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미한 소리 May 16. 2022

미루기의 천재들이여 쫄지 말고 조금만 더 빈둥거립시다!

앤드루 산텔라의 ‘미루기의 천재들’을 읽고

 양재천 산책길에 있는 독립서점 “믿음문고”에 들렸다가, 제목에 반하여 책 한 권을 샀습니다. 앤드루 산텔라의 ‘미루기의 천재들’입니다. 미루기의 천재라니 꼭 제 이야기 같았습니다. 책 읽기 전에는 주변 정리를 하면서 공부를 미루고, 노트북을 켜서 글쓰기 전에는 메일, 페이스북, 뉴스 등을 확인하면서 글 쓰는 것을 미루며, 카톡으로 연락하려고 핸드폰을 열면 웹툰도 보고, 손흥민 경기 결과도 확인하며 할 일을 미룹니다. 혹시 여러분도 미루기의 천재들이십니까? 그런데 다윈과 레오나르도 같은 진짜 천재들도 우리처럼 할 일을 미뤘다고 합니다.


 다윈은 5년간의 세계 일주를 통해서 모든 종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지만, 이에 대한 연구와 집필은 미루고, 그와 상관없어 보이는 따개비와 지렁이 연구만을 계속하다가, 무려 20년이 지난 후에야 ‘종의 기원’을 출판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암굴의 성모’를 의뢰받은 지 25년 뒤에야 그림을 납품하였습니다. 너무했다고요? 레오나르도가 대부분의 작품을 완성하지 못한 것에 비하면, 25년이 걸렸어도 완성은 했으니 그나마 나은 경우이지요. 이어서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백화점계의 거물 카우프만에게 별장을 지어달라고 의뢰를 받았지만, 9개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고 합니다. 기한이 한참 지나도 연락이 없자, 카우프만이 갑자기 사무실에 방문하겠다고 연락을 했고, 다급해진 라이트는 그때부터 급하게 도안을 그렸고, 그렇게 탄생한 별장이 그 유명한 ‘폴링워터’입니다.


 천재들의 미루기는 미루기의 천재인 우리들에게 위로가 됩니다. 혹시 그들의 천재성과 창조적 영감이 미루기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요? 이 기분 좋은 상상은 그동안 해온 빈둥거림에 대한 죄책감을 없애주고, 앞으로는 맘 편히 미룰 수 있도록 안심시켜줍니다. 하지만 책은 다음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우리를 멈칫하게 만듭니다. 미국 독립전쟁 중 워싱턴의 군대는 기습작전을 준비했는데, 안타깝게도 상대편에서 이를 알아채고 지휘관에게 쪽지로 기습에 대한 내용을 알립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전날 밤 카드놀이를 하던 지휘관은 쪽지를 나중에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계속 카드놀이를 합니다. 이 사소한 미루기로 워싱턴의 기습작전은 성공하지요. 이처럼 미루기는 위대한 창조물이 아닌 무섭고 처참한 결과도 만들어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빈둥거림이 영감을 준다고 믿고 계속 미루며 살까요? 아니면 어리석은 지휘관의 미루기를 반면교사 삼아 미루는 습관을 버려야 할까요? 이에 대한 답을 내리기 전에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왜 미룰까요? 할 일이 힘들고 어려워서 미룹니다. 막상 했다가 실패하거나, 주변의 평가가 좋지 못할까 봐 미루기도 하지요. 처음 하는 일은 두렵고 막막해서 선뜻 시작하기가 꺼려지고, 당장 안 해도 다 잘 될 거야 하는 막연하고 근거 없는 낙관주의 때문에 미루기도 합니다. 한편 해야 하는 일이 정말로 나에게 필요한지 확신이 들지 않거나, 아직 시작할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에도 미룹니다. 어떻습니까? 이유가 다 다르지 않나요? 그렇다면 미루기에 대한 우리의 대처도 다 달라야 합니다. 미루기는 무조건 좋은 행동도 무조건 나쁜 행동도 아닙니다. 미루지 말고 바로 행동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잠시 멈춰서 숨을 고르고 준비를 하며 힘을 모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따라서 잘 살펴야 합니다.

 

 지금 무엇을 미루고 있습니까? 그것을 미루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미루는 일은 꼭 해야 하는 일입니까? 잠시 빈둥거리면서 각자의 미루기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판단해보세요. 미루기를 멈추고 다시 해야 할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면, 온 힘을 모아 지금 당장 그 일을 시작하세요. 그러나 만약 그 일을 해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면, 조금만 더 빈둥거려 보세요. 혹시 압니까? 정말 빈둥거림이 영감을 주어서 위대한 일을 하게 될지 말이죠. 그러니 미루기의 천재들이여 쫄지 말고 조금만 더 빈둥거립시다!

매거진의 이전글 흰 코끼리 프로젝트 vs 회색 코끼리 프로젝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