특별한 사업이지요. 오늘 우리 주위를 돌아다니는 흰 코끼리도 각자의 특별함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특별한 것이 매력적이고, 매력적인 것에 우리의 눈과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그 특별함에 취해 버려서는 안 됩니다. 특별함에 취해버리면 평범한 보통의 것들에 흥미를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실과 동떨어지고 전혀 도움도 되지 않는 온갖 특별함만 쫓아다닙니다. 악순환입니다. 특별함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래서 평범함 것들에 싫증을 내고, 그래서 더 특별함을 쫓아다니고, 그러다 흰 코끼리를 만나서 그럴듯한 프로젝트를 덥석 물어 버립니다. 여러분 주위에 있는 흰 코끼리는 어떤 특별함으로 여러분을 유혹합니까? 성공? 자녀들의 성공? 명문대? 돈? 외제차? 대기업?


 특별함이 흰 코끼리의 한쪽 귀라면, 다른 쪽 귀는 인정 욕구입니다. 흰 코끼리 프로젝트는 대부분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선진국이 되려면, 기업의 수준을 높이려면, 성공한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남들이 보기에 근사하고 그럴듯한 일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특별하고 대단해 보이는 것들에 관심을 갖게 되지요. 문제는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시작한 일들이기 때문에 정작 본인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대단하면 뭐합니까? 정작 그 안에서는 아무런 만족도 기쁨도 없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화려하고 멋진 디자인의 건물이라도 보이지 않는 구조가 약하면 위험한 것처럼, 남들의 시선과 보이는 것만을 중요시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래서 저는 '회색 코끼리 프로젝트'를 제안합니다. 회색 코끼리는 특별한 흰 코끼리가 아니라 평범한 회색 코끼리들을 위한 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특별함이 아니라 평범함의 가치를 인정합니다. 크고 대단한 일보다는 작고 사소한 일에 집중합니다. 나중에 일어나는 장기계획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오늘의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남들이 인정할 만한 일을 하기보다는 스스로 만족할 만한 일을 합니다. 그럴듯한 일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합니다. 남들에게 멋진 일보다는 스스로에게 멋진 일을 합니다.


 회색 코끼리 프로젝트도 실패할 수 있겠지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사소한 일이기에 또 시작할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기에, 하고 싶은 또 다른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특별하고 멋진 흰 코끼리가 부러울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지금 여기를 살아가다 보면 평범한 회색 코끼리도 영화 속 덤보처럼 아니 기적처럼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을지 누가 압니까? 회색 코끼리 프로젝트를 시작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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