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만과 불안을 먹고 자라는 욕심

첫 번째 마음 : 욕심

by 세미한 소리

욕심 많은 사람은 인기가 없다. 부담스럽고 불편하다. 형제가 욕심 많으면, 늘 그에게 양보해야 했거나, 치열하게 싸웠을 것이다. 동료가 욕심 많으면 부담스럽고 억울한 일이 생긴다. 친구가 욕심 많으면 부끄럽고 재수 없다. 웬만하면 욕심 많은 사람과 함께 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욕심에는 너그럽다. 이 정도는 욕심이 아니라, 정당한 요구라고 착각한다. 바로 이것이 미세먼지처럼 우리를 아프게 하는 지점이다. 우리 일상을 흔드는 것은 꼴 보기 싫은 남들의 욕심이 아니다. 그러려니 하며 모른 척하는 자신의 욕심이다. 따라서 자신의 욕심을 인정하고, 그 마음을 잘 살펴봐야 한다. 그러나 무작정 욕심을 없애려 하거나 무조건 참으려고 해서는 안된다.


몸에 열이 나는 이유는 다양하다. 감기에 걸려도 열이 나고, 식중독에 걸려도 열이 난다. 그것은 몸에 들어온 병균과 싸우기 위해서 몸이 스스로 열을 내기 때문이다. 열이 날 때, 해열제를 먹고 열만 내리면 어떻게 될까? 열이 안 나니까, 다 나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만약 그랬다간 병을 더 키울 뿐이다. 열이 나는 것은 증상이고, 증상을 완화시키는 일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것으로는 병을 온전히 치료하지 못한다. 정확한 원인을 진단하고 그에 맞는 치료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욕심에 대처하는 과정도 비슷하다. 열이 몸에 올라온 증상이라면, 욕심은 마음에 올라온 증상이다. 따라서 욕심을 참으려고만 하는 행동은, 열만 내리고 진단과 치료를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일이다. 욕심에 잘 대처하기 위해서는 참으려고만 하지 말고, 왜 욕심이 나는지에 대해 먼저 고민해야 한다.


몇 학년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때 나는 받아쓰기에서 98점을 받은 적이 있다. 적은 감점이 있었던 걸로 미루어 아마도 받침이나 사소한 문법을 틀렸던 것 같은데, 시험지를 집에 들고 가자 엄마는 말했다. “2점 어디 갔니?”


문지혁 작가의 소설 ‘초급 한국어’에 나오는 내용이다. 소설 속 엄마는 아들의 98점이라는 높은 점수에 만족하지 않고, 부족한 2점에 불만을 표한다. 그리고 아들에게 2점에 행방을 물으면서, 부족한 2점을 더 가지고 오라고 욕심을 부린다. 여기서 우리는 욕심을 일으키는 원인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다. 바로 ‘불만’이다. 불만은 인간이 오랫동안, 아니 처음부터 간직한 마음이다. 아담과 하와는 풍요로운 에덴동산에서 모든 것을 누리며 살고 있었다. 다만 하나님께서 딱 하나 선악과는 먹지 못하게 하셨다. 그래도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것 말고는 모든지 자유롭게 할 수 있었으니, 점수로 치면 98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정도면 충분한 인생 아닌가?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았어야 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굳이 선악과를 먹는다. 풍요로운 에덴동산에 만족하지 못하고, 딱 하나 먹지 못했던 선악과에 부족함을 느낀 것이다. 그 결과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고작 부족한 2점 때문에 이미 충분한 98점을 차 버린 인류의 조상이나, 수고한 아들에게 2점을 강요한 엄마나 다 어리석다. 그런데 우리라고 달랐을까? 70점 정도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이기에, 만약 98점이 되면 모든 것에 만족하고 마냥 기뻐할 수 있을 것 같겠지만, 막상 98점이 되면 우리도 부족한 2점에 불만을 느끼며 욕심을 낼 수 있다. 왜냐하면 만족과 불만을 결정하는 것은 숫자와 수치가 아니라, 현실과 자신을 판단하고 대하는 태도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만족의 태도를 지닌 사람은 어느 상황에서도 감사와 기쁨을 느끼지만, 불만의 태도를 지닌 사람은 아무리 좋은 상황에서도 부족함을 느낀다. 그리고 바로 이 부족함이 더 가지려는 욕심을 만든다. 따라서 우리는 각자의 욕심을 무조건 억누르거나 참으려고 하기 전에, 자신의 삶에 대한 태도를 점검해야 한다. 100점짜리 인생은 없으니, 우리에게도 부족한 점이 있을 것이고, 불만스러운 점도 당연히 있을 수 있다. 그러나 0점짜리 인생 역시 없기에, 이미 가진 것도 있고, 만족할만한 점도 당연히 있다. 그러니 부족한 2점이 아니라, 이미 충분한 98점을 보는 건강한 시선과 태도를 가지려고 노력해보자. 그럴 때 욕심이라는 증상이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 마치 감기가 나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열이 내리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불만만큼이나 우리 안에서 욕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있는데, 바로 '불안'이다. 소설 속 엄마의 마음에는 불만뿐만 아니라 불안함도 있었다. 혹시 아들이 100점을 받지 못하고 2점을 틀려서, 다른 학생들에게 뒤처질까 불안했고, 그 불안함이 2점을 더 욕심내게 만들었다. 비슷한 상황을 우리 일상에서도 볼 수 있다. 불안해서 선행학습을 더 하고, 불안해서 돈을 더 모으고, 불안해서 스펙을 더 쌓고, 그렇게 불안함에 무언가를 더 가지려 한다. 그러나 더 많이 소유한다고 해서 불안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불안과 욕심이 만날 때, 필요도 없는 것들을 더 많이 가지려고 하며 삶을 허비하게 만들 뿐이다.


불안이 욕심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 더 가진다고 해서 불안함이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고, 조금만 더 자신을 믿으려고 노력해보자. 무작정 믿는다고, 불안이 다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욕심으로 무작정 더 가지려 하는 것보다는 효과적이고 건강한 방법이다. 믿음은 늘 기적을 만든다. 말하는 대로~ 믿는 대로~ 되는 법이니, 불안함에 더 가지려 하지 말고, 불안하기에 자기 자신을 더 믿어보자.


욕심에서 불안과 불만을 끄집어낼 수 있다면, 일상을 망가뜨렸던 욕심이 오히려 일상에 활력을 주는 에너지로 변할 수 있다. 운동 욕심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중 누가 더 운동을 잘하겠는가? 당연히 운동에 욕심이 있는 사람이 운동을 더 열심히 하고, 그렇기에 운동을 더 잘한다. 이는 운동뿐만이 아니다. 모든 분야에서 욕심은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성장을 돕는 삶의 에너지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지나침이다. 열심을 넘어서 지나치게 운동할 때 오히려 부상당하는 것처럼, 부족한 점을 더 채우려는 것이 지나칠 때 삶의 에너지는 욕심이 되어 일상을 망친다. 따라서 열심이 욕심으로 변하고, 삶의 원동력이 집착으로 변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선을 지켜야 한다.


어디까지가 열심이고, 어디부터 지나침인지 구분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다행히도 방금 이를 구분하는 두 가지 기준점을 배웠다. 바로 불만과 불안이다. 이 불만과 불안은 욕심을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속도를 줄이는 브레이크가 되기도 한다. 욕심 안에 있는 불안과 불만을 살펴보고 그에 대처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욕심의 속도가 내려가기 때문이다. 이제 브레이크로 속도를 줄이는 법을 배웠으니, 마음껏 액셀을 밟아 보자.




1. 욕심을 무조건 참으려고만 하지 않는다.


2. 왜 더 가지려고 하는지 살펴본다.


3. 불만 때문이면, 내 안에 이미 충분한 점을 찾아본다.


4. 불안 때문이면, 스스로를 더 믿어보자.


5. 욕심 안에 있는 불만과 불안을 살펴보며 속도를 줄였다면, 더 가지려는 마음을 삶의 원동력으로 삼고 건강하게 욕심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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