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마음 : 식탐
6세기의 교황 대그레고리오 1세는 식탐이 사람을 죄와 불행에 빠지게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식탐이 배탈과 비만의 원인이 될 수야 있겠지만, 죄와 불행의 원인이라는 말은 지나친 것이 아닐까? 적어도 내 식탐은 나와 가족을 행복하게 만드니까 말이다.
인천에 있는 처댁(처가댁)에 놀러 가면, 늘 잔치인 것처럼 진수성찬이 차려진다. 싱싱한 회와 매운탕, 생선구이, 마당에서 키운 채소로 만든 나물무침, 고기반찬, 그중에서 메인은 어머니가 손수 담그신 간장게장이다. 유명 식당에서 비싸게 파는 간장게장만큼이나 맛있다. 맛있고 푸짐해서 너무 좋지만, 먹다 보면 꼭 지나치게 많이 먹게 된다. 식탐 부리지 말고 적당히 먹으면 되지 않냐고 하겠지만, 몰라서 하는 소리다. 게딱지에 밥을 비비면 꼭 밥이 조금 모자라서 더 먹게 된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밥은 조금만 먹고 반찬 많이 먹으라고 하시는데, 퍼주신 밥이 이미 고봉밥이다. 어쩔 수 없이 밥도 많이 먹고 반찬도 많이 먹을 수밖에 없다. 이제 더 이상 먹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뒤로 물러나면, 주방에서 어머니가 "방서방~ 밥 배와 디저트 배는 달라"라고 말씀하시면서 과일, 떡, 아이스크림 등 가지고 오신다. 몸은 더 이상 먹으면 안 된다고 경고하지만, 신기하게도 한 입 먹으면 또 맛있게 디저트를 먹게 된다. 어머니 말씀대로 우리 몸에는 배가 여러 개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식탐을 부리는 결정적인 이유는 다른데 있다. 어머니는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오는 주인공 엄마(이일화)처럼 손이 크시고, 손맛이 좋으시다. 그리고 가족들이 그 음식을 맛있고, 배부르게 먹는 것을 참 좋아하신다. 그래서 인천에 가면 식탐을 조금 더 부리게 된다. 이런 내 식탐을 죄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죄로 여기며 조심해야 하는 식탐은 음식을 많이 먹는 행동이 아니다. 죄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식탐은 잘못 먹는 일이다. 지금부터 잘 먹는 일, 잘못 먹는 일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함께 먹기
넓은 의미로 보면, ‘더 많이 먹으려는’ 식탐은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는데, 왜 교황은 굳이 식탐과 욕심을 구분하여 7가지의 죄에 따로 넣었을까? 당시 사회에서 식탐이 따로 문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는 모든 물자가 부족했고, 음식 역시 부족해서 모두가 배불리 먹을 수 없었다. 그러한 환경에서 혼자만 배불리 먹으려고 식탐을 부린다면, 반대로 누군가는 굶주려야 했다. 따라서 누군가의 몫을 빼앗고, 굶주림을 만드는 식탐은 욕심과 별개로 위험한 죄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6세기와 달리 지금은 모든 것이 풍요롭고 넘쳐나는데, 그러면 식탐은 더 이상 죄가 아니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그럴 수 없다. 음식이 넘쳐나고 심지어 음식물이 버려져 쓰레기가 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고, 영양이 부족해서 병에 걸리며, 심지어 굶어 죽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스마트폰을 열고 몇 번의 터치로 음식을 시켜 먹고 있을 그 시간에 누군가 굶어 죽고 있다고 생각하니 오싹해진다.
교황이 식탐을 죄라고 명명한 것은, 모두가 살 수 있도록 함께 나눠 먹으라는 명령이었다. 만약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눠 먹지 않는다면, 배고픔에 고통받는 이들을 외면하고 각자의 몫을 나눠주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식탐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식탐들이 모여서, 음식이 너무 많아서 버려지는 지금에도 굶어 죽는 사람을 만든다. 이제 식탐을 멈추고 함께 나눠야 한다. 어떻게 하냐고? 인터넷에 ‘기아대책, 기아 돕기’ 등으로 검색만 해도 수많은 캠페인과 ngo 단체들이 나온다.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방법을 선택해서 각자의 몫을 굶고 있는 이들에게 나눠주자. 물론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국가와 단체의 협력이 필요하고, 법과 제도도 마련해야 한다. 다만 내 식탐을 멈추는 시작으로는 충분하다. 그러니 바로 시작하자.
그리고 한 가지 더 권하고 싶은 건강한 식사 방법이 있다. 바로 채식이다. 왜냐하면 자연과 동물이 우리의 식탐에 가장 고통받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아내가 앞으로 채식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고기를 좋아하는 아들이 따지듯이 물었다. ‘뭐 내가 고기를 먹는다고 기후위기가 생기고, 채소를 먹는다고 기후위기가 멈춰?’ 아내가 쿨~ 하게 대답한다. “응!” 환경 전문가들은 고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온실가스가 배출되고 있기 때문에, 채식 위주의 식단을 할 때 기후위기를 막는 일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네덜란드 환경 평가원은 2008년 전 세계가 고기를 덜 먹는 식단으로 전환할 경우 2050년까지 예상되는 기후 비용의 최대 80%까지 줄일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처럼 채식은 죽어가는 생명을 외면하는 식탐을 멈추고, 모든 생명이 함께 잘 살 수 있도록 돕는 건강한 식사 방법이다. 조심스럽게 같이 채식을 시작해보자고 권해본다.
무엇을 먹느냐가 나를 만든다.
식탐을 이야기하면서 기아대책과 채식을 말해 부담스러워할 것 같다. 그리고 식탐을 버리는 일이 다 남을 위해 하는 행동이라고 오해하지 않을까 염려도 된다. 하지만 식탐을 줄이는 행동은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고, 건강하게 먹는 방법도 어렵지 않다.
2007년 신혼여행으로 두 달간 터키 배낭여행을 했었다. 코로나로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 요즘이기에, 터기 여행의 모든 순간과 경험들이 그립고 소중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터키 전역과 시리아, 이란까지 다닌 여행에 힘든 점이 없지는 않았다. 그중에서도 처음에 가장 힘들었던 점은 터기 사람들에게서 나는 냄새였다. 특히 버스를 타면 냄새가 더 심하게 났는데, 최소 4시간 이상 버스를 타야 했기에 곤욕스러웠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나자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아내에게서 터키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내 몸에서도 같은 냄새가 났다. 더 신기한 것은 아내와 내가 더 이상 그 냄새를 힘들어하지 않았을뿐더러, 냄새를 맡고 오히려 식욕이 돌았다. 어떻게 된 일일까? 외국인들이 한국 사람에게서 마늘 냄새가 난다고 하는 것은, 한국 사람이 마늘을 많이 먹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터키 사람 냄새라는 것 역시 그들이 먹는 음식에서 나는 냄새이다. 그런데 아내와 나는 한 달 동안 모든 식사를 한식이 아닌 현지 식으로만 먹었고, 그래서 우리에게도 터키 사람의 냄새가 난 것이다.
이 경험을 통해서 사람이 무엇을 먹느냐가 중요함을 배웠다. 터키 음식을 먹으면 터키 사람의 냄새가 나고, 한국음식을 먹으면 마늘 냄새가 나며, 건강한 음식을 먹으면 건강해지고, 불량한 음식을 먹으면 불량해진다. 그래서 여행 이후에는 유기농, 국내산 등 친환경 식재료를 먹으려고 노력한다. 처음에는 주변에서 가난한 시골 전도사와 사회복지사가 배가 불러서 비싼 음식을 사 먹는다고 한소리씩 했다. 그들의 지적처럼 당시에는 친환경 식재료에 대한 수요가 높지 않아서 가격이 비싸긴 비쌌다. 하지만 건강한 식재료들이 나를 건강하게 만들고, 내가 건강해야 가난해도 즐겁게 목회와 사회복지를 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건방지게 계속 비싸고 건강한 음식을 먹었다.
사실 초등학교 1학년만 되어도 어떻게 먹어야 건강한지 다 안다. 그러나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로, 시간이 없고 번거롭다는 이유로, 맛이 없다는 이유나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로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고 대충 먹는다. 이렇게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고 대충 먹는 것도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식탐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지나치게 불량하게 먹는 것도 지나치게 많이 먹는 것만큼이나 우리에게 해로우니까 말이다.
배고픈 마음
마지막으로 함께 이야기하려는 식탐은 '마음의 허기'이다. 보성에서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했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는 조손가정 아동들이 많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여러 곳을 왔다 갔다 하다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맡겨진다. 도시에서 부모님과 살다가. 이사해서 부모 한 명과 살다가, 다른 도시의 친척에게 갔다가, 다시 부모 한 명에게 갔다가, 그렇게 몇 번을 거쳐서 시골의 할머니 댁으로 온다.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의 마음은 갈라지고, 차가워지고, 굳어 버린다. 일단 어른들의 말과 약속을 믿지 못한다. 그동안 들었던 달콤한 약속들이 지켜진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약속을 믿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또 다른 특징이 있었는데, 밥을 엄청 많이 먹었다. 물론 전라남도에서 음식 잘하기로 소문난 할머니께서 급식 조리사로 음식을 해주셨기에, 다른 학생들과 선생님들 모두가 밥을 많이 먹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그 정도가 아니라 병적으로 많이 먹었는데, 다행히도 센터에 적응을 하고 선생님과 친구들과도 잘 지내게 되면 조금씩 밥 먹는 양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편이 되어주는 어른이 있고, 그 어른들은 자신에게 한 약속을 지킨다는 것을 확실히 느낀 후에는 다른 이들처럼 적당히 많이 밥을 먹었다.
아이들이 병적으로 많이 먹었던 것은 몸이 배고파서가 아니라 마음이 배고팠기 때문이고, 그 배고픈 마음을 음식으로 채우려고 식탐을 부렸다. 이처럼 식탐은 마음의 허기에서 시작한다. 이별을 경험한 이들이 멍하게 음식을 많이 먹거나, 스트레스가 심한 이들이 맵거나 단 음식을 많이 먹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물론 음식이 실제로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기도 한다. 힘들게 일하다가 잠시 쉬면서 마시는 커피 한잔, 수업 후에 먹는 떡볶이, 상사 욕하면서 먹는 매운 닭발, 배고플 때 먹는 김치찌개, 더울 때 먹는 평양냉면...
이처럼 음식이 허한 마음을 달래 준다면, 식탐을 부려도 되는 것이 아닐까? 친한 사람들과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면 행복해지는데, 그러면 된 거 아닌가? 그러나 구멍 난 튜브에 바람을 넣으면 순간 빵빵해지지만 금방 다시 쭈글 해지는 것처럼, 마음의 배고픔을 달래기 전에는 아무리 많이 먹어봐야 그때만 잠시 나아질 뿐이다.
지역아동센터 차량은 경유차였고, 개인 차량은 휘발유차였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번갈아 운전을 하다 보니 실수로 개인차량에 경유를 주유한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아무 문제없이 잘 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차가 이상해졌고 고장이 났다. 음식으로 마음의 배고픔을 해결하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어리석고 위험하다.
내가 평소보다 많이 먹는다면(혹은 반대로 평소보다 적게 먹는다면)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자. 분노, 무기력, 시기심 등 마음을 배고프게 만드는 감정들이 보일 것이다. 그러면 튜브에 난 구멍을 메꾸는 것처럼, 그 마음들을 잘 달래 보자.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먹는 것처럼 즐겁지도 않겠지만 그럼에도 해야 한다. 휘발유보다 경유가 싸다고 휘발유 차량에 경유를 주유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구멍을 메꾸면 다시 튜브가 빵빵해지는 것처럼, 마음의 배고픔이 달래고 나면 음식을 더 맛있고 건강하게 먹을 수 있다.
1. 식탐은 많이 먹어서가 아니라 건강하게 먹지 않아서 문제이다.
2. 만약 내 몫을 굶주린 이들과 자연, 그리고 동물에게 나눠주지 않고 있다면, 식탐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3. 만약 경제, 시간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건강한 음식을 먹지 않는다면, 식탐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4. 만약 자신의 아픈 감정을 돌보지 않고, 그저 먹고 마시면서 아픈 감정을 피하기만 한다면, 식탐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