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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미한 소리 Aug 31. 2022

예전 지도에는 왜 괴물이 그려졌을까?

지도에 빈 공간을 만들자.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근대의 사고방식이 발생한 15~16세기에 그려진 세계지도는 이전 지도와 다르다고 말합니다. 근대 이전 세계지도 중 어느 것도 세계 전체를 알고 그린 것은 없었습니다. 당연히 지도에 빈 공간이 많이 있어야 했겠지요. 하지만 지도에 빈 공간은 전혀 없었습니다. 낯선 지역은 지도에서 빼버렸고, 대신 상상 속 괴물이나 불가사의한 것들을 멋대로 그려놓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지도가 비어 있는 것이 불안해서 쓸데없는 그림을 그려서 채웠습니다. 그리고 나선 자신이 세계를 다 알고 있다는 인상을 준 것에 뿌듯해하며, 착각 속에서 지낸 것이죠. 반면에 15-16세기 유럽인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가 전부가 아님을 인정하면서 지도에 빈 공간을 그대로 남겨두었습니다. 이전 사람들이 자신의 무지를 들추고 수치심과 조롱을 줄 것으로 예상한 지도의 빈 공간은 오히려 긍정적인 일을 해냅니다. 수많은 이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지도의 빈 공간을 향해 나아갔고, 덕분에 감춰진 세계의 진짜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지도의 빈 공간이 진정한 세계 지도를 그려낸 것이죠. (참고: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4부) 

 

 그러나 지도의 빈 공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기껏 용기를 내어서 지도에 빈 공간을 만들어 놓고선, 허무하게 잘못 채웠기 때문입니다. 근대 유럽인들은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이 지도의 빈 공간을 향해 나아갔고, 제국주의의 폭력과 침략으로 지도의 빈 공간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습니다. 중세 사람들이 지도에 괴물을 그리면서 빈 공간을 채웠다면, 이들은 스스로 괴물이 되어 전쟁을 하면서 지도와 현실의 빈 공간을 채운 것이죠. 


 과거의 그들을 욕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 각자의 지도를 점검해 보자는 것이죠. 여러분의 지도는 어떠합니까? 하루 혹은 일주일의 경로를 생각해보세요. 스마트폰 지도로 어디를 검색했습니까? 내비게이션 목적지는 어디였습니까? 일상 속 지도의 범위는 그리 넓지 않겠지요. 그러면 마음과 생각의 지도는 어떠합니까? 마음에서는 전 세계를 그려내고 있습니까? 생각은 지구를 넘어 달까지 올라갔습니까? 자!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 여러분의 지도에는 빈 공간이 있습니까?


  아마도 우리의 지도에도 빈 공간이 그지 많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과학과 산업, 물질과 자본의 발달로 그 어느 시대에도 만들 수 없었던 최첨단의 지도를 손에 쥐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최점단 지도는 마치 괴물이 된 것처럼 우리의 일상에 조금의 틈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정보를 제공하며 채우라고 말합니다. 이에 우리의 몸과 마음은 만족 없는 폭식으로 지쳐갑니다. 세계지도에 새롭게 대륙과 나라가 그려지면서, 정작 그곳의 사람들은 아파하고 힘겨워했던 것처럼, 우리 지도의 빈 공간이 채워질수록 우리 역시 조금씩 버거워지고 힘겨워집니다. 


 따라서 다시 비워야 합니다. 빈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죠. 지도와 자신 안에 있는 빈 공간을 채우지 않고 그대로 두는 일은 늘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니까요. 지도 속 괴물의 공격도 다양하고 강력합니다. 욕심, 정욕, 비교, 거짓 정보 따위를 무기로 우리에게 끊임없이 일하고 채우고, 쉬지 말고 빈 공간을, 빈 시간을 없애라고 강요합니다. 여기에 속지 맙시다. 15-16세기 사람들이 용기를 내어 지도에 빈 공간을 만들어 낸 것처럼, 오늘 우리도 용기를 낸다면 각자의 지도에 빈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잠시 시간을 내어 오늘 하루 일정을 떠올려 봅시다. 혹시 필요 없는 일정이 있다면 취소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집에 있는 물건을 떠올려 봅시다. 혹시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나 앞으로 사용하지 않을 물건이 있다면 다른 이들에게 선물을 주거나 기부하는 것은 어떨까요? 마음의 지도와 생각의 지도도 지우개를 들고 이렇게 살펴보면 어떨까요? 그러다 보면 빈 공간이 생기고, 빈 공간이 생기면 그만큼 여유롭게 그리고 진정한 나답게 살 수 있을 테니까요. 



*사진 속 지도는 1457년에 만들어진 “Genoese World Map”으로 대항해시대 이전에 만들어진 중세의 마지막 세계지도이다. ‘민중의 소리’ 기사에서 사진을 공유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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